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근로자 절반이 불이익을 우려해 육아휴직을 원활히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육아휴직 사용을 사업주 ‘승인’이 필요 없는 자동 개시로 바꾸자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A씨처럼 육아휴직 사용이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다수 드러났다.
중소 사업장에서 승인 회피·해고 통보···직장인 45% "육휴 자유롭게 못 써"
A씨도 사업주가 퇴직금 산정 기간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을 빼자고 요구했으나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나서야 육아휴직을 부여하겠다는 사업주 승인이 나왔다. 이들이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센터)에 도움을 요청한 후 육아휴직을 받기까지 걸린 기간은 3개월이었다.
지난 1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등에 따르면 올해 기준 근로자 10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 수는 대기업이 13.7명이었고 중소기업은 그 절반 수준인 6.9명에 불과했다. 앞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도 지난달 26일 직장인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업주 허락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없도록 사업주 허용 없이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개정안(남녀고용평등법)'이 지난달 29일 국회에 발의됐다. 정부도 육아휴직을 쓸 수 없도록 하는 기업에 근로감독을 확대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정부 단속이 실효성 있으려면 '해고 단속'을 넘어 '불리한 처우'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견·대기업은 자진 사퇴 유도···법에 '불리한 처우' 구체화해야
중견·대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을 사유로 해고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부당전보’로 자진 퇴사를 유도해 법망을 피해 간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100인 규모 의류회사 온라인팀에서 근무하던 C씨는 지난해 6월 육아휴직 복귀 후 본인 직무와 무관한 생산관리팀으로 배정받았다. 코로나19와 사업부 통폐합 영향으로 온라인팀 증원이 어렵다며 사측이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자 C씨는 결국 권고사직 처리 후 실업급여를 받기로 합의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제3항에는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외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불리한 처우’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회사는 전보에 대해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 업무상 필요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유경 노무사는 "대법원에서도 같은 조항을 기준으로 다른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며 "중견·대기업은 부서에 공석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진 퇴사를 유도해 법적 리스크를 줄인다”고 설명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법률에 ‘불리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명문화자는 의견도 나온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직무 미부여·직무 재배치·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차별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면서 “사업주가 전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