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재벌 인도의 고탐 아다니와 아다니 그룹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 힌덴버그가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한 뒤 아다니 그룹 계열사들이 연일 하한가를 기록하는 등 주가가 무섭게 빠지고 있다. 과거 미국 전기차 업체 니콜라를 무너뜨린 힌덴버그가 이번에는 아다니 그룹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아다니 그룹은 힌덴버그 측의 주장을 거짓에 근거한 악의적 공격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시장은 아다니에 등을 돌렸다. 그룹 주력사인 아다니 엔터프라이즈의 일반공모도 청약률이 3% 가량에 머물며 실패로 돌아갈 뻔 했다. UAE 왕실의 도움으로 유상증자는 겨우 성공했지만 이미 쪼그라든 인도 주식시장은 좀처럼 되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 힌덴버그 리서치 보고서…"아다니 그룹, 주가조작·분식회계 지속"
이번 사태는 힌덴버그의 아다니 그룹 저격이 도화선이다. 아다니 그룹의 부정을 폭로한 이른바 '힌덴버그 보고서'는 즉각 수조원의 시가총액을 사라지게 하는 파급효과를 만들었다.
아다니 그룹은 항만·공항 운영 등 인프라 사업을 필두로 석탄·가스 등 자원개발·유통과 전력 사업까지 운영하는 인도의 대표적인 재벌이다. 최근에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친환경 에너지, 데이터센터 등의 분야에서도 급격한 성장을 이뤄나갔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미국 공매도 업체 힌덴버그리서치는 '아다니 그룹: 세계 3위 부자가 기업 역사상 가장 큰 사기를 치고 있는 방법' 제호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아다니 그룹이 수십년 동안 주가조작, 분식회계에 관여했다는 내용의 1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이다. 힌덴버그 측은 "아다니 그룹의 전직 임원 등 수십명과 만나고 문서 수천건을 검토하고 6개국을 현장 방문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힌덴버그 보고서는 아다니 그룹의 조세회피처를 통한 자금 세탁 의혹도 제기했다. 힌덴버그 보고서는 아다니 가족이 카리브해 국가들과 모리셔스,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등의 조세 피난처에서 자금을 세탁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아다니 그룹의 각 계열사에서 다방면으로 자금 세탁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보고서는 그룹 핵심 상장사들의 구조도 지적했다. 부채가 과도해 전체 그룹의 재무 기반이 불안정하다면서, 7개 상장사의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만큼 기업 기초 여건(펀더멘털)과 경쟁사 주가를 고려할 때 85%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7개 상장사 중 5곳의 유동비율(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 비율)이 1 미만으로 이는 단기적인 유동성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아다니 그룹은 즉각 반발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부정하고 그 목적성부터 의심했다. 당사자의 확인도 받지 않았고 왜 이 시점에 등장했냐는 것이다.
주게신더 싱 아다니 그룹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힌덴버그는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며 “근거가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보고서 공개 시점도 문제 삼았다. 보고서가 공개된 시점 자체가 악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날은 아다니 엔터프레이즈의 유상증자가 이뤄지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싱 CFO는 "이 같은 타이밍은 뻔뻔하고 악의적인 의도로 주식 계획을 손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힌덴버그 리서치의 손을 들어줬다. 자산운용사 MPPM 거래책임자인 길러모 헤난데즈 샘피어는 "힌덴버그의 명성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은 철저히 조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월가 헤지펀드의 대명사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도 힌덴버그 리서치 보고서가 매우 신뢰할만하며 매우 면밀한 조사를 거쳐 나온 것으로 본다고 힘을 실어줬다.
주식시장은 크게 휘청거렸다. 보고서가 등장하자마자 당일 아다니 트랜스미션의 주가가 9% 떨어졌다. 그룹 내 10개 상장사들 전체적으로 120억 달러(약 14조 8000억원)의 시총이 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총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31일까지 총 680억 달러(약 83조 6000억원)이상의 시총이 증발했다. 30일에는 아다니 토탈가스, 아다니 그린에너지 등의 주가가 20% 가량 빠지는 모습도 보였다. 20%는 인도 주식시장의 하한가이다. 시장이 불안정할 정도로 급변했다는 것이다.
◆ 아시아 최고 재벌의 몰락…"고탐 아다니 부자 순위 10위권 밖으로"
힌덴버그 보고서가 만든 여파는 단순히 주가 하락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시아 최고 재벌이던 고탐 아다니의 자산마저 감소시키고 갑부 순위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하더라도 고탐 아다니의 자산은 순자산 1490억 달러로 세계 제2위의 부자로 평가 받았다. 그보다 더 부자라고 불린 사람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밖에 없었다. 워렌 버핏 버피셔해서웨이 CEO, 빌 게이츠 MS 명예회장도 모두 그보다 순위가 아래였다. WSJ는 “아다니 회장은 오랫동안 미국 기술기업가들이 지배해온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아시아의 첫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고탐 아다니를 순위권에서 끌어내렸다. 아다니 그룹의 시총이 감소하면서 고탐 아다니의 재산도 급감했다. 그의 재산은 3거래일 만에 340억 달러(41조원)가 날아가며 세계 10위 부자 명단에서 빠졌다. 블룸버그 세계 억만장자 순위 기준 4위에서 11위로 내려앉았다.
아다니는 인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인도 서부 직물 상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다니는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플라스틱을 파는 상인이었다. 이후 1980년대 폴리머 수출입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인도의 경제자유화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문드라 항구를 건설했고 그곳에서 석탄 관련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다. 인프라, 물류 및 에너지로 사업기반을 늘려갔다. 호주 카미캐엘 프로젝트 거래를 확보하기도 했다.
◆ 아다니, 유상증자 성공했지만…인도는 글로벌 5대 증시 위치 상실
의외의 구원투수가 등장하면서 아다니 그룹의 숨통을 열어줬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아다니 그룹뿐 아니라 인도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각도 등장했다.
아다니 그룹의 유상증자는 31일까지였다. 30일까지만 해도 오후 청약률이 3%애 불과해 유상증자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인도는 청약률 90%를 기록해야 유상증자가 가능하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나흐얀 왕가의 투자회사인 '인터내셔널 홀딩 코'(IHC)가 유증에 14억 디르함(약 4천689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HDFC증권의 리테일 리서치 책임자 디팍 자사니는 현지 매체 민트에 “시장으로부터 우려 사안 하나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이번 아다니 그룹의 시총 증발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인도는 글로벌 5대 증시로 평가 받았지만 30일 기준 3조 2000억 달러가 사라지면서 그 위치를 프랑스에 넘겨줘야 했다. 심지어 7위인 영국 주식시장과도 격차가 1000억 달러 정도로 크지 않다. 블룸버그 통신은 "인도의 주식시장이 계속 하락하면 순위가 더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휘청거리자 금융권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섰다. 아다니 그룹과 밀접한 UBS은행 랄프 해머스 CEO는 아다니 그룹의 폭락은 큰 관심 거리가 아니라고 블룸버그 통신에 전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언급은 할 수 없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을 잠재우려는 시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