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쌍발통 정치' 정운천을 위한 변명

2023-04-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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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전주을 재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전북도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패인을 냉정하게 돌아보기는커녕 손쉬운 희생양 찾기를 택한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책임 떠넘기기와 희생양 찾기는 국민의힘 고질병이다. 대선이 끝난 뒤 이준석 대표를 찍어내고,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유승민과 나경원을 주저앉힌 연장선상에 있다. 그동안 보수정당 불모지에서 정 의원이 쏟은 열정을 헤아린다면 책임전가는 후안무치하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호남에서 역대 최고 지지율(12.7%)을 얻었다. 이전까지 얻은 최고 지지율(박근혜 10.5%)보다 높았다. 전북은 14.4%였다. 전적으로 정 의원 공으로 돌려도 과하지 않다.
정 의원은 정치 입문 이후 줄곧 지역장벽 허물기에 매진했다. 지난 12년 동안 정치 행보는 일관된다. 호남 동행의원, 5.18 유족 감싸기는 대표적인 호남정서 끌어안기였다.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정 의원만큼 지역장벽 해체에 정치적 소신을 건 인물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김부겸 총리, 홍익표 의원 정도가 떠오른다. 모두들 지역주의 해체를 입에 올리지만 정작 지역구도에 기대어 정치 생명을 이어갔다 해도 과언 아니다. 정 의원은 일관되게 지역구도 해체에 열정을 바쳤다. 하나씩 복기해보자.

정 의원이 민주당 텃밭에서 보수정당 후보로 처음 나선 건 2010년 5월 지방선거다. 당시 한나라당 전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18.2% 지지를 얻었다. 비록 낙선이지만 18.2%는 역대 최고였다. 이전까지 보수정당 후보 중 호남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은 없었다. 정 의원 지지율은 거품이 아니었다. 2년 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전주을) 정 의원은 35.8%를 얻었다. 두 배 가까운 지지율 급등은 그가 몸으로 일군 결과였다. 당선에는 실패했다. 민주당 텃밭에서 승리는 4년 뒤 2016년 찾아왔다. 역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20대 총선에서 37.5%로 승리했다. 민주당 후보와 111표 차이, 극적인 신승이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민주당 안방에서 당선은 기적이었다. 시민들은 눈물겨운 행보로 맺은 결실로 평가했다. 정 의원은 정당 지지율이 아닌 개인 지지율로 당선을 이끌어냈다. 그는 세 차례 선거를 치르는 동안 중앙당에 기대지 않고 유권자들과 소통했다. 지역여론은 보수정당 후보에게 싸늘했다. 심지어 그가 보는 앞에서 명함을 찢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정 의원은 쌍발통(두바퀴) 정치를 강조하며 꾸준히 유권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정 의원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만 장에 달하는 유권자들과 찍은 셀카 사진은 그 증거다. 그가 빤한 낙선을 예상하면서도 출사표를 던진 이유는 지역주의 타파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원외 최고위원 당시는 ‘함거(조선시대 죄인을 호송하거나 맹수를 가두는 데 사용하던 우리처럼 만든 수레)’에 들어가 전북도민들에게 사죄했다. 도지사 후보 시절 약속했던 LH공사 전주 유치를 지키지 못했다며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었다. 낙선자 신분이니 누구도 탓하지 않았지만 자처했다. 이를 두고 쇼라고 폄하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는 ‘또라이’ ‘돈키호테’라는 공격을 뒤로한 채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지도부를 압박해 국민연금공단 전주 유치를 성사시켰다. 전주 유치가 결정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앞 다퉈 자기 업적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정 의원 작품이다.

국회에 입성한 뒤 지역장벽 해체를 위한 행보는 본격화됐다. 그는 국민의힘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아 호남 동행의원을 추진했다. 호남 동행의원은 국민의힘 의원 57명을 호남지역 기초단체와 묶어 예산과 지역 현안을 뒷받침하는 기구다. 또 해당 지역 농산물 팔아주기, 관광 활성화를 지원했다. 호남에 국민의힘 의원이 없는 점에서 착안했는데 큰 호응을 얻었다. 국민의힘 의원들로서는 호남지역 정서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고, 호남은 국민의힘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 영남과 호남 사이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한 시도는 이후로도 계속됐다. 밑바닥 민심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2020년 5월 5.18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무릎 사죄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듬해 5월에도 5.18묘지를 참배하고 5.18유족회와 간담회를 가졌다. 정 의원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다. 정 의원은 5.18단체 공법단체 설립과 유가족 보상범위를 확대하는 법안 제정을 주도했다. 이를 위해 5.18단체와 17차례 넘는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5.18유족회는 정운천과 성일종 의원을 5.18 기념식에 초청함으로써 호응했다.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5.18 기념식에 초청받기는 처음이었다. 정 의원은 지난해는 5.18유족회로부터 ‘자랑스러운 광주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는 여야를 넘나드는 꾸준한 호남동행 행보 결과였다. 그는 전주상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를 외치며 동료 의원 151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쌍발통 정치가 아니고는 어려운 결과다. 

정 의원은 7일 전북도당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2020년 국민의힘은 호남 없이는 정권 교체도 전국정당도 없다는 신념 아래 국민통합위원회와 호남동행 국회의원단을 출범해 서진 정책을 시작했다”며 “진정성 있는 노력의 결과로 19대 대선 당시 3.3%에 불과했던 전북 득표율이 20대 대선에서는 14.4%, 역대 최고득표율을 기록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더 낮은 곳에서 쌍발통 정치가 꽃 피울 수 있도록 묵묵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봤기에 정치적 수사가 아님을 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보수 불모지에서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을 허물지 않으려면 김경민 후보가 얻은 8%가 지닌 함의를 냉정하게 헤아려야 한다.

남 탓만 하는 책임전가는 오만이자 자멸하는 길이다. 진정성 있는 행보가 선행될 때 호남 민심도 호응한다. 거듭 말하지만 손쉬운 책임 떠넘기기는 자책골이나 다름없다. 지역연고도 없는 안해욱 후보에게도 뒤진 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자초한 결과다. 끊임없는 실언과 실책, 그리고 일방적인 국정운영 방식이 빚은 참사다. 그동안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헌신한 정 의원에게 책임을 돌린 건 몰염치하다. 퇴행적 행보를 걷는다면 호남에서 국민의힘 입지가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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