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피해자를 대신해 가족이 가해자와 합의한 사건에서 성년후견인의 '처벌 불원' 의사는 효력이 없다는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의 처벌 불원 의사는 원칙적으로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오후 2시 교통사고특례법위반(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유죄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고로 B씨는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B씨의 배우자 C씨가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 C씨는 이 사건이 반의사불벌죄(가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죄가 되지 않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토대로 A씨로부터 합의금을 수령한 후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서면으로 법원에 제출했다.
재판 쟁점은 반의사불벌죄가 허용된 죄목에서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피해자를 대신해 성년후견인이 처벌 불원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지였다. 반의사불벌죄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함께 외국 원수에 대한 폭행·협박 등의 죄(형법 제107조), 외국사절에 대한 폭행·협박 등의 죄(형법 제108조), 외국의 국기·국장 모독죄(형법 제109조), 단순·존속폭행죄(형법 제260조 제3항), 과실치상죄(형법 제266조 제2항), 단순·존속협박죄(형법 제283조 제3항), 명예훼손죄 및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12조 제2항) 등에 있다.
1‧2심은 성년후견인의 처벌 불원 의사는 효력이 없다고 보고 A씨에게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절차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소송행위의 법정대리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피해자에게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그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해 처벌 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유지했다.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 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해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 불원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처벌 여부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달려있음이 명백하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나 형법, 형사소송법에 있는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에 관해 대리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반의사불벌죄의 처벌 불원 의사는 원칙적으로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처벌 불원 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한다"며 "피해자가 의사무능력자인 경우 성년후견인의 대리에 의한 처벌 불원 의사표시는 그것이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