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 '파국'을 어찌할꼬?

2023-07-2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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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담는 그릇-희망전망대 사진서울시 누리집 갈무리
'하늘을 담는 그릇-희망전망대' [사진=서울시 누리집 갈무리]
 
※본 칼럼은 언론사 논조 및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2023년은 피카소(1881~1973)의 사후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스페인과 프랑스 정부는 이를 기념하고자 ‘피카소 기념 위원회(Picasso Celebration)’를 결성해 2023년 한 해 동안 마드리드, 파리, 바르셀로나, 말라가 및 유럽과 북미의 미술관에서 40개 이상의 전시회와 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피카소는 “20세기를 정의하고 잔인함, 폭력, 열정, 과잉, 모순을 모두 표현한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 많은 여성을 학대한 피카소의 명성 또한 그의 예술적 업적에 가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원회는 여성 학대와 관련한 주제로 연중 한 번 이상의 토론와 전시회를 열어 “논란이 될 수 있는 그의 삶의 일부를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 압둘 마락(1979~)은 피카소가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지, 특히 “여성과의 관계, 때로는 폭력적인 성격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런 주제는 은폐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의 코미디언인 해나 개즈비와 미술관 페미니즘미술 센터의 캐더린 모리스, 유럽미술큐레이터, 탈리아 시로마가 큐레이팅한 <잇츠 파블로-매틱>전이 미국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지난 6월 2일 개막해 오는 9월 24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를 통해 스스로를 젠더퀴어(Genderqueer)라 칭하는 해나 개즈비는 피카소의 작품의 새롭게 변화하는 힘과 미술계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인정하지만, 비판적이며 현대적이며 페미니스트적인 시각으로 피카소라는 예술가의 복잡한 유산을 드러내려했다.
 
물론 그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2018년 성정체성과 성소수자(LGBTQ)를 다룬 코미디 ‘나네트(Nanette)’에서 이미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피카소의 여성 혐오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다시 예리한 유머와 날카로운 비평이 담긴 오디오 투어와 함께 <잇츠 파블로-매틱>전을 마련해 피카소를 소환했다.
 
전시에는 세실리 브라운(1969~), 르네 콕스(1960~), 캐터 콜비츠(1867~1945), 딩가 맥캐넌(1947~), 아나 멘디에타(1948~1985), 마릴린 민터(1948~), 조안 세멜(1932~), 키키 스미스(1954~)등 20세기와 21세기,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등 100여 점이 병치되어 피카소를 포위하듯 전시되고 있다.
 
개즈비의 관점이 강하게 반영된 전시는 여성혐오, 창의성, 예술사적 정경, 천재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담고 있다. 이 전시를 두고 ‘바늘로 찌르는 전시회’(Artsy), ‘페미니스트적 유머가 적나라한 전시’(Time out), ‘개스비는 우리를 잠시 멈추고, 질문하고, 반성하도록 격려한다’(air Mail)등의 평을 내놓았지만, 천하의 피카소도 페미니즘이 강조되는 세월의 세를 비켜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2017년부터 “나도 당했다”는 뜻의 ‘#MeToo’운동이 번지면서 일반화된 이래 이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이 되었지만 다양한 맥락에서 “아무도 매력적인(curvy) 여성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는 “바지가 당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델이 되지 말라”는 등의 마초적 발언으로 도발을 거듭해 온 칼 라거펠트(1933~2019)의 전시 <칼 라거펠트: 아름다운 선(Karl Lagerfeld: A Line of Beauty)>(2023년 5월 5일~7월 16일) 전이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에서 열리면서 이미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전시의 적절성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미술관은 윤리 강령과 정책을 따를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전시회는 축하 행사도 작가를 심문하는 곳도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며 전시를 통해 토론하는 것이 복잡한 주제에 대한 공평한 접근 방식이라는 말로 전시를 강행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7월 4일자 신문에 가나출신의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아자예(1966~)가 자기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성 3명을 성폭행과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이 사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그와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를 패닉상태로 몰아갔다.
 
2010년경 파산 직전이던 아자예의 엄격하고 파괴적인 건축은 2009년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의 열띤 설계 공모에서 우승하면서 스스로 “내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를 뒤로하고 그의 재능을 과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 박물관은 완공되어 2016년에 개관했고 개관식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박물관 개관은 개인의 구원일 뿐만 아니라 많은 상을 아자예에게 안겨 스타 건축가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2017년 건축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아 그의 이름 앞에 ‘Sir’을 추가했다. 이후 그는 가장 저명한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세계 각지에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관과 기념관을 건설하려는 곳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찾는 건축가가 되었다. 또 그는 흑인 건축가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는 마치 그 일이 자신의 사명인양 웅변적으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2023년 아자예는 2018년과 2019년에 그와 함께 일했던 세 명의 여성에게 성폭행과 성추행을 가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곧 직업과 개인 생활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한 ‘실수’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런던 시장의 건축 고문역은 물론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의 이사직도 물러났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난감한 일이 줄을 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가 설계한 세계 각지에서 칭송받던 건축물의 처지가 갑자기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성추문에 연루된 예술가의 건축물에 여과없이 노출되는 일반 시민들이 겪어야 할 시각적 정서적 불편함을 감안, 계획 중인 프로젝트는 줄줄이 취소되었다.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Sharjah)에서 추진 중인 아프리카 연구소(Africa Institute)의 새 연구소 건축, 론 아라드(1951~)와 공동으로 국제설계공모에서 당선되었던 런던의 영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K Holocaust Memorial)의 건축가로서 역할을 박탈 당했다.
 
할렘에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Studio Museum in Harlem)도 미술관 확장계획에서 아자예와 그의 설계회사 아자예 연합(Adjaye Associates)과 관계를 끊는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는 “그가 했다고 주장되는 행위는 스튜디오 미술관의 창립 원칙과 가치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사추세츠주의 링컨에 있는 데코르도바 조각공원과 미술관(deCordova Sculpture Park and Museum)도 아자예의 대규모 조각 전시를 ‘무기한 보류’하기로 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 예정인 카운터 퍼블릭 트리엔날레(Counterpublic Triennale)에 참여 예정인 아자예의 대형설치작품의 출품 여부도 지역민들과 대화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한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멀트노마 카운티 도서관(Multnomah County Library)의 설계 팀에서도 그를 배제했다. 2023년 5월 버몬트(Vermont)의 쉘버른미술관(Shelburne Museum)은 새로운 페리 원주민미술센터(Perry Center for Native American Art)의 설계자로 아자예를 선정했다. 하지만 심각한 그의 위법 행위 혐의에 따라 미술관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할 새로운 건축가를 찾겠다고 선언했다. 원래 개관일은 2026년 봄이었는데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아자예의 건축이 이미 완공되었거나 완공을 앞둔 도시와 건축주들의 고민이다.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 미술관(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은 내년에 개장할 아자예의 건물을 완공 예정이지만, 관장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비난이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것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현재 건설 중인 델리의 키란 나다르 미술관(Kiran Nadar Museum of Art)이나 영국의 리버풀국립미술관(National Museums Liverpool)이 아자예 설계로 추진 중인 국제노예박물관(International Slavery Museum)과 해양박물관(Maritime Museum)의 재개발 계획은 이번 그의 성폭력과 성추행 관련 주장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업을 계속해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한다.
 
2019년 아자예를 건축가로 지명한 나이지리아 베냉의 에도 서아프리카 미술관(EMOWAA, Edo Museum of West African Art)도, 2019년 10월 문을 연 텍사스의 린다 페이스 재단(Linda Pace Foundation)의 아트 센터 루비시티(Ruby City)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상업시설을 포함하는 건축물도 난감하기는 매 한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더더욱 큰 문제는 신성한(?) 종교건축물과 어린이를 위한 시설, 병원 등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수도인 아부다비에 있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3개의 종교 시설이 한곳에 모여 있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Abrahamic Family House)도 아자예의 작품이다.
 
종교 간 포용을 상징하는 이 건물은, 2023년 3월 1일부터 일반에 공개되었는데 글쎄 아자예 성추문 이후 어떻게 대처하고 결단을 내릴지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자금 부족으로 현재 공사가 중단된 아크라에 있는 가나 국립 대성당(National Cathedral of Ghana)도 계속 공사를 할지 중단할지 고민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어린이, 가족 및 독신 성인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는 BHC(Broadway Housing Communities)가 시행하는 맨해튼 할렘가에 위치한 슈가힐 어린이 예술 및 스토리텔링 박물관(Sugar Hill Children’s Museum of Art & Storytelling, SHCMAS)이 그것이다.
 
슈가힐 프로젝트의 문화적 중심으로 주거용건물의 1, 2층에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공간을 마련했는데 설계자가 성추문에 휩싸인 인물이라는 점을 어린이와 학부모에게 어떻게 말할까.
 
아자예의 명성과 왕성한 활동력으로 그의 건축물이 한국에도 있다. 2013년 광주시가 ‘폴리 2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광주천변에 세운 광주독서실은 아다예와 타이에 셀라시가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다. 인권을 다른 책 200여 권을 갖춘 작은 도서관으로 인권과 설계자의 성추행의 상관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인권과 민주의 도시 광주는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하다.
 
아다예와 타이에 셀라시가 공동으로 작업한 광주천변에 세운 광주독서실 사진광주폴리 누리집 갈무리
아다예와 타이에 셀라시가 공동으로 작업한 광주천변에 세운 광주독서실 [사진=광주폴리 누리집 갈무리]
 
아자예의 성추문 사건이 보도되고 이틀 뒤 화가 임옥상(1950~)의 성추행 사건이 보도되었다. 검찰이 1년 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아 재판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끌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도 아자예처럼 개인과 직장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한 ‘실수’에 대해 “매우 죄송합니다”라 사과하면서 10 수년이 지난 일로 이 일로 인해 자신도 그간 죄책감으로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2018년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한국의 ‘#MeToo’운동의 여파는 가히 폭탄에 가까웠다. 이후 전 충남지사 안희정, 전 서울시장 박원순의 성추행은 권력자들의 성추행이란 점에서 시민의 공분을 샀다.
 
이후 문화예술계로 전이된 ‘#MeToo’으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문화예술계 원로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때 성추행, 성폭력 사건의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이윤택(연극), 고은(시인), 조민기(탤런트), 김석만(연극연출), 김기덕(영화감독), 조재현(배우), 조근현(영화감독), 이병훈(음악감독), 최용민(연극배우), 하용부(인간문화재), 한만삼(신부), 박재동(만화가), 오달수(영화배우), 로타(최원석)(사진작가), 한재영(연극배우) 등등이다. 이중 이윤택, 고은, 조민기, 김석만, 김기덕, 조재현, 조근현, 이병훈, 박재동 등은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로 블랙리스트가 아닌 성추문행위자 예상 리스트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특정 진영의 인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성추행·성폭력 추문에 휩싸인 유명인들의 흔적을 지우는 일에 나서 이들이 쓴 시나 관련 글들이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흔적을 지우거나 철거하기에 바빴다.
 
서울시는 고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서울도서관 내 ‘만인의 방’을 철거했고, 수원시와 고은재단은 고은문학관 건립 계획을 철회했다. 밀양시는 이윤택의 성추문으로 연극촌과 무료 위탁운영 계약을 해지했다. 김해시도 위탁 협약을 해지했다. 울산 울주군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워원장직을 맡은 박재동의 성 추문 논란으로 곤란을 겪었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두더지게임의 두더지처럼 예술계 성추문이 반복된 것이다. 임옥상은 세상의 불의에 대해 늘 앞장서서 큰 목소리로 대항했고, 지적했으며, 정치적인 사안에도 항상 비판적으로 일관했던 한국의 7·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통일 운동, 환경 운동에 매진해 온 활동가로,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1세대 민중미술가’ 임옥상, 강제추행 혐의 재판…검, 징역 1년 구형”이란 제목의 “‘1세대 민중 미술작가’ 임옥상 화백이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는 기사제목은 문화예술계의 한 사람으로 특히 미술계의 일원으로 살아온 모든 이의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사달이 일어난 것은 10년 전인 2013년 8월의 일로, 스튜디오에 근무하던 여성직원을 강제로 껴안고 입을 맞추며 추행했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그의 평소의 삶이 너무나 당당하고 바른길만 좇아 살아왔고, 휴머니즘, 노동운동, 진보 정치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억압과 차별에 맞서 평등과 공정을 외치며 가열 차게 사회비판적 작품을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해 온 그가 ‘성추행’이라니. 그는 평소 “미술은 자연의 부름, 역사의 소리, 윤리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작업”이라고 외쳐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성 추문이라니, 뒤통수를 망치로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 든 것은 필자뿐 일까.
 
그가 “10년 전 순간의 충동으로 잘못된 판단을 해 피해를 줬다”며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최후변론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는 보도에 아연실색,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문득 생각이 그럼 수많은 서울 시내는 물론 전국 곳곳에 있는 그의 작품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자예의 성추문 이후 수많은 그의 설계가 취소되었지만 이미 완공된 건축물이나 거의 완공된 건물의 경우 헐자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또 건축폐기물도 엄청날 것이니 엄두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음악이나 글은 일부러 찾아 읽거나 듣기 전, 영화도 작정하고 보아야 하고 연극은 공연 당시에 만 볼 수 있지만, 미술품은 특히 환경조형물은 도시를, 거리를 지나다 보면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존치 여부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특히 한 번의 실수(?)라 하지만 성추행, 성폭행을 저지른 이가 제작한 작품(?)을 선택의 여지없이 강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이런 불쾌감으로 인해 그간 성추문이나 성추행으로 문제가 되었던 예술가의 경우 활동을 접고 근신하고,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은 삭제되었고, 한편으로는 친일 작가로 분류된 작가들의 작품은 탁월하고 뛰어난 필력에도 불구하고 표준영정 지정이 취소되고, 새로이 그리고, 전봉준 선생 동상도 친일 작가가 제작했다는 이유로 철거하고 새로 만드는 등 나름의 사법적 단죄 외에 사회적으로 문화적 예술적인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예술가라고 해서 이런 이중 처벌을 감내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은 필요하고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은 분리해서 봐야한다”지만 이들의 작품을 보고 읽고 듣는 것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임옥상 작가의 작품 광장에 서가 2017년 11월 2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옥상 작가의 작품 '광장에, 서'가 2017년 11월 2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에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청와대 본관에 걸려 이목을 끌었던 광화문광장 촛불집회를 그린 대작 ‘광장에, 서’ 등 그의 작품을 철거한다 해도 그가 제작한 환경조형물을 비롯한 공공조형물과 벽화, 공공시설 등 그 숫자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설혹 그의 이름으로 제작된 공공조형물을 철거한다해도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평소 왕성한 활동 덕(?)에 그의 작품이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특정 인물과 관련된 작품, 공공미술로서의 작품, 특정 도시의 상징적인 조형물 그리고 교육기관의 벽화나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소위 1% 법에 의거 제작 설치된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그 수가 최소한 어림잡아도 수십 또는 백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일단 특정 인물과 관련된 작품을 보면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재단 노동복합시설의 파사드>(2019)를 비롯,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열사 동상>과 <전태일 거리>(2005),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년을 맞아 봉하마을에 세운 <대지의 아들 노무현>(2011), 노무현 무덤 박석 <사람 사는 세상>(2010), 겸재 정선미술관 입구의 <신 진경산수화>(2009, 3X30M), 제주 추사기념관의 <추사 김정희 상>(2010), 제주 김창열미술관의 <김창열 반신상>(2021), 대검찰청의 순국 100주년 기념<이준 열사 흉상 및 임명장 재현 동판>(2007), 민주당사의 <김대중·노무현 흉상>(2011), 밀양의 명례 성지의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 성인의 상>(2018), 경남 고성의 제정구 커뮤니티센터의 <제정구 선생상>(2021), 충남 부여고 <이어령선생 시비>(2016),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의 문익환 시비 말씀의 기둥 <잠꼬대 아닌 잠꼬대>(2008년), 부여 신동엽문학관의 <시의 깃발>(2012), 장욱진 기념관의 <장욱진 선생 기념조형물>(2001) 등이 우선 눈에 띈다.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하는 상징조형물 격의 작품으로 전남 영암 구림마을의 <세월>(2000), 임옥상이 설계를 맡고, 시인 김정환, 건축가 승효상, 조경가 김인수가 참여한 <분당 율동공원 책테마파크>(2005), <매향리의 시간>(2007), 화천의 경관창 <구름 속을 걷다>(2007)와 <삶> (2008),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2009), 부여 백제문화관의 <빛의 나라 백제>(2007), 강원도 태백시의 <물 한 방울>(2009), 판교 신도시 매송사거리의 <빛의 나라> (2009), 그리고 서울시 하늘공원의 희망 전망대 <하늘을 담는 그릇>(2009), 서울시청 별관 앞의 무쇠 주물로 뜬 <서울을 그리다>(2012), 홍제천의 <바람에 그리는 그림>(2010), 인천문화재단이 덕적도에 세운 <385개 소통의 문>(2009), 강원도 태백시 하이원의 <바람이 그리는 그림>(2011), 롯데백화점의 <환경위기시계>(2013), 숭인동의 <천 개의 바람>(2019), 또 숭인동의 오피스텔 한라비발디의 <조형물>(2019)도 있다. 또 최근에 세워진 숭인동의 <언어의 집 모재>(2022)도 임옥상의 작품이다. 작가의 불미스러운 일로 지역에 불편한 상징조형물을 두게 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지 또 해당 지자체는 어떤 판단을 할지 궁금하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광화문의 역사>(1996)와 <역사야 놀자>(2000)는 하나의 역사에 한 작가의 대형작품이 두 점이나 설치된 특별한 예다. 아침저녁 출퇴근하면서 만나게 될 작가의 작품을 보면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전남 광주의 5·18 민중항쟁 사적지 16호인 농성광장으로 연결되는 지하철 농성역에는 19m 높이의 <솟아오르는 산>(2003)이 위용을 자랑한다.
 
자라는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어린이 놀이터의 더욱 난처하고 난감할 것이다. 이름 앞에 ‘성추행’을 접두사처럼 붙여야 하는 작가가 만든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부모나 가족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시흥의 어린이 놀이터 <까치야 놀자>(2005)를 시작으로 안양의 <천사 유치원 놀이 램프>(2005), 시흥시 신천동의 예술문화 놀이터 <나는 까치>(2006), 서울숲의 무장에 놀이터와 조형물(2006), 용인 래미안 동천놀이터에 <세에그버그>, <퍼니큐브>, <와인딩캐슬>, <트라이앵글운>(2008) 그리고 국회의 무장애 놀이터 <애벌레의 꿈>(2008),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의 <희망의 프리즘>(2020), 용인 래미안 동천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2010), 2011년 서울교육청 벽화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희망그리는 학교>의 금천고, 서울디자인고, 봉현초등학교의 벽화, 상암 푸르메 어린이 재활센터의 조형물 <사랑해요>(2017), 임옥상과 조진만 건축사사무소, 조경가 김연금이 공동으로 작업한 창신동의 <산마루놀이터, 풀무골무>(2019) 등은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란 점에서 철거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난감한 것은 경기도 광주의 정신대 역사관에 있는 <누가 이들에게, 대지의 어머니>(1998)이다. 이미 한 미술사가가 정신대 할머니들을 모신 시설에 성추행의 굴레를 쓰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불편하니 철거하자고 주장한 바 있지만 적어도 여성들의 인권과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반추해보면 철거 외에 답이 없다. 이런 일에 늘 불같이 일어나 입장을 밝히던 여성단체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좋은 성추행과 나쁜 성추행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더욱 심각한 것은 2016년 완공된 남산공원 통감관저 터의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이다. 이곳에는 247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과 그들의 시대별 증언이 담겨 있는 <대지의 눈>과 3m의 지름과 흔들거리는 운동감을 가진 고흥석 주변으로 편안한 능선이 둘러져 있는 <세상의 배꼽>등을 기존의 구 통감관저 터가 지닌 지형을 새롭게 바꾸어, 개별 장소가 각각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기념공원으로 조성했다.
 
특히 장소특정적인 시설물은 1만9755명의 기부금을 모아 조성한 것으로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임옥상의 구상에 따라 조성된 곳이다. 그냥 헤아려보아도 물경 100개가 넘는 전국에 산재한 불편한 성추행범의 작품(?)을 어찌할꼬? 누구 답 좀 해 보실 분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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