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중국과 영토 분쟁 지역인 아루나찰 프라데시(Arunachal Pradesh)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주최에 앞서 G20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3월 25~26일 열린 행사는 ‘연구, 혁신 이니셔티브, 모임(Research, Innovation Initiative, Gathering)’이란 주제로 인도 과학기술국에서 주최했다. 이 행사에 미국 등 각국에서 온 대표단 약 50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중국 대표단은 불참했다.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자국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인도가 G20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중국은 일주일 후 바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에 있는 산정상, 강, 거주지 등 11개 지명을 중국식으로 표준화했다. 즉, 중국식 한자 지명과 티베트식 이름, 중국식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병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중국은 새롭게 변경한 11개 지역명이 들어간 지도도 발간했다. 중국은 이곳은 남티베트 장난(Zangnan) 지역으로 “역사적·행정적 근거”에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3기 내각 신임 국방부 장관 리샹푸의 인도 방문을 앞두고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명을 전격 변경한 것이다. 리샹푸 국방부 장관은 4월 27~29일 인도에서 개최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국방장관 회담 참석차 인도를 방문할 계획이다.
중국이 인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명을 변경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은 2017년 처음 아루나찰 프라데시 6개 지명을 중국식으로 변경했다. 2017년 인도와 중국은 부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크람(Doklam) 지역에서 77일간 군사 대치를 하며 갈등을 겪었다. 또한 같은 해에 달라이 라마가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방문했다. 이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 6개 지명을 전격 중국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2021년에도 중국은 이 지역 15개 명칭을 변경했다. 2020년 4월부터 시작된 라다크(Ladakh) 지역에서 발생한 인도와 중국 간 국경 분쟁에 별다른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중국은 다시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 명칭을 중국화한 것이다. 이때마다 인도 외교부는 강하게 중국을 비판하며 해당 지역은 엄연한 자국 영토임을 강조해왔다.
인도는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지역이 자국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고 더 나아가 세계가 인정하도록 G20 의장국 지위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G20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물론 인도는 9월에 있을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크고 작은 G20 행사를 28개 주와 8개 연방 직할지에서 순차적으로 개최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중국 측 반감을 무릅쓰고 G20 행사를 연 것이다. 남인도 벵갈루루나 첸나이와 같은 인도 과학기술의 산실로 인정받은 곳에서 이런 행사를 개최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모디 정부는 G20 의장국으로서 인도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영토 분쟁 지역을 자국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또 다른 영토 분쟁 지역인 라다크 지역에서도 4월 26~28일 ‘청년 20 인셉션 미팅(The Youth 20 Inception Meeting)’이라는 주제로 G20 행사를 개최한다.
카슈미르도 우리 땅
인도는 G20 행사를 개최하며 인해 영토 분쟁 지역에서 중국과만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파키스탄과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영토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서도 G20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인도는 5월 24~26일 자국령 카슈미르에서 G20 각국 문화부 고위 관리들을 초청해 ‘G20 관광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카슈미르 G20 행사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열린 행사보다 훨씬 고위급 회의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를 인도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인도와 4차례 전쟁을 했다. 파키스탄은 영토 분쟁 지역에서 G20 행사가 개최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가 카슈미르에서 G20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면 분쟁 지역에서 열리는 최초의 국제행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키스탄은 G20 회원국이면서 우방국인 중국,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카슈미르 G20 행사를 반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인도가 주최하는 G20 행사에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고 SCO 행사에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가 의장국으로서 SCO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3월에 개최한 SCO 관련 세미나에 불참했다. 파키스탄 대표단은 3월 21일 뉴델리에서 인도 국방 연구·분석 연구소(IDSA)가 주최하는 SCO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도가 파키스탄 측이 사용하는 지도에 인도령 잠무와 카슈미르를 자국 영토로 표시한 것에 반대하자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파키스탄 신문인 익스프레스 트리뷴(The Express Tribune)에 따르면 인도는 파키스탄 측에 '정확한 지도'를 보여주거나 세미나에 참석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파키스탄은 인도에 대해 SCO 의장직을 이용하여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거나 SCO 조직을 정치화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모디 정권은 잠무·카슈미르 지역에서 끊임없이 각종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발생하고 파키스탄이 이 지역을 영토 분쟁 지역이라고 주장하자 70년 이상 주(state)의 지위를 유지해왔던 잠무·카슈미르주를 2019년 2개의 연방 직할지로 격하하고 이 지역에 부여된 특별 권한도 삭제하는 헌법을 개정했다. 이렇게 모디 정부는 영토 분쟁 지역을 자국 영토로 확고히 하기 위해 G20나 SCO와 같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다자회의를 이용하거나 헌법까지 개정하면서 국제사회에 해당 지역이 자국 영토임을 알리고 있다.
인도가 개최한 SCO 정상회의 슬로건도 영토 보전과 주권 존중 강조
인도에서 개최되는 2023 SCO 정상회의 슬로건은 'SECURE SCO를 위해'다. SECURE 개념은 시민 안보를 위한 'S', 경제 발전을 위한 'E', 지역 연결성을 위한 'C', 통합을 위한 'U', 주권과 영토 보전 존중을 위한 'R', 환경 보호를 위한 'E'다. 인도가 개최하는 이번 SCO 정상회의 'SECURE' 슬로건 중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R(Respect)'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아지트 도발(Ajit Doval) 인도 국가안보보좌관도 3월 29일 열린 SCO 국가안보보좌관 회의에서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SCO 헌장은 회원국이 주권, 영토 보전, 국제 관계에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거나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지 않는 것을 상호 존중하고, 지역에서 일방적인 군사적 우월성을 추구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등 SCO 회원국 대표 앞에서 연설했다. 인도는 SCO 회원국인 중국은 물론 파키스탄이 자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영토를 그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이들 국가와 오랜 기간 갈등을 겪고 있어 주권과 영토 보전을 강조하고 있다.
인도가 이렇게 SCO나 G20 회의에서 자국 영토 보전을 강조하면 할수록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인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인도는 SCO와 G20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도는 외교력을 발휘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세계가 직면한 신냉전 체제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자국 영토 보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영토를 보전하고 전쟁을 끝내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인도를 비롯한 SCO 회원국들은 유엔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판하는 표결에 기권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온 러시아의 우호 국가들이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가 러시아에 전쟁을 끝내라고 압력을 가하면 러시아 측 반감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 7월 초 인도에서 개최될 SCO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가 어떤 외교력을 발휘할지 기대된다. 작년 SCO 정상회의에서 모디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고 대놓고 말했다. 이런 모디 총리가 자국에서 열린 SCO와 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비슷한 시기 7월 둘째 주에 라트비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인도에서 열리는 SCO 회의 결과는 라트비아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도, 지구촌 문제 해결에도 외교력 보여야
SCO와 G20 정상회의 의장국 지위는 인도가 글로벌 파워로서 인정받을 좋은 기회다. 인도는 미국 주도 쿼드(Quad) 회원국인 동시에 중국 주도 SCO 회원국으로서 지구촌이 직면하고 있는 지정학적 대립 구도를 완화하고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외교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디 정부가 SCO나 G20 같은 중요한 다자 정상회의를 자국 이익만을 위해 이용하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구촌이 직면한 문제 해결에 책임 대국으로서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인도는 아직 멀었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세계에 심어줄 것이다.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나토(NATO) 연계전략이 강화되고 있고 이에 맞서 중·러 전략적 안보·경제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신냉전 체제하에서 인도가 얼마나 외교력을 발휘할 것인지 세계적인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3월에 열린 G20 재무부 장관 회의에서는 인도는 의장국으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지만 앞으로 예정된 SCO와 G20 외교부 장관 회의나 정상회의에서도 별다른 합의를 해내지 못한다면 글로벌 파워가 되겠다는 인도의 리더십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내년 2024년 총선을 위해서라도 현 모디 정권이 SCO와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성과를 내기에 온 힘을 쏟고 있기에 인도 외교력에 기대를 걸어본다.
김찬완 필진 주요 이력
▷인도 델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인도연구소 소장 ▷인도연구소 HK+ 사업단장 ▷<남아시아연구> 편집위원장 ▷Editor-in-Chief, Journal of India and Asian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