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반성 없는 잘못은 꼭 되풀이된다

2023-04-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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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우리가 지난 잘못을 끊임없이 반성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에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독일의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이 독일의 과거청산 방식에 대한 일부 독일 청소년의 불만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다. 오늘날 독일의 나치 과거청산은 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600만 명이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태인들은 물론 2차대전 당시 가장 먼저 침공당한 폴란드도 독일의 과거청산에 대해 신뢰를 보이고 있다. 독일이 과거청산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언제나 일본의 몰염치함을 마주해야 하는 한국인의 눈에는 가히 눈물겹다. 그러나 독일과 독일인의 이러한 과거청산이 종전 직후부터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차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연합국들이 서독 점령지에서 나치 과거 청산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시작한 조치는 뉴른베르크재판을 통한 전범의 처단과 희생자에 대한 회복과 배상이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과 영국의 군정은 나치정권의 반인륜적 행태를 끊임없이 의식화함으로써 ‘탈나치화’를 달성하고 그 자리에 영미형 민주주의를 심고자 했다. 하지만 동서냉전으로 첨예해진 체제경쟁으로 인해 ‘탈나치화’보다 서독의 경제적 재건이 중시되면서 과거 나치추종세력을 포함하는 ‘재통합’으로 무게추가 급속하게 이동하자 우경화에 속도가 붙었다. 나치당인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의 후신으로 ‘사회주의제국당(SRP)’이 창당되었다. 1949년 1기 연방의회는 서독 법정에서 처벌받은 나치당원들을 만장일치로 사면했다. 제2기 연방의회에서는 나치당원이었던 인사 129명이 연방의원이 되었다. 연합국 법정에서 내려진 판결은 모두 전과기록에서 삭제되었다. 나치범행의 책임은 소수의 나치 고위층에게 떠넘겨졌고 ‘망각문화’가 지배했다.

서독의 이러한 과거청산방식에 대한 비판은 일찍이 1959년에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에 의해 제기되었다. 나치전범들이 ‘타자화’되면서 과거청산은 슬로건이 되어버렸고 대부분의 독일인은 과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과거청산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63년 이후 아우슈비치재판은 나치 전범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독일인들에게 보여주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의 TV드라마 ‘홀로코스트’가 방영되면서 ‘민족말살’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정착되었고 추방하려고 했던 나치과거가 다시 돌아왔다. 1985년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대통령은 독일의 항복을 기념하는 5월8일을 ‘해방일’로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독일의 과거청산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독일인들에게 “과거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함으로써 오늘날의 ‘기억문화’를 선도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통일독일은 과거청산에 관한 한 모순된 나라이다. 학교에서는 나치범죄를 배우는데 학교 바깥에서는 동서독 지역에서 나치추종자들의 폭력에 많은 사람을 죽거나 다치고 있다. 통일과 더불어 동독체제가 “제2의 독재체제”로 비하되면서 나치 과거청산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다. 반면에 ‘기억문화’도 크게 활성화되어 추모관이 건립되었고, 추모행사가 성황을 이루었다. 2000년대에는 제2차대전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부르는 새로운 ”애국주의“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독일의 과거청산이 21세기 들어 갈수록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단번에 제3당으로 중앙정치에 진출한 이변은 과거를 잊지 말고 “진실을 직시하라”는 바이체커 전 대통령의 호소가 잊혀저 가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을 일본에 연장해서 적용해본다면, 일본이 극구 과거사를 왜곡하고 부인하는 것은 미래에도 동일한 침략전쟁을 죄의식 없이 ‘합법적으로’ 자행하겠다는 암묵적 의사표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반성하고도 잘못은 되풀이될 수 있겠지만 반성 없는 잘못은 꼭 되풀이 된다.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물잔의 절반을 채웠으니 일본도 채울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간청에 일본 정부는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개정 교과서로 답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의 대외관계는 계급과 민족 사이에서 마치 널뛰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친일적이면서 북한에 강경하다. 반면에 개혁을 표방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에 유화적이고 일본에 엄격하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국력의 손실이 너무 크고 정권을 뛰어넘는 일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고 국정이 불안정하니 강대국을 향해 주도권을 잡기도 어렵다. 이 상황에서 여하한 분열도 최소화하고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원칙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사회통합을 위한 대타협’을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견지하고 헌법적 가치를 보존한다는 원칙에 찬성하는 세력을 규합하는 노력으로서 일종의 네거티브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6.25 전쟁의 북침설을 주장하지 않을 것,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및 약탈의 사실성과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을 것,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명확하게 부정할 것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극단주의자금지법’처럼 공직 담당과 학술 연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30년 흑자가 적자로 반전되자 그 뒤에 가려져 있던 50년 묵은 대일무역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바로 이 극적인 순간에 대일무역적자를 조금씩이나마 줄여나가던 소부장산업 육성의 고삐가 느슨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IMF외환위기의 방아쇠를 당겼던 일본은 한국 반도체산업을 정조준하고 세가지 소재의 수출을 차단했었다. 한국이 자체개발과 수입선 다변화로 대처하면서 일본의 반도체 ‘가미가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래도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재편입하는 조치를 유보함으로써 한국이 ‘안보위협국’이라는 빌미를 살려두었다. 그러면서 한국에게 안보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반도체 동맹’에 반발하는 중국은 한덕수 총리의 “중국은 중요한 경제파트너”라는 유화제스처에도 한국의 무역수지 개선에 협력할 것 같지는 않다. 5월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미 안보동맹에 경제동맹을 묻어가려는 미국 우선주의에 끌려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안보실 도청에 대한 대통령실의 미온적인 반응은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오히려 떨어뜨릴 것이다. 유사한 사태가 다른 나라에 의해서도 자행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 한국은 비밀을 공유할 수 없는 나라가 된다. 미·중·일 모두 자국의 국익을 우선한다면 우리는 더욱 국익을 최우선해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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