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극본 양희승·연출 유제원)의 남자 주인공인 '최치열'은 일련의 사건으로 거식증 증세를 겪고 있고, 영양실조로 걸핏하면 쓰러지며, 여자 주인공에게 모난 말을 퍼부어 엎어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로맨스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단점'을 죄 안고 있으나 놀랍게도 '최치열'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드는 마성의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극 중 인물의 부족한 면면을 사랑스럽게 치환하는 건 배우 정경호의 특기였으니.
"제가 주로 까칠하고 예민한 캐릭터를 맡아왔죠. 하하.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전작(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에이즈 환자 역을 연기한 터라 또 병약한 캐릭터를 맡는다는 게 부담이 됐어요. '이제는 이런 이미지를 벗어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치열' 캐릭터를 보고 '이 작품까지 해볼까' 싶더라고요. 여러모로 욕심이 났어요."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반찬 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 분)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다.
tvN '고교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 MBC '역도요정 김복주', KBS '한번 다녀왔습니다' 등을 집필한 양희승 작가가 극본을 쓰고, '고교처세왕' '오 나의 귀신님' '어비스' '갯마을 차차차' 등을 연출한 유제원 PD가 연출을 맡았다.
정경호는 "선택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라며 양희승 작가와 유제원 PD 그리고 상대 배우 전도연에 관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이미 양희승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작가님 작품은 다 봤거든요. 게다가 (조)정석 형, (김)대명 형과도 전작을 함께 하셔서 (양희승 작가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죠. 무엇보다 존경하는 전도연 선배님과 함께 작품을 찍을 수 있다니! 제겐 정말 큰 기회였어요. 제가 선택하고 말고 할 게 없었죠."
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지난 1월 14일 첫 화 시청률(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4.44%로 출발, 6화에 10%를 뛰어넘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매회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했고, '밈'을 만들었으며 최종화 직전에는 시청률 15.5%까지 기록했다. 그야말로 '일타 열풍'이었다.
"새해에 시작한 작품이니만큼 시청자분들께 따뜻한 드라마로 남기를 바랐어요. 작가님, 감독님, 스태프, 동료 배우들과 다짐하면서 찍었죠. 다행히 시청자분들께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분들께 좋은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탄탄한 시나리오, 매끄러운 연출, 배우들의 호연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계단식 시청률 상승은 배우들에게도 자랑거리라고.
"촬영 3주쯤 접어들었는데 반응이 오더라고요. 촬영 현장 분위기는 이미 좋았는데 시청자분들께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하니 더욱 신나게 찍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앞서 언급했듯 정경호는 까칠하고, 병약한 캐릭터에 관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전작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이 시청자들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최치열' 역할을 연기하고 나서도 그 걱정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런데 드라마를 모니터링 하니 전작과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까칠하고, 병약한 캐릭터지만 30대에 표현했던 인물과 40대에 표현하는 인물이 다르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제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변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아픔의 농도가 더욱 진해진 것 같고요. 굳이 노력해서 바꾸지 않아도 자연스레 달라지는 부분이 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앞서 언급했듯 까칠하고 병약한 인물을 인간적이고 사랑스럽게 표현해내는 건 정경호의 주 무기다. '전공'인 캐릭터이니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감이 붙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다.
"자신감이라고 하면 조금 창피하죠.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되고 떨려요. 다만 제가 자신 있는 캐릭터를 맡으면 조금 편하게 느껴지는 거죠."
'최치열'은 대한민국 대표 수학 강사다. 평소 학원가 문화에 관심이 없었다는 그는 "일타 강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일타 강사가 뭔지도 몰랐어요. 더군다나 수학? 일(1)이 아닌 영(0)도 모르는 상태였죠. 그런 제가 일타 수학 강사를 연기해야 한다니 걱정이 되더라고요. 작품에 임하기에 앞서 일타 강사들의 수업 자료를 살펴보고 수업하는 모습을 관찰했어요. 안가람 선생님과 일타 강사의 삶에 관해 이야기도 해보고 칠판에 직접 공식도 써가며 (역할에) 익숙해지려고 했죠."
정경호 일타 강사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안가람 강사를 관찰했다. '최치열'의 특징의 여러 부분이 안 강사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부연이 있었다.
"학생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저마다의 방법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차용하려고 노력했죠. 저는 조금 더 '일타 강사'의 느낌을 내기 위해 안가람 선생님의 말투나 억양을 참고했어요. 또 글씨체도 신경 많이 썼죠. 극 중 '방수아'가 '최치열'의 필기체를 알아차리는 장면이 있어서 필기체가 특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글씨체도) 선생님을 참고했어요. 작가님, 감독님, 선생님과 고민하면서 특징을 만들었죠."
수학에 자신이 없다는 정경호는 ' 강사'를 연기하며 느낀 고충도 털어놓았다.
"수학 문제들도 저작권이 있어요. 알고 계시나요? 저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그 문제들이며, 공식들을 칠판에 늘어놓는데 저는 이해가 잘 안 가니 오로지 암기로 승부를 본 거죠. 학원 장면들은 실제로 보조 출연자들을 앞에서 찍는데요. 대부분 학생이어서 제가 문제 풀이를 틀리면 바로 알아보더라고요. 바짝 긴장한 채 찍었습니다. 하하."
정경호는 상대 배우인 전도연에 관한 애정을 아낌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전도연 선배님과 함께 연기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어요. 모니터를 하면서 (전도연과) 투샷이 잡히면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영광스러운 기억이 많았죠."
그는 전도연에 관해 "거짓말을 안 하는 배우"라며, 진정성을 가지고 작품에 임한다고 칭찬했다.
"선배님은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예요. 사실 그 정도 경력에, 실력이면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을 것 같은데. 여전히 설렘을 가지고 있고, 긴장감을 유지하고 계시요. 저는 가끔 '치열'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연기할 때가 있는데, 선배님께서는 '행선'으로서 완벽하게 임하려고 하세요.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시는 거죠. 내내 거짓말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역시 존경하는 선배님이세요."
정경호는 어린 시절부터 전도연의 열혈 팬이었다고 고백했다. 전도연과의 만남은 정경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고, 40대 배우로서의 길을 제시해주었다.
"40대가 되고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잖아요. 너무 많은 장르, 캐릭터, 매체가 나오고 있으니 그것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급했어요. 쉽게, 빨리 바뀌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 건지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가 선배님을 보고 생각을 바꿨어요.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정말 소중한 것이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 어떤 작품을 보고 울고, 웃었는지, 행복해했는지……. 선배님을 지켜보며 다시 깨달았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정경호는 간략하게 올해 계획을 일러주기도 했다. 영화 '보스' 개봉 이후 '쉼표'를 가지고 싶다며 솔직한 속마음을 터놓았다.
"'일타 스캔들'이 큰 사랑을 받아 기분 좋게 새해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4월에 영화 '보스'가 예정되어있는데 그걸 찍고 나면 '쉼표'를 가지고 싶어요. 운동해서 몸도 키워보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과 변화도 느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