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오늘 중국을 방문한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미·중 고위급 경제 대화로, 양국 관계 개선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양국 관계가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중 경제팀은 반도체부터 관세까지 주요 현안을 두고 팽팽한 밀고 당기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경제팀 첫 만남…반도체부터 관세까지 팽팽한 '밀당' 예상
옐런 장관은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비둘기파’로 통한다. 그는 지난달 의회에 출석해 “가능한 한 개방적인 무역과 투자를 통해 우리도 이익을 얻고 중국도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옐런 장관의 방중이 긴장 완화의 물꼬를 틀 것이란 기대감을 일으킨 이유다.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 해제 여부다. 옐런 장관은 그간 무역법 301조를 토대로 중국 수입품에 물린 고율 관세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다고 줄곧 비판해왔다. 관세 부과에 따른 중국산 제품 가격 인상이 결국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면서 관세를 해제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력은 약해진 반면, 긴장 고조로 관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치권 대중국 매파의 목소리가 커진 점은 불확실성을 더한다. 전문가들이 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는 이유다.
양국 경제팀은 이 외에도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중국 내 판매 제한 등 반도체 분야, 반(反)간첩법 시행에 따른 미국 기업의 중국 영업 보장,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 등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옐런 장관의 방중 이후 오히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은 이번 방중을 앞두고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광물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고, 이에 미국 상무부는 “단호하게 반대한다”며 공급망 다양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상태다.
방중 이후 더 긴장 고조? 소통 재개에 의의
특히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이번 방중 이후로 단행될 것으로 예고되는 만큼, 강대강 대치가 계속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미 상무부는 인공지능(AI) 칩 제재 강화 등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생산 장비 관련 대중국 수출 통제와 함께 지난해 10월 발표한 수출 통제의 후속 조치를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이른바 대중국 아웃바운드(대외) 투자 제한 조치도 준비하고 있다.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의 웬디 커틀러 부소장은 “옐런의 방중에 대한 기대감은 낮아야 한다”며 “그는 관계를 회복하거나 수출 통제 및 관세를 해제해 달라는 중국의 요구에 응답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외신은 옐런 장관이 반도체 등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보다는 기후 변화, 개발도상국의 부채 해결 지원 등 글로벌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봤다. 옐런 장관은 중국에서 빌린 외채로 채무 불이행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 대해 중국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 재무부 역시 이번 방중이 관계 개선의 돌파구 마련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중국 정부의 새 경제팀과 장기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구축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 역시 소통 재개에 의미를 뒀다. 우신보 중국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지난 달 중국에서 열린 하계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하계 다보스포럼)에서 “그의 방문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분위기를 개선하고 행정부 내에서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미·중 관계 향방이 달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에릭 하위 하와이 대학교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대중국 제재가 완화되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제재는 더 강경해질 것으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