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다음은 표준전쟁, 표준에서 일구양제(一球兩制)를 대비하라
전병서/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 한국의 무역수지가 4월까지 연속 14개월째 적자다. 무역적자의 주범은 지역으로는 중국이고, 품목으로는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 감소다. 4월 무역통계를 보면 중국은 -56억 달러 적자인 중동에 이은 -22억 달러 적자로 둘째로 적자 폭이 컸다. 품목별로는 반도체가 65.4억 달러로 전년대비 40.5% 감소한 반면 자동차는 59.1억 달러로 40.9% 증가했지만 자동차가 반도체 실적 악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중국경기는 봄바람인데 한국수출만 겨울바람인 것이 문제다. 2022년 4분기에 2.9%로 추락했던 중국GDP성장률은 2023년 1분기에 4.5%로 높아졌는데 한국의 대중수출은 4월에 -27%였고 대중 반도체 수출은 -34%였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수출과 중국경제는 동행이었지만 반도체를 빼면 한국의 대중무역적자는 이미 2021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은 지금 소비의 GDP 기여도가 65%를 넘는 소비 국가이고 서비스업이 GDP의 53%에 달하고 있고 공업은 32%에 불과한 서비스의 나라다. 중국이 소비대국, 서비스대국으로 바뀌었지만 한국의 대중수출은 94%가 자본재와 원재료이고 소비재는 6%에 불과하다.
우리는 중국시장이 끝난 것으로 인식하지만 대중 수출부진이 중국의 시장한계 때문인지 한국의 실력이 문제인지를 냉정하게 봐야 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서운한 감정의 연장선상에서만 중국을 해석하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대표 수출상품인 자동차와 휴대폰을 보면 2022년에 중국 자동차시장은 2685만대였고 미국은 1429만대, 전기차는 중국이 687만대였고 미국은 99만대였다. 중국 자동차시장은 미국의 1.9배, 전기차는 6.9배다. 그런데 세계 3위를 자랑하는 한국자동차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1.6%에 불과하다. 2021년 중국의 휴대폰 가입자수는 17.3억명이고 미국은 3.6억명으로 중국이 미국의 4.8배지만 한국업체의 중국 휴대폰시장 점유율은 0%대다.
한국을 도와줄 신(神)은 하늘에 멀리 있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전기차, 휴대폰시장은 지척의 거리 중국에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중국의 경기회복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와 소비가 중심인데 한국은 수출 구성이 중국의 경기회복에 올라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 문제다.
미국의 적보다 동맹이 되는 것이 더 위험한 시대?
미국의 70년 우방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와 미국의 반도체, 배터리 동맹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나라이고 이것이 우방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돈 되면 동맹이지만 돈 안되면 언제든 버리는 것이 국제관계다.
미국 대통령까지 한국에 직접 날아와 투자하면 잘해주겠다던 약속은 간데 없고 결국 배터리보조금에서 한국은 빠졌다. 미국의 대중국 경제봉쇄의 양대 축인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와 Chip4 동맹에 한국은 1번으로 가입해서 미국의 위신과 명분을 세워주었지만 한국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착공하고 나자 미국은 또 반도체보조금에서 뒤통수를 쳤다. 보조금을 수령하면 대중국 반도체증설 투자를 실질적으로 중단하라는 조건을 걸었고 미국공장의 정보접근권과 초과이익 공유조항까지 수용하라는 요구를 했다.
공장은 보조금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짓는 것이 답이다. 전 세계 반도체시장의 65%가 아시아에 있고 미국은 25%에 불과한데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고려한 것인데 투자유치를 하는 쪽에서 황당한 조건을 들고 나온 것이다. 보조금 받고 미국에 첨단기술 제공하고 중국시장에서는 철수하라는 말을 우아하게 돌려 말한 것뿐이다.
미국은 경제와 기술에 대단히 정치적인 색채를 띤 ‘가치공유’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가치공유’는 동맹국이 미국에 흥정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며, 미국의 이익에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가치는 공유할 수 있어도 이익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1986년에 일본과 반도체전쟁을 하면서 3번에 걸친 미일반도체협정 연장을 통해 당시 G2이자 최대 동맹이었던 일본 반도체산업의 싹을 싹둑 잘라 사라지게 만들었다.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친구가 되는 것은 더 치명적”이라는 언급을 했던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의 말은 미국은 영원한 적도 동맹도 없고 오로지 국익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고 이는 지금 미·중의 기술전쟁에 끼인 우리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
기술 다음은 표준전쟁, 표준에서 일국양제(一球兩制)를 대비해야
미국의 반도체기술 봉쇄를 통한 중국 좌초전략인 IPEF와 Chip4 동맹은 구멍 숭숭 뚫린 그물이다. 트럼프 때 경제번영네트워크(EPN)처럼 정부간 협약에 불과한 IPEF는 바이든정부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반도체장비, 메모리, 파운드리에서 서로 경쟁자인 미, 일, 한, 대만을 한팀으로 묶은 Chip4 동맹도 애초부터 일사불란한 단결은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 3년 차인 바이든이 연임 못하면 모든 정책이 다 뒤집어질 판이다. 트럼프 때 대중 통상전략은 바이든이 집권하자 소리 없이 사라졌다. 지지율 역대 최악인 바이든의 기술동맹전략도 만약 공화당이 재집권하면 같은 운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에 이은 “중국표준2035”를 발표했고 미국도 2023년 5월 AI를 비롯한 “차세대기술 국가표준전략”을 발표했다. 그래서 미·중 기술전쟁의 2막은 표준전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산업패권은 표준의 장악이다. 중국의 “중국표준2035”와 미국의 “차세대기술 국가표준전략”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고 미·중의 동맹국 혹은 기술보유국의 줄 세우기 경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제 제3세대반도체, 양자반도체, 그리고 초전도체, AI 같은 미래 기술 분야에서 미·중의 기술표준 선점경쟁은 더 가열될 수밖에 없고 한국은 어느 한편에 줄 서는 것은 패착이다.
빅데이터와 반도체 소비의 “최대의 시장”을 가진 중국과 “최고의 기술”을 가진 미국의 전쟁이지만 첨단산업의 역사를 보면 기술은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 현재 미국의 압박을 받아 궁지에 몰린 중국도,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도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모른다. 미·중이 화해할 가능성이 없다면 향후 세계는 기술도 시장도 한 지구에 두 개의 체제로 가는 일구양제(一球两制)의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과 산업생태계가 미국과 중국 중심 시장으로 구분되면 기술에서도 현재와 같은 글로벌 표준이 아닌 미국표준(A/S: American Standard)과 새로운 중국표준(C/S: Chinese Standard)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 미·중에 양다리를 걸칠 수밖에 없는 한국은 반도체를 포함한 AI 같은 첨단기술에서 2개의 표준 모두에 대비해야 한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푸단대 박사·칭화대 석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Analyst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