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재정준칙을 이른 시기에 도입하는 게 파국을 막고 미래 세대를 조금이라도 보호하는 기틀이 될 수 있다."
한국재정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3일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준칙 도입과 관련해 "적어도 경직적인 예산 운용과 습관적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관행은 줄어들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재정준칙 법제화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하고 있다.
미국마저도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등을 이유로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판에 우리나라 역시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재정준칙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한 상황이다. 2017년 660조원에서 지난해 1068조원으로 불어났고 올해 5월 말 기준 1088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말 기준 국가채무 예상치인 1100조3000억원까지는 11조6000억원 정도만 남겨두고 있다. 최근의 증가세라면 연말이 아닌 상반기 중 11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반기 세수 실적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올해 44조원 이상의 사상 최대 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된다.
이 교수는 "한국 경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음은 이미 여러가지 분석을 통해서 확인된다"면서 "단지 위기가 지금 당장 닥치지 않았다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근시안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최근 재정 문제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현재 고금리와 저성장 추세를 그대로 놔둔 채 아무 노력 없이 재정적자 문제를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실험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세계잉여금, 여유기금 등을 활용해 세수 부족을 메운다는 입장이지만 이 교수는 올해도 상당한 재정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정부가 각종 재량적 지출 성격의 예산을 줄이고 조세 수입도 정책적 노력을 통해 올해 몫의 징수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여러 여건상 적자 폭을 한 번에 줄이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선) 재정건전성을 회복한 후 경기에 따라 재정 정책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습관적 추경 관행이 재정 규율 약화와 국가부채 급증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며 "현재로서는 다양한 재정 운용 방식으로 절감·개선을 추진해 추경을 대신할 수준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총선이 내년 4월로 다가오면서 각종 선심성 정책이 쏟아질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정치적 대립과 선거 결과에 따라 재정 운용 방식이 결정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분권화된 사회에서는 (재정 운용 관련) 경직성을 없애고 효율적 집행이 되도록 제어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