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소탐대실' 내년도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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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밤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를 개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리당략을 앞세운 여야의 기싸움 끝에 합의된 내년도 예산안이 지난 24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여야는 정부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다고 자화자찬을 했지만, 내년도 예산안을 받아든 정부의 속은 편치 않아 보인다. 총 638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은 애초 정부안 639조419억원보다 3142억원이 줄었다. 총지출 규모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순감으로 전환한 것은 2020년도 예산안 이후 3년 만이다.

전체 예산 규모가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감세와 규제 완화를 동력으로 내년도 경제 대전환을 노렸던 정부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무엇보다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 계획이 크게 퇴보했다. 애초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3%포인트 낮추려 했지만 이를 부자 감세로 규정한 야당 반대에 부딪혀 과세표준 구간별로 1%포인트씩 인하하는 선에서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은 21%의 단일세율이고, 대만은 20%에 지방세도 없으니 한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요원해진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 법인세는 각각 113억 달러, 32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인 대만 TSMC는 불과 24억 달러의 법인세를 내는 데 그쳤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업계 지원 정책도 탄력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 여당의 무관심과 세수 부족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는 결국 여당안(20%)도, 야당안(10%)도 아닌 정부안(8%)으로 대폭 후퇴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반면 미국, 대만, 중국 등 주요국은 반도체 지원 세제 해택이 상당하다. 미국은 올해 ‘반도체 과학법’을 통과시켜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 투자액의 25%만큼 세금을 깎아준다. 대만은 반도체 기업 연구개발(R&D) 투자의 세액공제를 15%에서 25%로 높이는 법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반도체 투자액 전부에 세금 혜택을 준다. 
 
이런 와중에 여야 쟁점 사안이던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3525억원은 부활했고, 공공 전세임대주택 예산 6630억원도 포함됐다. 특히 지역화폐의 경우 ‘재정 중독성 현금 살포는 중단해야 한다’는 정부 원칙이 무너진 ‘포퓰리즘’ 예산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다 국회는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고질적인 구태를 또 반복했다.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을 22일이나 넘겼다. 이로 인해 막판 지역구 ‘쪽지 예산’이 날아들었고 ‘깜깜이’ 심사 관행도 되풀이됐다. 특히 올해는 예산 부수법안마저 제대로 심의되지 않고 졸속 처리됐다. 예산 부수법안을 다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소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가 6개월째 실랑이만 거듭했다. 결국 이로 인해 법인세율 인하 법안은 상임위 심사도 건너뛴 채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넘어가는 촌극이 빚어졌다. 반도체 세액공제 법안도 마찬가지다. 세액공제 비율을 놓고 여야가 지루한 숫자 놀음만 하다가 시한에 쫓겨 일괄타결 대상이 되고 말았다. 

밀실 심사 관행도 여전했다. 국회 예결특위는 지난달 30일까지 증액은 손도 못 댔고 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했다. 결국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 ‘소(小)소위’로 예산안을 넘겨 밀실 담합이 이뤄졌다. 결국 의원들은 증·감액 내용도 모른 채 예산안 표결에 임했다. 이를 두고 한 예결위 의원은 “심사 상황은 깜깜이, 수정안이 도깨비처럼 등장해 국회를 모독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결국 정치권의 당리당략 싸움이 결국 우리 경제의 미래와 국가 경쟁력을 훼손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 예산안’이라는 괴물을 낳고 만 것이다.
 

[석유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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