[김상철 칼럼] ​이제는 한국행 중국 기업 받아들일 때

2023-08-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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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글로벌 경제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좋아질 기미를 보이면 여지없이 복병이 나타나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리 같이 해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늘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크고 작은 충격에도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연일 점입가경이다. 전쟁은 더 격렬해지고 양측의 주요 항구 등 인프라 공격으로 곡물과 에너지 가격이 출렁거린다. 이로 인해 진정 기미를 보이던 각국의 물가가 다시 요동을 친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사우디 등 OPEC 감산 돌입으로 유가가 배럴당 100불까지 갈 수 있다는 우울한 소식까지 들린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역대급 기상 이변인 슈퍼 엘리노도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다. 부정적 영향을 주는 변수가 점점 상수로 변하는 중이다.
 
이런 공통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각국의 상황을 보면 대동소이하지 않고 미세하게나마 대조적인 양상을 보인다. 정부의 경제 운용 방식과 이해관계의 틈새에서 상대적 반사이익을 챙기는 지혜의 차이에서 명암이 엇갈린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경착륙보다 연착륙에 무게추가 옮겨가는 분위기다. 일본 경제는 바닥에서 헤어날 조짐을 보인다. 미·중 테크 마찰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원천 기술을 활용한 부활의 징조가 보인다. 인도는 최대 수혜국이다. 양 진영을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미국 큰손을 비롯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인도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증시는 연일 뜨겁게 달아오른다. 독일 경제의 급속한 후퇴로 유럽 경제는 더욱 침체의 늪이 길어질 조짐이다.
 
특이한 것은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가 좋지 않다. 수출 1위와 3위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이 두 나라 경제의 회복 지연은 우리에게 치명적이다. 양국의 정치적 불안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무리한 시진핑 3연임으로 인한 후유증이, 베트남은 10년 만의 정권 교체로 인한 불협화음이 각각 진행 중이다. 중국은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재개하였음에도 예전 모습을 복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출 부진에 내수도 서비스 산업 위주의 반쪽 성장에 그친다. 사회주의 색채를 강화로 성장 동력인 민간 기업의 활기가 움츠러들고 있다. 베트남도 제조업과 건설업의 동반 부진으로 성장률이 주춤한다. 제조업 PMI가 50 이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통이 일찍 온 것이나 아닌지 경제의 기초 체력이 크게 흔들린다.
 
당연하게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우리 수출이 극히 저조하다. 양국의 대외 수출이 부진하니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 수출마저 곤두박질을 친다. 두 자릿수 이상의 급감이다. 급기야 중국에는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사상 초유의 무역적자가 10개월 연속되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무역역조 현상이 반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베트남에 대한 수출은 9개월째 하강세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에 대한 수출이 부진하면 베트남에 대한 수출이 호조를 보여 완충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이런 현상마저 꼬리를 감췄다. 중국이 기침하면 우리는 독감이 걸린다는 징조가 베트남으로 전이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베트남이 제2의 중국이 될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온다. 고질적인 병폐인 지나친 편중이 가져다줄 또 하나의 폐해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경제 패러다임 바꿔, 국적 불문 투자 유치에 우선순위 두는 정책 전환 필요
 
이 정도라면 우리의 해외시장 진출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미·중 격돌과 팬데믹·우크라이나 전쟁 등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국가나 기업이 강하게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안방 강화하거나 주변을 정리하는 작업을 서두른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기업은 중국을 떠나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우선시한다. 필요하다면 자국 시장에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한다. 이른바 리쇼어링과 니어쇼어링이다. 자국과 떨어진 해외시장에 머물러야 한다면 시장성이 있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면서 성향이 비슷한 국가에 둥지를 튼다. 프렌드쇼어링으로 대안시장으로 인도가 뜬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곳에 집중하지 않고 분산하는 것이 철칙이다.
 
공급망 재편이라는 쓰나미가 몰아치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또 하나의 현상이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다. 10여 전 태양광 공급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 여파로 동남아 국가로 나갔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 테크 기업이 중국 간판으론 더는 장사가 힘들다는 판단하에 자국 색채를 빼기 위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외국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이 탈(脫)중국 대열에 속속 합류한다. 한국도 중요한 목적지 중의 하나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단독 혹은 한국 기업과 합작으로 한국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미국과 유럽의 중국 기업 제재를 우회적으로 피하려고 한국행을 택한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 기업의 해외 투자 러시가 더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은 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투자처다.
 
무역환경이 급변하면서 수출이 휘청거리고 경제 회생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지 않은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쯤 되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밖으로 나가는 기업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안으로 들어오는 기업을 위해 당근을 준비할 때다. 나가 있던 우리 기업을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기업이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세계화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중국 기업이 아닌 구미 기업에는 프렌드쇼어링의 최적지로 한국을 활용토록 유도해야 한다. 외국 기업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투자 대상국으로 매력적이지 않다. 남북 분단에다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도 걸림돌이다. 다만 기술력이나 소프트파워 등 남이 갖지 않는 장점도 있다. 기업 하기 좋은 천국을 만들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불리한 조건은 만회할 수 있다. 남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아시아 허브 꿈을 재가동하자.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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