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범죄 양형 개선" 첫 발뗀 양형위…'솜방망이 처벌' 비판 잠재울까

2023-06-14 06:00
  • 글자크기 설정

양형위원회 제117차 회의 [사진=연합뉴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의 항공기 엔진 제조사 GE 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진 기술을 빼돌리려다 적발된 중국 산업스파이 A씨가 미국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A씨는 타기업들이 모방하지 못한 항공기 복합소재 엔진 팬 블레이드 관련 기술을 빼네 중국 정부에 전달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직원 B씨는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로 이직을 준비하면서 최점단 3㎚(나노미터) 공정과 관련한 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파운드리 시장의 핵심 기술이 경쟁사로 유출될 뻔한 사건이었지만 B씨는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초범이고 피해액을 구체화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빼돌려 중국에 '삼성전자 복제' 공장을 만들려고 한 삼성전자 전 임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될 뻔한 사건에 산업계는 한 차례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긴장하는 분위기다. 산업스파이들이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유사 범행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이하 양형위)는 13일 '솜방망이 처벌' 비판을 받아왔던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양형 기준이 개선돼 기술유출 범죄자를 보다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 경제 안보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행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유출 초범이라"…3년간 법원 선고 445건 중 실형은 10%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 동안 총 93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이 적발됐고 그 피해액은 약 25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3년간 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법원 선고 총 445건 중 실형은 47건(10.6%)에 불과했다. 대부분 무죄나 집행유예에 그친 것이다. 

반면 미국, 일본 등은 영업비밀·기술 유출을 국가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중대범죄로 인식하고 강력 처벌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 NAND 플래쉬 기술유출자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고, 미국은 2021년 항공엔진 기술 해외유출자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기술유출 범죄가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드문 이유를 전문가들은 감경요소 및 집행유예 판단기준을 일반 형법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기술유출 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양형 기준이 없다 보니 초범일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호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집행유예 긍정 사유 중 '형사처벌 전력 없음', '금고형 집행유예 이상의 전과가 없음'이 있는데 기술유출범죄는 대부분 초범으로 집행유예 기준에서 '전과 없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초범이나 동종전과 여부에 대한 고려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피해액 산정은 '가치 평가'에 해당해 기관마다 결과가 다른데, 이처럼 피해액을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점도 낮은 형량의 또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양재석 특허청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은 "미국처럼 연구개발비를 곧바로 피해액으로 인정해 주는 등 기술유출 범죄 특성을 반영해야 된다"며 "양형 가중인자로 삼을 수 있도록 피해 규모 산정에 대해 특허청과 대검찰청 등 유관부서가 같이 연구를 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고검장을 지냈던 김후곤 로백스 대표변호사도 "개별기술유출에 대한 피해정도나 가치에 대한 산정기준이 불투명하여 처벌수위가 낮은 측면이 있다"며 "법원과 검찰, 피해회사, 가해자 모두 공감하는 피해액 산정기준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솜방망이 처벌" 비판에…대법 양형위, '기술유출 범죄' 양형 기준 정비 대상 선정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란 비판이 잇따르자 대법원 양형위는 양형기준 손질에 들어갔다.

양형위는 지난 12일 제125차 회의를 열고 영업비밀 침해범죄 등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정비 대상으로 선정했다.

양형위는 영업비밀 국외누설 등에 관한 법정형이 상향되고, 국가핵심기술 유출·침해 행위에 대한 구성요건이 신설되는 등 최근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강화된 처벌을 양형 기준에 반영할 예정이다. 기술 패권이 국가 경쟁력으로 떠오른 반면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여론을 수용한 셈이다.

양형위는 "관계 기관에서 제출한 다양한 의견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기술유출 범죄 양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