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수출이 10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반도체와 대(對)중국 수출 부진에도 자동차와 선박 수출이 호조세를 보인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전망하는 '상저하고(上低下高)'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상 초유의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이 나타나면서 한국 수출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이 당분간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엔저 현상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겨우 반등한 수출 회복세에 환율 변동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이목이 쏠린다.
6월 1~20일 수출 5.3%...10개월 만에 증가 전환
그동안 암흑 터널에 갇힌 수출이 최근 조심스럽게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328억95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1~20일 수출 실적은 지난해 8월(3.7%) 이후 계속해서 감소세를 이어가다 10개월 만에 증가 전환한 것이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345억 달러로 11.2% 감소했다.
정부 역시 최근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1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수출과 경상수지의 경우 일부 긍정적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의 일부 긍정적 흐름이 우리 경제의 빠르고 강한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역대급 엔저 현상에 韓수출 품목 가격 경쟁력 '흔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엔저 현상이 수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최근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00원대에 머물러 있다. 지난 19일에는 장 중 한때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2015년 6월 25일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엔저 현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자동차와 석유화학, 철강 등 수출 주력상품 가격 경쟁력에 치명적이다. 일본 기업들이 가치가 하락한 엔화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키울 수 있어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낸 보고서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수출 경합도는 69.2로, 한국과 미국(68.5), 한국과 독일(60.3) 한국과 중국(56.0)보다 높다.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이 그만큼 경쟁 관계에 있다는 얘기다. 또한 연구원은 엔화 가치가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의 수출 물량은 0.2%포인트, 수출 금액은 0.61%포인트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역대급 엔저 현상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엔저 현상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 우려스러운 건 일본이 당분간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여 엔화 약세 현상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는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외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끈기 있게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