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희 칼럼] 누리호 발사 그 이후 펼쳐지는 K-우주시대

2023-05-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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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쉽게 표현하자면 로켓-발사체는 일종의 ‘탈것’이다. 우리가 물건이나 사람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사용하는 자동차, 버스, 택시, 트럭과 같은 각종 운송 수단처럼 로켓은, 발사체는 우주 버전의 운송 수단이다. 여기에 태우는 것이 물건이면 위성이나 탐사선이고, 사람이면 우주인이 된다. 우리가 지구에서 무엇인가를 옮길 때는 어느 한 지점으로 이동시키지만, 우주에서는 궤도라는 선으로 된 곳으로 이동시킨다. 즉, 지구 주변의 한곳으로 옮겨진 무엇이 충분한 속도를 가지면 그 무엇인가는 어떤 고도에서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우주의 한 궤도를 돌며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때 지구에서 우주로 옮기는 역할을 로켓, 발사체가 하고 그래서 우리는 이를 우주수송체 혹은 우주수송선이라고 부른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그동안 우주로 갈 수 있는 차량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번 주 (24일) 예정된 누리호 3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이미 2022년 2차 발사에서 누리호는 궤도 투입 확인용 검증위성과 초소형 위성 4기를 700㎞ 궤도에 성공적으로 투입했고, 이번 3차 발사에서는 차세대 소형위성 2호와 큐브위성 7기를 궤도에 투입한다. 즉, 누리호 1차 발사와 2차 발사가 궤도 투입 연습이었다면, 이번 누리호 3차 발사는 실제 위성을 최초로 발사하는 실전인 셈이다. 이후에도 누리호는 서너 번 더 발사가 예정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신뢰도 높은 우주 차량을 가지게 된다.

발사 순간의 화염과 굉음이 주는 짜릿함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는 성공적인 점화와 이륙 순간에 또 궤도 투입 순간에 열광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로켓 발사는 발사 그 자체, 궤도 투입 그 자체 거기까지일까? 대학 입시에서 합격은 순간의 기쁨이고 이후 어떤 대학 생활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지난 20여 년간 몇 번의 발사를 경험하면서 필자는 점차 발사 성공 그 너머의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주 개발과 관련된 몇 가지 활동을 차례대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위성을 만들고 로켓을 만들어서 일단 궤도에 올린다. 그러면 위성은 예를 들어 항법, 통신, 이미지와 같은 각종 데이터를 지구로 내려보낸다. 이 데이터는 지상에서 유의미한 정보로 가공되고 이때 우리는 최고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반적인 산업 생태계가 제조생산을 1차 산업, 물류를 2차 산업, 서비스를 3차 산업이라고 하듯이 위성과 발사체를 만들어서 발사를 하는 부분이 1차 산업, 위성이 우리에게 전하는 데이터들을 저장하고 배포하고 가공하는 것이 2차 산업, 마지막으로 우주 정보를 이용해서 우리 일상생활이 보다 편리해지고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분석으로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서비스가 3차 산업에 해당할 것이다. 특히 우주 분야에서는 위성과 발사체를 우주 공간으로 올리는 것을 업스트림 산업, 위성에서 데이터를 내려보내고 이를 가공하여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을 다운스트림 산업이라고 부른다. 전자가 하드웨어에 가깝고, 후자는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다른 사업군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산업에서도 업스트림보다 다운스트림 시장이 거의 10배 가까이 크다. 휴대폰 기기보다는 통신사업이 또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훨씬 큰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한정된 자원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우주 시장을 차지하는 다운스트림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업스트림 없는 다운스트림의 성장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내 트럭, 내 버스, 내 자동차가 없는데 어떤 물류, 어떤 여행, 어떤 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물론 외제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한참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데, 외제차를 구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이후의 전개는 독자들 상상에 맡긴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자동차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동차 생산능력이 없는 국가와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춘 대한민국의 경제 자유도를 생각해 본다면 나는 하향 평준화를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업스트림을 갖췄을 때 비로소 다운스트림 분야의 본격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 새로운 우주시대에 다운스트림은 무수한 임무를 창조해내며 업스트림의 발전을 자극한다. 최근에는 반도체 소자기술의 발달로 위성은 과거보다 작아지고 제작 비용이 과거 대비 10~10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설령 최종 임무 완수에 실패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용인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 그 덕분에 무수히 많은 도전적인 시도들이 가능해졌고 위성 제작과 운용, 데이터 활용 기술의 발전은 몇 단계씩 점프하며 도약 중이다. 지구에서 이미 사용 중이거나 검증 완료된 최신 기술들을 우주에서도 시도해보는 도전적인 사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궤도에 투입되어 잘 작동하는 위성도 위성 운용 프로그램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는 위성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위성을 ‘software defined 위성’이라고 부른다. 이 기술은 과거에도 있었다. 단지 과거에는 이런 작업이 자칫 위성 상태를 재기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어서 얼마 전까지는 시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에서 사용해 본 기술들을 우주 버전으로 사용하는 과감한 시도를 보다 쉽게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우주 탐사 부분까지 확대하면 탐사에 요구되는 각종 기술들을 개발하는 데 있어 더 다양한 업스트림, 다운스트림 기업이 추가되고, 그리하여 우주산업 생태계는 더욱 풍부해진다.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서비스를 새로 만들어내고,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적 임무를 시도하기 위해 다운스트림이 주요 고객이 되어 보다 저렴한 우주궤도 탑승권과 보다 자주 출발하는 우주 차량을 요구하며, 심지어는 우주 공간 내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 궤도 수송을 요구하는 등 고객이 업스트림의 발전을 견인한다. 누구나 쉽게 위성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우주궤도에 올릴 수 있는 우주 접근의 보편화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한 특징이다. 이렇듯 다운스트림과 업스트림의 자체 혁신, 그리고 상호 연결성으로 우주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 우주 역사에서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무궁화 통신위성을, 저궤도 아리랑위성을, 정지궤도에는 천리안위성을 배치했고 이 위성들이 지구로 내려주는 위성 정보를 바탕으로 재난·재해와 같은 사회문제를 비롯한 여러 이슈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또 우리나라는 우주인도 배출했고 우주탐사선 다누리호를 달로 보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우주궤도에 투입하는 실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우주 분야에서도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영역에 몇몇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2023년 2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서 민간 주도 우주 개발의 기조를 읽을 수 있다. 뉴스페이스 시대에 말하는 민간 주도는 한마디로 ‘내돈내산’이다. 기업이 우주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 세금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민간 자체 투자를 하고 시간과 비용의 효율을 극대화하여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에서는 차세대 중형 위성처럼 이미 민간에서 위성을 만들기 시작했고, 발사체와 관련해서는 최근 소형 발사체 시험발사라는 성과를 내놓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 우주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점차 다각화하고 있다. 발사와 궤도 투입을 미리 경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정부는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과 정책적인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국내 우주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비용 경쟁력 있는 기술을 과감하게 적용하여 한 단계 더 점프하기를 희망한다. 더 나아가 위성 활용 분야와 일반 산업 분야가 융합되어 기존 산업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다양한 솔루션들이 제시되길 희망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이런 솔루션을 제시하기 위해 어떤 탑재체가 어떤 조건으로 어떤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지, 이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발사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요구하는 보다 고객 중심적이고 임무 중심적인 우주 개발이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위성 활용에서 요구한 소형 위성 군집 운용 방식은 우주 부품의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위성이건 발사체건 양산을 하면 가격 혁신은 또 한 번 가능해진다. 그리고 저렴한 하드웨어의 사용료는 다시금 새로운 소프트웨어 활용 방식을 창조하는 등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우주 생태계는 성장한다. 모든 생태계는 순환하며 지속성을 확보한다. 우주산업 생태계 또한 순환해야 지속 가능하다. 이는 민간 금융이 투자하여 개발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누리호의 짜릿한 이륙 순간을 곧 다시 만나게 된다. 10년 넘는 시간을 바쳐 탄생한 우리의 피조물이 우주 공간을 향해 멋지게 질주하기를, 대한민국에 새로운 우주 개발 시대를 열어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임석희 필자 주요 이력

▷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기계 열유체전공 박사 ▷모스크바 항공대학교 연구연가 ▷ 켈디쉬 연구소 파견 연구원 ▷2013 나로호 개발 유공자 대통령 표창 ▷2022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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