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5월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위원직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태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는 당 윤리위원회 회의를 8시간 남짓 앞두고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며 "저의 논란으로 당과 대통령실에 누가 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태영호 의원이 지난 2월 13일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추모비에 참배하고 있다.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연합뉴스]
논란에도 불구하고 태 최고위원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태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자신을 윤리위에 제소한 것을 두고 "사과할 사람은 김일성 손자 김정은인데 김정은한테는 입 뻥끗 못 하고, 저를 보고 사과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태영호 의원이 지난 3월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회에서 울먹이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그는 수락연설에서 울먹이며 "당원 동지들이 저를 믿고 이렇게 최고위원에 입성시켜 주셨는데 당원 동지들의 그 믿음, 신임 영원히 잊지 않고 한반도에서 자유 통일이 이뤄지는 그 순간까지 제가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했다.
태 최고위원은 당시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함께 울먹이며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수락연설을 하면서는 만세 삼창을 하기도 하고, 신발을 벗고 큰 절을 하기도 했다.
이후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 '4·3은 김일성 일가의 지시'라고 주장해 4·3 유가족 등이 항의한 것을 두고 "어떤 점에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없나'라는 질문에 대해 "4·3 사건에 대한 용어부터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이번엔 김기현 대표가 나섰다. 김 대표는 지난 4월 6일 "이 시각 이후 당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당원을 부끄럽게 만드는 언행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당헌·당규에 따라 당 대표에게 주어진 권한을 보다 엄격하게 행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태 최고위원은 다음날인 7일 김 대표의 경고성 문책에 대해 "당연히 동의한다"라며 "저를 포함해 아쉽게도 여러 가지 논란을 많이 일으켜서 김 대표께서 이제는 좀 기강을 잡아야 되겠다, 이렇게 인식하신 것 같다"고 했다.

각종 설화와 논란을 일으킨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소명을 마친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태 최고위원은 의원실 보좌진들과 소통 과정에서 '비공개'로 보고돼야 할 메시지가 소통 오류로 공개됐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그는 "당에 누를 끼친 데 대해 죄송스럽고 사과드린다. 당의 어떠한 조치도 달게 받겠다"고 적었다. 그러나 약 15분 뒤에는 '당의 어떠한 조치도 달게 받겠다'라는 문장을 삭제하고, 대신 "저와 당사자를 당 윤리위원회에서 심사하도록 요청하겠다"고 수정했다.
이후 태 최고위원의 당 윤리위에 '셀프 심사'를 맡겼다는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윤리위 핵심 관계자는 지난 1일 본지 기자와 만나 "태 최고위원이 윤리위에 징계 신고서를 낸 내역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구정에 KBS '역사저널 그날' 프로그램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김구 선생은 마지막까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암살됐다는 식으로 역사를 다룬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모르는 사람이 그걸 봤을 때는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일성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막고, 공산 정권을 세우기 위해 김구 선생을 이용했다"라며 "그런 북한의 전략까지 알려줘야 정확한 비교가 되지 않는가"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태 최고위원에게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 '자제령'을 내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태 최고위원을 직접 만나 경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김 대표가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이 지난 4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기현 대표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0일 태 최고위원이 최고위 회의가 열리던 시각 홀로 원내대표실에서 윤 원내대표를 기다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태 최고위원 주변에서 최고위 회의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태 최고위원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태 최고위원의 면담에 제가 몇 가지 답변을 해드리고 그렇게 했다"라며 "그분이 생각하는 선의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민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나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해서 입장을 가지면 좋겠다는 정도(의 얘기를 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서 제가 최고위 회의에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를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당원들이 선택해 줬기 때문"이라며 "지난 전당대회는 여론조사 3%라는 꼴찌로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오만곳에 도움을 구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전당대회 당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발언한 것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태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발언이 김 대표를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또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공식 사과 요청한 것을 거절하는 것이냐는 물음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황정근 국민의힘 윤리위원장이 지난 5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윤리위 첫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잇단 설화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태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개시 이유는 △SNS에 'JMS(Junk·Money·Sex) 민주당' 게시 △제주 4·3 사건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발언 등 두 가지다. '백범 김구 선생은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는 태 최고위원의 발언은 징계 개시 사유로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MBC는 태 최고위원이 지난 3월 9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실 내부회의 녹음본을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녹취에서 태 최고위원은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최고위원 회의 발언을 대통령의 정책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할 것을 지시하면서 '공천'을 거론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태 최고위원의 발언은 '대통령실 당무 개입' 논란으로 이어졌다. '용산 출장소', '용산의 하수인'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당 지도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김 대표는 윤리위에 태 최고위원의 음성 녹취 유출 논란을 기존의 다른 사건과 병합해 심사할 것을 요청했고, 윤리위는 이를 받아들였다.

각종 설화와 논란을 일으킨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앞으로 저를 정치권에서 퇴출시키려는 음해성 정치공세와 막후 작전, 가짜 뉴스들은 더욱 많이 나올 것이고 '태영호 죽이기'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저의 모든 신상도 탈탈 털 것이다. 그러나 저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을 '탄압'으로 규정한 셈이다.
그러나 태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연 지 일주일 만인 이날 최고위원직에서 자진사퇴했다. '4·3 사건 폄훼', '공천 녹취 유출' 논란 등이 여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시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윤리위는 이날 오후 6시 김·태 최고위원의 징계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애초 '당원권 1년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태 최고위원이 자진사퇴하면서 윤리위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원권이 1년 넘게 정지되면 내년 4월 총선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으면, 오는 11월에야 징계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공천권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최종 징계 수위가 당원권 정지 3개월이나 경고 정도로 낮아진다면 공천 신청 가능성은 열리게 된다. 태 최고위원은 이런 점을 고려, 윤리위 징계 발표를 코앞에 두고 자진사퇴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