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반미감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지금 용산에 미군이 아닌 중국군, 또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어도 이처럼 거친 시위가 가능할까, 아마 어려울 거다, 상대가 미국이나 되니까 가능한 거라고. ‘미국이나 되니까’라는 말 속에는 미국에 대한 다양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적어도 관용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담겨있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어도 그런 믿음 위에서 70년 한·미동맹은 유지돼왔고,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한 동맹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놓고 평이 갈리고 있다. 한쪽에선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말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진영에선 “미국 편에 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전쟁위험만 키웠다”고 비판한다. 대통령 스스로 미-중 신(新)냉전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더 적실성이 있을까.
동북아는 이미 북방 3각(중‧러‧북한)과 남방 3각(미‧일‧한국)의 경쟁(대결) 구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남방 3각 열차에 올라타기로 결심한 것 같다. 모호성(ambiguity)의 전략에서 명료성(clarity)의 전략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비춰 바른 선택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북방 3각과의 관계를 대결 모드로만 가겠다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 고난도의 행보를 어떻게 이어갈지 주목된다.
다시 ‘죽창가’를 불러서야
윤 대통령은 일제 강제징용 문제를 ‘제3자 변제’로 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단숨에 정상화시켰고, 그 동력으로 한·미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으며, 이를 통해 한‧미‧일 3각 협력체제가 재가동되도록 했다. 역대 지도자 중 이렇게 발 빠르게 상황에 대응하고, 주도한 사람은 드물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좌(左)로 흘렀던 대한민국 외교의 시계가 급속히 균형점을 향해 돌아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방미 중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 복귀시키고, 아프리카 수단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도 서로 협력한 데 대해 “한·일관계가 변해가는 것으로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런 변화는 살려나가야 한다. ‘죽창가 정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예정보다 앞당겨 며칠 뒤 방한한다.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릴 주요 7국(G7) 및 한‧미‧일 3국간 정상회의를 앞두고 우리 측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를 희망해왔다. 한국은 요즘 들어 부쩍 G7의 추가 회원국(G8) 후보로 추천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리셋(reset)될 한·일관계의 미래가 궁금하다.
한미동맹이 최상의 克日, 用日策
엄밀히 말하면 ‘기회’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먼저 있었다. 2015년 박근혜 정권 때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안’은 양측의 입장이 비교적 충실히 절충, 반영된 안으로 평가받았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고, 한국에다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돈도 내놓았다. 이를 뒤집어버린 게 문 정권이다. ‘졸속’을 이유로 문 대통령은 합의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이 대목이 민주당으로선 가장 아플 것이다. 판을 바꾸고 키울 드문 기회를 걷어 스스로 차버린 셈이다. 지금이라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윤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폄훼하고 조롱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다.
흔히 ‘동맹외교의 시대’라고 한다. 개별국가 차원을 넘어, 동맹을 만들고, 동맹을 통해 안전도 보장받고, 공통의 이익도 추구한다는 뜻이다. 미소(美蘇) 냉전이 끝나고,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되면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이 대거 NATO에 가입한 게 이를 웅변한다. 심지어는 소련의 일부였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까지도 NATO 회원국이 됐다. 미·중 신냉전 시대, 불안한 경제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모든 나라는 하나라도 더 내 편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한·일관계도 동맹외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3월 한·일정상회담 규탄대회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해 “강제동원 변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원상복귀 등을 통해 한·일 군사협력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자위대가 다시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우국충정에서 한 말이겠지만 낡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대표는 자신이 그렇게도 걱정하는 자위대를 제어해주는 게 미국을 고리로 한 한‧미‧일 협력(동맹) 체제임을 잠시 망각한 것 같다. 한·미동맹이 최상의 극일(克日), 용일(用日)의 방책이다.
‘빈손외교’ 주장의 자가당착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민주당 인사들의 비난과 조롱, 냉소는 과도한 감이 있다. 이 대표는 “아낌없이 퍼주는 글로벌 호갱 외교”라고 했다. ‘호갱’은 어리숙해 속이기 쉬운 고객을 지칭하는 속어다. 대통령이 화동(花童)의 볼에 입 맞춘 걸 두고 “성적 학대”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빈 만찬 노래에 대해선 “저 정도에 기립박수면 제가 했으면 아마 (참석자들이) 기절했을 것”이라고 한 의원도 있었다. 그는 이른바 공공외교, 감성외교의 시각으로 이를 볼 안목은 없었던 듯하다. 윤 대통령 노래의 주 고객은 미국 국민과 세계였다.
민주당은 이번 한·미정상 외교를 ‘빈손외교’라고 한다. 이런 평가는 북핵문제에 관한 한 자가당착이다. ‘빈손외교’라 함은 실질적인 핵 억지 강화책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일 것이다. 만약 NATO식 핵 공유나 전술핵 배치를 확약 받았다면 ‘빈손외교’라는 말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민주당의 원조 386들은 “북이 핵을 개발하면 그 핵이 결국엔 우리 것이 되니 나쁘지 않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김정일, 김정은이 설마 같은 민족에게 핵을 쏘겠느냐”고도 했다. 그런 민주당이 윤 정부가 핵 억지 강화에 실패해 ‘빈손외교’를 했다고 질책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386들의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빈손외교’에 안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체계적인 입장정리가 안 돼 있는 듯하다.
국제정치학자 이상우(85) 교수는 저서 <21세기 국제환경과 대한민국의 생존전략>(2020)에서 미-중 신냉전체제가 지속되면 한국은 앞으로도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계속 강화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에게 한미 군사동맹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현재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포괄적 동맹으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 협력체제를 한국이 포함된 5국 협력체제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역대 정권의 외교‧안보‧국방정책의 자문에 응해온 이 분야의 원로 대가다. 서강대 교수, 한림대 총장,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국방선진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물론 대표적인 보수우파다.
중립과 고립
그의 말은 이어진다. “한국은 미-중 냉전에서 어느 편도 들지 말고 중립을 지키면서 등거리 외교를 펴는 게 자주권을 지키고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국시로 하는 한국이 취할 전략이 못 된다. 오히려 미·중 양국과 멀어지는 고립을 자초하는 전략이다.”
그는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사실상의 한‧미‧일 3국 동맹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국의 팽창을 억지하는 미국의 전략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이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서있다”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한-일 동맹이 어렵기 때문에 한-일 준동맹 상태로 미국과 한-미-일 3국 동맹체제를 형성했고, 이를 통해 구(舊)냉전 시대엔 소련의 압박을 막아냈고, 지금은 중국의 군사압력에 맞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우 교수의 주장은 윤 대통령의 대일, 대미, 대동북아 전략과 다르지 않다. 보수 우파여서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게 기본이고, 논의의 출발점임을 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미-중 사이에서의 명료화 전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두 강대국 사이를 민첩하게 헤집고 다님으로써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이른바 ‘헤징(hedging)’까지도 포기하겠냐마는 명료화를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원칙과 명분은 물론 국익(國益)까지도 챙기겠다는 것이니 우리 외교관들은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방향은 분명해졌고, 남은 것은 모두의 역량과 열(熱)과 성의(誠意)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