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수출주도 성장의 한계 …새로운 성장모델 모색해야

2023-05-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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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코로나19가 세계전염병에서 풍토병으로 전환되면서 경제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지만 한국 경제의 핵심적 성장동력인 수출에서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작년 3월부터 무역적자가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중국시장의 재개방과 반도체 경기 정상화가 이루어지면 다시 흑자로 반전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대중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반전되더니 금년 4월까지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5월 10일까지 금년도 누적 적자만도 3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기재부는 ‘상저하고’의 경기전망을 고수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커지고 있다. 작금 일련의 동향은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공급망 내재화는 한국 산업의 공동화 위험을 높이고 있고 중국과의 교역은 기회요인에서 위협요인으로 반전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지난 20년에 걸친 해외직접투자의 확대가 한국 경제의 수출역량을 약화시켰으며 현정부의 이념적 에너지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산업입지로서 한국의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다.
미국의 공급망 내재화는 한국의 수출시장 축소를 가져오고 수출주도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자동차배터리, 바이오, 희토류 등 4대 전략품목의 미국 내 생산의 확대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미국의 제조업 부흥프로그램의 연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 팔려면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거친 요구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미국 내에 투자하도록 강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다 정교하게 4대 품목을 선정하고 반도체와 배터리에 대해서는 보조금이라는 당근을 활용하면서 내재화를 매우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반도체산업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투자 기업에게 보조금 지급조건으로서 과도한 영업비밀을 요구함으로써 반도체 생산뿐만 아니라 반도체기술 자체를 미국화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가 수출의 16.5%(2022년)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에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에 동참하는 것은 위험요인일 수 있다. 미국이 압박하는 대로 한국이 반도체수출의 41.1%를 차지하는 중국을 버리고 7.7%인 미국시장을 선택한다면 한국은 수출뿐만 아니라 성장, 일자리, 소득에서 부정적인 연쇄반응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탈피’라는 미국 내부논리는 한국 경제에게 부분적 공동화를 초래할 위험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미국 내 생산’을 강조했던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이든 행정부는 궁극적으로 ‘미국기업에 의한 미국 내 생산’을 중심으로 모든 공급망을 재편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무역질서가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전환하는 흐름은 수출주도 경제성장에는 ‘독(毒)’이다.
4대 전략품목의 공급망 내재화를 위해 미국이 내세운 경제안보는 미국 우선의 경제안보이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에서 한국에게 강요하는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정작 자신은 다른 전략품목들에서 실천하고 있지 않고 있다. 미국정부는 미국기업의 요청을 받는 형식을 빌려 중국의 자동차배터리 생산기술에 한해 미국 도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결국 한국 배터리의 높은 가격이 문제이지만 미국시장 과점을 꿈꾸던 한국 배터리기업들에게는 ‘뒤통수’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을 위해서는 ‘프렌드 쇼어링’도 없다.
대중무역이 기회요인에서 위험요인으로의 반전되는 것도 한국형 수출주도성장에 걸림돌이다. 중국과의 수출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무역수지가 적자로 고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반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미국편향으로 인해 대중무역은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에 악재로 반전될 우려가 크다. 코로나 팬데믹이 잠잠해지면서 중국 경제의 순환이 원활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편승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 경제의 공급망에서 점차 배제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희토류를 비롯한 원자재에서 한국의 중국의존도는 대체불가 수준이다. 나아가 중국은 이제 혁신제품에서도 가성비를 들고나오고 있다. 중국의 공급망 내재화는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전략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최근 한국의 수출시장에서 미국이 중국을 앞지르는 것은 미국의 공급망 내재화가 정비될 때까지의 과도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당초 한국이 수출주도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명분은 노동력은 풍부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나라였다. 그래서 한국의 수출주도성장은 외자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 한국이 자본부족국가에서 자본수출국으로 전환된 지 20년가량 되었다, 한국의 연간 해외직접투자는 2006년 100억 달러대에서 2013년에는 300억 달러대를 거쳐 2019년에는 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자본수출은 국내 수출역량의 해외 유출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K방산’에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무기수출과 공장수출 사이에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오히려 공장수출과 병행되면 경쟁력을 높여 수주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이 호주, 폴란드 등에 K9자주포를 성공적으로 수출한 비결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당장의 수출실적에 현혹되어 공장수출에 적극적일수록 수출주도성장의 수명은 단축된다.
국내에서는 정부정책이 수출을 막아서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중심 에너지정책은 원전비중을 문재인 정부의 23.9%보다 대폭 상향하여 2030년에는 32%까지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그 희생자는 30% 목표에서 21.5%로 낮아지는 재생에너지이다. 이러한 역전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재생에너지(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삼성전자가 평택, 용인에서 반도체를 생산해도 수출을 할 수 없게 된다. 원전산업을 육성하면서 RE100 목표를 우회하기 위해서 윤석열 정부는 원전을 포함하는 ‘무탄소(CF)100’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룰메이커’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적재산권 존중’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의정서 준수’를 담은 워싱턴선언에 서명함으로써 일단 한국수력원자력에 의한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의 독자적인 수출의 길은 막혔다. 대신 미국 뉴스케일파워의 SMR이 한국 재벌기업들에 의해 울진에 건설될 예정이다. 원전수출이 원전수입으로 반전되었다.
수출주도성장에서 수출은 처음부터 자기목적이 아니었다. 수출을 많이 해서 성장률을 높이고 동시에 고용을 늘리고 소득을 높여 ‘잘살아보자’는 일련의 논리적 연결고리가 그 배후에 있었다. 이제 수출주도성장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성장모델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워라밸이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성장전략을 찾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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