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 마약 비상]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미확인 음료·간식 배포 금지령

2023-04-10 18:16
  • 글자크기 설정

[르포] 대치동·목동 학원 가보니

집중력에 좋은 음료로 속여 마약 건네…학생 7명·학부모 1명 등 피해자 총 8명

검찰, 제조·전달책 등 피의자 2명 검거

학생들 "나도 모르게 섭취할까 겁나"…해외직구·SNS 등 통해 접근 쉬워져

10대 마약사범 10년 전보다 8.3배 급증…제2 학원가 마약사태 방지 교육 나서

"영화에서 접하던 마약이 일상에 침투했다니 충격이에요."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권모군(17)은 '강남 마약 음료' 사건을 접하고 매우 놀랐다. 평소 영화와 드라마에서 끔찍하게 묘사되던 마약을 나도 모르게 섭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권군은 "제가 피해자가 된다면 학원을 계속 다니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에서 '집중력에 좋은 음료 시음행사'라고 속여 학생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마약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대치동을 포함한 목동 등 서울 주요 학원가에 비상이 걸렸다.
 

10일 서울 대치동 한 학원에 ‘마약 음료’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약 음료' 사건에 긴장한 학생·학부모들
10일 기가 찾은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서는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접하고 놀랍고 두렵다는 반응이다. 고등학생 신모군(19)은 "이번 사건으로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신다"며 "학교나 학원 앞에서 간식을 나눠줄 때가 많은데 상대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마약 했냐'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고 토로했다.

학부모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초등학생 학부모 김모씨(37)는 "최근 강남 마약 음료 사건을 접하고 아이들에게 누가 길에서 간식을 주면 절대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학부모 이모씨(43)도 "사건을 접하고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주려고 노력한다"며 "최근 '마약 옥수수'나 '마약 토스트' 등 마약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어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학원에서도 안내문을 게시하는 등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치동에 위치한 학원 곳곳에는 '미확인된 음료·간식물을 주면 받거나 마시지 말기 바랍니다' '학원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음료, 간식 배포를 일체 금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됐다.

학원 강사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한 대형학원 관계자는 "중간고사 준비 기간에는 학생들이 밤샘 공부를 위해 에너지 음료 같은 것을 먹기도 해서 누구나 강남 마약 음료 사건 같은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이런 사건이 벌어져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간식과 함께 학습지를 나눠주는 판촉행사를 했는데 일절 중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치동 마약 음료 사건 피해자는 현재까지 학생 7명과 학부모 1명 등 8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학원가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마약 음료 사건에서 음료 제조·전달과 번호 조작에 각각 가담한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 2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전문가들 "마약 예방교육 강화해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해외 직접구매 등 손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10대 마약사범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이하 마약사범은 481명으로 2013년 58명과 비교해 8.3배 증가했다. 대검은 다크웹·SNS·가상화폐를 이용한 '던지기' 방식 비대면 거래, 국제우편·해외직구 등을 이용한 마약류 밀수, 의료용 마약류 불법유통 확산으로 10대 마약사범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2의 학원가 마약 사태를 막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학생들과 교직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마약류를 포함한 유해약물 일상·특별 예방교육'을 강화한다. 오는 5월부터 7월까지 '학교로 찾아가는 신종마약 특별예방교육'을 마약퇴치본부와 연계해 실시한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최근 마약범죄가 발생한 강남 일대 학원가와 유흥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이달 2주간 마약 관련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마약 예방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약류 경각심 제고를 위한 법정교육은 진행 중이지만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희준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10대 마약사범이 증가하는 이유는 호기심인데 이러한 부분을 예방할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마약 위험성을 경고하고 어떻게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정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법안도 통과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마약류 경각심 제고를 위한 예방교육은 학교보건법 제9조에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 오용·남용 예방'으로 명시돼 있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교육부 장관이 사법당국과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약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하는 '학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변호사는 "법안이 통과돼 마약 예방교육을 강화하도록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