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테스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워싱턴DC 영빈관 접견장에서 만나 이같이 결정했다.
환담 이후 테스 서랜도스 공동 CEO는 "넷플릭스는 25억 달러를 한국에 투자해 4년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리얼리티쇼 창작을 도울 것"이라며 "한국의 창작업계에 대한 믿음이 있고, 한국이 멋진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한류에 대해 애정과 강력한 지지를 보내준 것도 중요한 원인"이라며 투자 금액을 키운 이유를 설명했다.
테스 서랜도스 공동 CEO는 이번 넷플릭스의 투자가 한국 창작업계에 활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K콘텐츠가 글로벌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넷플릭스의 적극적 투자가 있었다는 부연이었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부터 '지금 우리 학교는' '수리남' '더 글로리' '솔로지옥' '피지컬: 100'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콘텐츠를 언급하기도 했다.
서랜도스 공동CEO의 말대로 넷플릭스의 국내 등장은 한국 콘텐츠 업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창작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작품의 퀄리티를 높였고 콘텐츠를 해외에 공급해 글로벌한 반응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웨이브의 이태현 대표도 넷플릭스의 적극적인 투자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달 25일 열린 라인업 발표회에서 이태현 대표는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3조 이상의 자본을 투자한다는 건 반길 일이다. 자본이 시장에 들어와야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경쟁이 된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그만한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건 나라 내부에서 산업이 살아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거대 자본에 따라 국내 콘텐츠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드라마 제작사나 투자 배급사의 분위기는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시장의 불균형'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하나둘 들려왔다. 영화계는 코로나19 이후 침체한 분위기를,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은 쏠림 현상에 대한 걱정을 보였다.
한 영화 관계자는 "인도·프랑스 등 영화가 강한 나라들을 보면 내수가 탄탄한 편이다. 그래야 문화와 시장이 보존되는 거다. 국내 시장의 경우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넷플릭스 정도만 흑자지 나머지는 적자다. 출혈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영화도 극장 아닌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만 향하게 될 거고 10년 후에는 넷플릭스만 남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한 투자 규모가 국내 콘텐츠 시장의 양적 성장을 이끌지는 미지수"라며 "넷플릭스 측이 정확한 제작비를 밝히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한 2021년 5000억원을 투자했을 당시보다 더 다양한 작품을 연이어 선보인 지난해까지의 포트폴리오를 본다면 이미 평균적인 제작 규모는 연평균 8000억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징어 게임' 이후 글로벌 히트작을 계속해 만들어 낸 넷플릭스 입장에선 가성비 좋은 제작 환경을 확보했음을 확인한 이상 그 이상의 추가적인 규모 확장을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창작된 콘텐츠의 저작권과 권리가 넷플릭스에 귀속되는 계약 구조는 시장의 균형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질적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콘텐츠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그에 맞는 대우와 조항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드라마 등 방송 업계도 우려를 드러냈다. 최근 지상파 3사와 tvN까지 수목드라마 제작을 잠정 중단하며 매체에서 시리즈물을 더 만나기 어려워진 상황. 콘텐츠 제작사들도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지금도 넷플릭스만 흑자고 나머지는 적자 상태다. 이렇게 불균형이 지속된다면 살아남는 매체가 몇이나 되겠나.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지금은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매체 수도 많고 제작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만 장기적으로 넷플릭스만 살아남았을 때는 콘텐츠 산업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콘텐츠 시장의 다양성에 대한 걱정이 있다. 넷플릭스도 초반에는 극장이나 지상파에서 보기 힘들었던 장르나 배우들이 소개되었지만, 지금은 유명인들 위주로 굴러가지 않나. 독점이 무서운 건 그런 이유다. 출구는 없는데 계속해서 한 곳으로만 쏠리면 국내 콘텐츠 업계도 다양한 장르나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