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美中 소통 강화 …우리에게 던져진 韓中관계 '고차방정식'

2023-07-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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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전략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미·중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면서 동아시아 정세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미·중 관계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잇달아 중국을 방문하면서 ‘대화하는 갈등’ 국면을 새롭게 노정하고 있다. 일본도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이 회장인 국제무역촉진협회가 대규모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내세우면서 북·일 정상회담의 운을 띄우는 중이다.
한국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옵서버 자격이지만 국제 안보협력 강화의 일환으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개국 정상회담(AP4)을 개최하고, 한·나토 협력 문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이 문서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 나토와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 문제 그리고 신흥 안보 위협 및 공급망 협력 확대 등 총 11개 분야에 걸쳐 양자 협력을 제도화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위상 정립과 한반도 현안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전략과 정책적 시도의 폭을 넓히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의 대미 경사와 한·미·일 삼각 공조 강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던 중국도 마음이 급해졌다. 미·중 소통 국면에서 한·미 관계의 심화는 물론이고 한·미·일 결속 강화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도 중국과 소통 강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한국도 한·중 관계에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지속되고 북핵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최근 전개되는 일련의 표면적 변화 양상이 본질적 문제의 변화를 추동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미·중 간 소통 재개는 양국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합의한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책임 있게 관리하겠다는 차원의 대화다. 이를 반영하듯 양국은 무역과 대만 문제, 중국 및 홍콩 인권 상황, 남중국해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문제에서 어느 쪽도 기존 입장에서 전혀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대신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을 내세웠지만 ‘공정한 규칙 집합’으로 건강한 경쟁을 하자면서 지속적인 중국 압박을 통해 경쟁에서 승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당연히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태도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민주 가치를 내세운 다자주의로 포장된 전형적인 소(小) 다자주의로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희귀 금속인 갈륨·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로 맞불을 놓았다. 대미 소통에서 기선을 제압하고자 하는 의도가 크지만 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과도하게 중국에 의존한 공급망의 불확실성 타개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림워크)의 당위성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의 우려와 조급함이 노출된 것이기도 하다.
일단 미·중은 정치·외교·군사 분야에서는 해소 가능성이 희박한 이해관계가 상충하지만 경제산업 분야에서는 협력 확대를 모색하자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중국도 팬데믹 이후 전면적 경제활동 재개를 뜻하는 ‘리오프닝(reopening)’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무엇보다 미·중 관계의 긴장 완화 분위기 조성이 필요했다. 미국도 옐런 재무장관이 특정 상황에서 국가 안보 보호에 목표를 둔 행동이 필요하지만 양국 경제 및 금융 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키는 오해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양국이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다. 일본도 경제대표단을 파견해 이에 편승했고 유럽 각국도 대중 외교 강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중국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데 있다. 경제 회생을 위해 ‘높은 수준의 개방’을 천명한 중국이 ‘국가 안보와 이익’을 내세워 외국 정부 및 기업은 물론 민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반간첩법’ 개정안과 대외관계법을 7월 1일부터 시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간첩법은 간첩행위의 정의와 법 적용 범위 및 국가 안보 기관의 단속 권한을 크게 확대했지만 ‘국가 안보와 이익'의 범위가 모호해 당국이 간첩행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대외관계법은 ’국가 간 조약 및 협정’이 ‘국가의 주권·안보 및 사회적 공익’에 우선할 수 없다는 법으로 중국 대외 제재의 근거법이다. 국내법이 국제법에 우선하므로 대외 강경 외교나 보복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나 인적 교류 활동도 제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한·중 양국은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 베팅’ 발언으로 경색된 국면 타개를 위해 4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3기 체제 출범 이후 첫 고위급 대화인 차관급 회담을 했다. 한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는 데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도발 중단과 비핵화 대화 복귀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했다. 중국도 수사적으로는 일방적 한국 책임론에서 ‘공동 노력’을 강조해 약간의 변화를 보였다. 또 3일에는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원이 한·중·일 3국 협력 국제포럼에 참석해 3개국이 협력 강화를 통해 지역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도 미묘한 변화로 감지된다.
따라서 미·중이 대화 무드로 돌아서고 일본과 EU 역시 중국과 긴장 완화를 모색하는 상황인데 한국만 너무 중국과 갈등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당연히 외교는 생물(生物)이고 늘 새로운 변화를 수반한다. 그러나 한·중 관계는 양자 관계는 물론 미·중 갈등, 북·미, 북·중, 한·중·일, 한·미·일 관계 등 복합 요소에 영향을 받는 고차방정식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은 당연히 경제산업 측면에서 중국은 물론 미국과도 적극적인 실리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북핵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는 한국이 북한으로 인한 한·중 관계 문제나 북핵 문제의 본질을 외면할 수는 없다. 적어도 한·중 관계에서는 일단 상황 관리를 모색하는 소통에 나서면서 한국의 원칙과 입장·의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는 계기가 돼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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