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27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이런 내용이 담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놓은 피해자 지원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임차 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특례 지원 △계속 거주 희망 시 공공이 매입한 후 임대주택으로 공급 △생계가 곤란한 피해자에게 긴급 자금·복지 지원 등이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시한 ‘전세사기 피해자’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단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전세 현상으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지원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매수 희망자와 거주 희망자로 나눠 피해 지원을 진행한다. 거주 중인 주택을 매수하길 희망하면 정부는 경매‧공매 유예로 피해자에게 준비기간을 제공하고 우선매수권과 조세채권 안분으로 주택을 낙찰받을 수 있게 돕는다. 조세채권 안분이란 전체 세금체납액을 임대인 소유 개별 주택별로 나누는 제도로, 조세채권이 분산되면 체납세액이 주택 가격보다 많아 경매·공매가 진행되지 않았던 주택도 일시에 경매·공매를 진행시킬 수 있다.
경매·공매를 통해 해당 주택을 낙찰받을 때에는 금융·세제 지원도 진행한다. 구입 자금 마련을 위해 디딤돌대출을 받으면 최우대 요건인 신혼부부와 동일한 기준(한도 4억원·금리 1.85~2.7%·만기 30년)을 적용하고 거치 기간도 3년까지 연장한다. 소득 기준은 700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소득 기준이 없는 특례보금자리론은 최대 5억원까지 대출 가능하며 금리는 3.65~3.95%가 적용된다. 민간 금융사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도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기존 임차 주택 낙찰 시 200만원 한도 내에서 취득세를 면제하고 3년간 재산세도 감면한다.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차인에게서 권한을 넘겨받아 주택을 매입한 뒤 매입임대주택으로 피해자에게 임대한다. 피해 임차인에게는 소득·자산 요건과 상관 없이 매입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부여한다. 최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으며 임대료는 시세 대비 30∼50% 수준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 보상, 후 구상' 방안은 이번 지원 대책에서 제외됐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기 피해에 대해 국가가 세금으로 피해금을 먼저 대납하고 나중에 환수하는 것은 현재까지 있지도 않았고 이런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며 "공권력 발동, 사적 재산에 대한 공권력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는 게 우리 헌법의 기본원칙"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주거 안정성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대책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제도는 민간·사인 간 계약이어서 정부가 직접 피해금을 물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이번 정부 대책이 전세사기 자체를 근본적으 막을 수는 없겠지만 피해자 주거 안정에는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최소한 피해자가 살던 주택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해 퇴거 위험을 낮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특히 LH가 매입한 주택에 기존보다 싼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차인이 입은 피해액도 어느 정도 상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세사기' 여부를 가려내는 단계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며 더욱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명확한 경계가 없이 무분별하게 지원해주면 오히려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상에서 빠지고 역전세 임차인이 구제받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문턱을 높여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대상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제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피해자 요건이 매우 까다로운 데다 위원회 주관적 판단에 따라 피해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제한될 수 있어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