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 정상이 참가하는 일본 히로시마 G7정상회의(19~21일)가 막을 내렸다. 세계 정상들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내걸고 다양한 의제를 논의했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 정상 간 만남은 눈길을 끌었다. 양국 정상은 최근 두 달 동안 세 차례 만났다. 잦은 만남을 토대로 한·일 관계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일본을 찾는 한국관광객, 한국을 다녀가는 일본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 야당과 일본 우익은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양국 청년들은 역사와 실용을 분리한 채 서울과 도쿄 거리를 걷고 있다.
G7정상회의 기간 중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한·일 정상의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다. 히로시마 원폭평화기념공원에는 희생자 위령비가 두 곳 있다. 한 곳은 일본 정부가 건립한 일본인 희생자 위령비, 다른 한 곳은 재일한국인이 세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다. 두 곳은 150m 거리에 있다. 위령비가 두 곳으로 나뉜 건 다름 아니다. 한국인 희생자(2만여 명 추정)가 엄연함에도 그동안 일본은 이를 외면한 채 자국 희생자만 추모해 왔다. 한국인 희생을 인정하는 순간 원폭 당시 한국인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라기보다 희생자라는 구도가 깨질 것을 우려했다.
이제껏 일본은 피해자 입장을 견지해 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기념관은 피해자 일본을 알리는 선전장이다. 군국주의 광기를 확인하는 가고시마 치란특공평화회관 또한 피해자 입장만 강조하고 있다. 이곳에는 가미카제(神風) 자살특공기지가 있었다. 일본은 한때 나가사키 원폭기념관과 치란특공평화회관 기념물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를 시도하기도 했다. 주변 국가들은 납득하기 어려운데 아무렇지 않은 건 이 같은 심리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시다 총리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를 용기 있는 결단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일본 우익을 지배하는 역사 인식과 배치된다.
지금까지 한국 대통령이나 일본 총리, 또는 양국 정상이 공동 참배한 건 처음이다. 공동 참배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천적으로 과거사를 해결하려는 행보다. 주요국 정상이 모인 정상회의 기간 중 한국인 희생을 추모한 건 당시 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기시다 총리는 스스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함으로써 화해와 미래 메시지를 전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자민당 강경파 눈치를 봐야 하는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참배는 쉽지 않은 결단이다. 한국이 제시한 ‘제3자 변제’에 대한 정치적 화답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필자는 지난 3월 29일 ‘윤 대통령을 위한 조언, 한·일 원폭 피해자를 만나라’는 칼럼을 작성했기에 공동 참배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대통령실은 G7정상회의를 앞두고 의제를 조율 중이었다. 그즈음 주한 일본대사관 외교관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2016년 히로시마 G7정상회의 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평화기념공원에서 보인 행보를 들려줬다.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현장을 찾은 건 처음이었다. 오바마는 일본인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원폭 피해자 어깨를 감쌌다. 비록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 메시지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본 국민들은 깊게 감동했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윤 대통령도 그런 메시지를 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위령비를 참배하라고 조언하는 칼럼을 작성했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들에게 통 큰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물 컵 절반을 채우는 데 동참하라는 뜻이었다. 칼럼이 게재된 뒤 여권 국회의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칼럼 내용에 깊게 공감했으며 대통령 일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한 일본대사관에서도 긍정적 반응을 전해왔다. 칼럼이 한국과 일본이 화해를 바탕으로 미래를 여는 데 일조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메시지다. 독일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사죄한 장면은 대표적이다. 브란트는 찬비를 맞으며 무릎 꿇고 사죄했다. 당시 언론은 “브란트가 무릎 꿇음으로써 독일이 우뚝 섰다”고 했다. ‘무릎 사죄’는 전범국 이미지를 씻고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일본 국빈 방문 자리에서 일왕을 “천황 폐하”로 불렀다. “천황을 일왕으로 부르는 건 열등감이자 외교적 결례다. 그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불러주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두 차례에 걸친 “천황 폐하” 호칭은 일본인들 마음을 열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냈고, 한국은 문화개방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에즈라 보걸 전 하버드대 교수는 김 대통령 행보를 “진실한 마음으로 행한 연설은 일본을 감동시켰다”고 평가했다.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는 물 컵을 채우는 과정이다. 양국 정상에 이어 이제는 양국 정치인들 차례다. 진정어린 행보가 쌓일 때 한·일 관계는 지속가능하다. 기시다 총리가 서울을 다녀간 뒤 한국갤럽 여론조사(9~11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보여준다. 기시다 총리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었는지에 ‘좋아졌다’ 25%, ‘나빠졌다’ 12%, ‘변화 없다’ 48%였다. <총·균·쇠>를 쓴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한·일은 같은 피를 나누었고 성장기를 함께 보낸 일란성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한·일은 공동 운명체다. 일본 중의원·참의원 연설에서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