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이번 은행권 경쟁 촉진 논의 결과에 회의적 여론이 감지되는 이유는 자금력을 가진 비은행권 금융사들의 시장 진입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메가뱅크(초대형 은행)라는 메기를 투입해 경쟁을 유발해도 과점 체제를 깨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당국은 자금력이 떨어지는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을 내세워 경쟁을 촉진하려 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선 지난 3월에 터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당국은 특화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려다 SVB 파산 사태로 사실상 논의가 중단됐다. 그래서 당국은 기존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을 메기로 삼아 시장에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엇보다 업계에선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허용 결론이 도출되지 못한 점을 실패 요인으로 꼽는다. 금융권은 지급결제 허용이 사실상 은행과 비은행 간 경계 영역을 허물고 경쟁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핵심으로 여겨왔다. 올 초 은행권의 경쟁 촉진이 화두로 올랐을 때만 해도 비은행권의 지급결제업무 허용에 대한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삼성은행'이나 '현대은행' 같은 메카뱅크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종합지급결제업무는 고객에게 지급계좌를 발급해 고객 돈을 직접 보관하고 관리·이체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다. 해당 안건이 통과됐다면, 삼성생명과 현대카드 등 대형 비은행사들의 통장 개설이 가능해진다. 당국은 시중은행 등 새로운 플레이어에 대한 신규 인가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비은행권 대형사들은 시중은행 인가로 부담을 키우기보다는 지급결제에 기반한 통장 개설로 점진적 시장 확대를 노려왔다.
당국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비은행권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 3월에 열린 실무반 회의에서 당시 한국은행과 은행권은 "전 세계에서 엄격한 결제리스크 관리가 담보되지 않은 채 비은행권에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를 전면 허용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면서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 시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 발생 위험 증대 등에 따라 큰 폭으로 저하될 수 있다"며 해당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당국의 업무 처리 미숙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당 이슈는 사실상 몇 해 전부터 이미 각 금융사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안이고 당국도 반대 업권 주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안다"며 "그럼에도 이번 TF가 견해차만 재확인한 회의로 전락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이슈들로 은행과 비은행 간 갈등만 증폭시켜 추후 논의에서 업권별 전향적인 입장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며 "당국은 결론을 내지 못한 안건들에 대해 대부분 '추가 검토'로 갈음했지만 기약 없는 평행선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