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났다 하면 대형사고···전기차 40만대 '공포' 안고 달린다

2023-01-1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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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매뉴얼 구축 어디까지 왔나

세종시 소정면 운당리 국도 1호선을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가 화재로 전소돼 뼈대만 남아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가 40만대에 근접했다. 국내 전기자 시장은 그간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시장의 고공 행진에 가려졌던 문제점들이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전기차 화재부터 배터리 안전성, 충전소 안전 인프라 등 안전과 관련한 사항이 문제점으로 불거지고 있다. 향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를 점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완성차, 배터리업계가 해당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화재 5년간 89건···원인은 외부 충격·BMS 오류·결함

18일 소방청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건수는 2018년 3건에서 2022년 44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내연기관 차량 화재는 4995건에서 4512건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내연기관차 누적 등록대수는 2373만2073대, 전기차는 38만9855대다. 자동차 누적 등록 현황을 고려하면 내연기관차 화재 발생 비율은 0.019%, 전기차는 0.011%다.

전기차 화재 비율은 내연기관 차량 누적 등록대수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다. 더욱이 한번 불이 나면 완전 진압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달 새벽 서울 강북구 번동 한 주택가 골목에서는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서 불이 났고 완전 진화하기까지 8시간 걸렸다. 지난해 6월에는 부산 남해고속도로 요금소 전기차 충돌사고로 불이 난 뒤 완전 진화에만 7시간 소요됐다. 지난 5년간 발화 요인별 화재 현황을 보면 원인 미상이 25건으로 가장 많았다. 차량이 전소되는 전기차 화재 특성상 정확한 원인 규명이 어렵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화재 주요 원인으로 크게 외부 충격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오류, 배터리 결함 등을 지목하고 있다. 교통사고 등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재와 음극재가 접촉하며 쇼트(합선)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전류가 급격히 흐르며 온도가 800∼1000도까지 높아지는 열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양극재인 금속산화물이 분해되면서 산소가 발생해 이로 인한 화재 증폭 현상이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픽=아주경제]

지난해 경북 영주시 하망동 일대를 주행하던 '아이오닉5' 택시는 빠른 속도로 건물 모서리를 충돌하고서 5초 만에 불길이 차량 전체로 번졌다. 지난 9일 세종시 소정면 운당리 국도를 달리던 테슬라 '모델Y'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후 폭발하듯 불이 번졌고 차량은 완전히 전소됐다. 이들 화재사고는 배터리 열폭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차 배터리는 시속 60㎞ 내외 충돌에 보호될 수 있도록 초고장력 강판을 덧대 제조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고를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충격이 발생하면 관성으로 인해 강판 안에 있는 배터리가 떠 셀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배터리 열폭주는 배터리 손상 직후 1초 만에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배터리 열폭주가 전기차에 화재를 일으키는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다. 배터리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BMS 오류도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BMS는 배터리 셀 전압을 수십 밀리볼트(mV) 단위까지 세밀하게 측정해 배터리가 최적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조절하는 전자 제어 프로그램이다. 셀 중 하나만 전압이 달라도 BMS가 배터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해 차를 세운다. 하지만 BMS가 셀 손상이나 충전 시 과전압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불이 날 수 있다.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테슬라 서비스센터에서 불이 난 테슬라 '모델X' 사고가 대표적이다. 해당 차량은 화재가 나기 1시간 전부터 BMS 오류코드가 뜬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센터까지 견인돼 점검을 기다리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대원들이 남해고속도로 요금소 충격흡수대를 들이받은 아이오닉5 차량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부산소방본부]

◆전기차 화재 테스트 1회 6000만원···"추가 예산 절실"

전기차는 과충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통상 완성차업계는 전기차 완충 비율을 85% 내외로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충전 상태가 90%를 넘어가면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종훈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충전 시 양극의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이동한다“며 “많은 양의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환원반응을 일으키면 내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외부에서 결정화돼 분리막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배터리 셀 자체에 결함이 있으면 BMS 제어기능은 무용지물이 돼 불이 날 수 있다. 전기차는 계절에 따라서도 화재 빈도가 달라진다. 여름철 대전류가 오가는 배선이나 커넥터가 고온에 노출되면 화재 위험성이 커진다. 

전기차 화재가 줄지 않는 건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부실한 전기차용 화재 진압 장비와 안전 매뉴얼 탓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전기차 화재 진압 방법은 없다. 이에 더해 각 차종과 배터리마다 다른 플랫폼, 다른 배터리 하우징을 갖고 있으며 내연기관차와 다른 특성에 실전 전기차 화재 테스트가 중요하다. 소방업계는 이를 통해 전기차 화재 진압에 맞는 소화기법과 장비를 찾고 있다. 

하지만 1회 실험 비용은 약 5000만~6000만원으로 부담이 큰 상황이다. 검증 경험이 적은 탓에 화재 전기차에 일반 소화기를 분사하는 등 비효율적인 소화기법을 적용해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도 다수다. 지난 7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테슬라 서비스센터에 주차된 테슬라 모델X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소방대원들은 테슬라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며 전문 인력 등을 추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는 “현대차·기아 주력 전기차는 실전 화재 검증을 마쳤지만 테슬라, 쉐보레 등 다른 차종에 대해서는 검증을 못하고 있다”며 “다양한 테스트와 장비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전기차 보급대수에 비해 소방청 측 대응 장비 수도 크게 부족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로 사용되는 이동식 수조는 44개다. 전국 소방서는 235개로 1개 수조를 5개 소방서가 나눠 써야 하는 셈이다.
 

울산 남부소방서가 울산알루미늄 부지에서 전기자동차 화재 신규 대응장비 '전기차 세이프티박스'를 활용한 실화재 진압 시연회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남부소방서]

◆기술적·제도적 여건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제조사부터 정부에 이르기까지 전기차 화재사고를 방지할 기술적·제도적 대응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차량 내 안전장치와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상 감지 기능을 강화해 발화 요인을 줄이는 기술적 처방이 요구된다. 주요 전기차는 시속 64㎞에서 정면·부분정면·측면 충돌시험을 진행한다. 이 충돌 속도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을 위한 보험협회(IIHS) 안전 평가 기준이다. 완성차 업계는 시속 64㎞ 충돌 테스트로 차량 사고 중 99%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저속에서만 테스트를 거치면 사고 원인 파악과 화재 대응책 마련에 한계가 있어 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해 부산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에서는 시속 96㎞로 충돌해 불이 났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속 100㎞ 충돌 테스트를 버틸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을 것”이라며 “안전 테스트 속도 기준이 높아지면 차량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만큼 제조비용과 차값은 급증하게 돼 누구도 전기차를 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긴급제동장치를 전기차 설계 시 의무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는 고속주행 후 충돌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며 “전기차만이라도 긴급제동장치 적용을 의무화해 급정거 시 속도가 50~60㎞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BMS 기능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해법도 제시된다. 배터리 내 전압·전류를 진단하는 BMS 기능이 미흡하면 배터리 팩 내부 온도 관리 실패로 화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김종훈 교수는 “화재 발생 시 경보 기능과 경고 기능 등을 추가해야 한다”며 “BMS 감지 기능을 강화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소프트웨어 인력을 보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충전소 안전 인프라도 마련해 대형 화재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새 아파트는 전체 주차 면수 중 5%, 기존 아파트는 2% 이상 의무적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아울러 전기차 충전 시 화재에 대비할 관련 법령이나 소화기 비치 의무가 없는 실정이기에 시급히 관련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하주차장과 같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전기차 화재를 방지하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충전기 안전시설 비용을 보조하거나 충전기 회사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안전설비 설치를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는 “충전기 주변에 금속 소화기를 비치하고 충전기에 충전 전원 강제 정지 기능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지상 주차장이 없는 건축물은 지하주차장 전기차 주차구역에 방화구획과 방화벽, 방화셔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전기차 시장은 2012년 보급대수가 860대에 그쳤지만 2018년 5만5756대로 누적 5만대를 넘었다. 2020년에는 13만4952대로 10만대를 돌파했고 2021년 20만대를 넘어선 뒤 지난해 30만대까지 뛰어넘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113만대까지 제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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