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보다 어려운 게 개혁’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개혁의 길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개혁에는 숱한 저항과 반발이 따른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저항과 반발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정치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5일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노동·연금·교육을 3대 개혁 과제로 선정하고 “개혁은 인기가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했다. 국정 개혁을 선언한 윤 대통령은 이제부터 리더십과 정치력 검증의 시험대에 서게 됐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최우선 과제로 노동 개혁을 꼽았다. ”노동 문제가 정쟁과 정치적 문제로 흘러버리면 정치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게 된다. 노동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삼류, 사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간에도 같은 노동에 대해 같은 보상을 받는 체계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동 개혁의 방향으로 노사 법치주의 확립,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합리적 임금 체계 확립 등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연금 이야기를 꺼내면 표가 떨어진다고 해서 지난 정부 땐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번 정부에서는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피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으로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아’ 연금 재정을 안정화시키는 내용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월급에서 내는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36년까지 15%로 올리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현행 62세(2033년까지 65세로 상향)에서 2048년 68세로 높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교육 개혁의 핵심은 학생 맞춤형 교육, 지방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해 “학생들이 일률적인 종이 교과서 대신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자기 수준에 맞는 내용을 찾아서 공부할 수 있게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지방 맞춤형 교육을 위해 지방 대학이 지역 발전과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교육부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과감하게 넘기고, 대학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건강보험 개혁도 중점 개혁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난 5년간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보 무임 승차를 방치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을 파탄시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건보 개혁이 시급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건보 개편 방향으로 건보 급여와 자격 기준 강화, 건보 낭비와 누수 방지, 의료 사각지대 지원 강화를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보험 적용 축소’가 아니라 ‘보험 적용 기준의 합리화’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연금·교육·건보 개혁 추진은 문재인 정부 정책에서 생긴 부작용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2020년 건보 보장률 70%’라는 목표를 내걸고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3800여 개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투입된 예산은 3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다. 이로 인해 건보 재정 수지가 2018년 사상 처음으로 2000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크게 악화됐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2조8000억원, 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 부작용 바로잡기 일환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문제는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 바닥날 것이라며 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고령화와 저출산 심화로 인구 구성이 현행 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어 연금 개혁 목소리가 커지던 때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개혁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연금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는데도 방치한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기존 60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늦추고,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문제에서는 문재인 정부 주요 지지 세력인 민노총에 끌려다니다시피 했다. 민노총이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적극 제지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민노총은 우리 사회에 권력 집단으로 군림하며 각종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좌파 정부에서 우파 정부로 바뀌면 좌파 정부 정책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우파 정부에서 좌파 정부로 바뀌면 우파 정부 정책의 부작용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게 민주주의에서 정권 교체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다.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좌우파 정책이 균형을 이뤄 나라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윤 대통령의 개혁 추진은 정권 교체의 효과를 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개혁에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하나는 개혁 분야별로 정밀한 개혁 청사진을 만드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개혁의 당위성과 방향만 제시한 상태다. 이제부터 구체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나 현실성 있으면서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개혁안을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저항 극복할 리더십과 정치력이 관건
더 큰 문제는 개혁에 따르는 저항과 반발을 극복하는 일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노사 법치주의, 보상을 연공서열 중심에서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임금 체계 개선, 노동 수요가 몰리는 특정 시기에 노사 합의로 주당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노동 시간 유연화 등에 대해 노조가 반발하고 저항할 것은 뻔하다.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건보 개혁에는 당장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올 것이다. 건보 적용 기준을 지금보다 좁히고 까다롭게 하면 일반 국민들도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역시 당장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국민들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력에 달렸다.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노동·연금·교육·건보 개혁을 왜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안을 마련할 때도 왜 그런 개혁안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개혁안의 합리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의 당위성과 개혁안의 합리성에 대한 설득은 특히 현 정부 개혁 방향과 내용에 부정적인 사람이나 단체에 집중해야 한다. 야당과 노조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언론, 지식인이 그들이다. 적극적 반대자는 소극적 반대자나 중립파로 만들고, 중립파는 지지파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정치력’이 무엇인지를 피부에 와닿게 설명한 사람으로 작고한 김상현(1935~2018) 전 국회의원을 들 수 있다. 김 전 의원은 6선 의원으로 여야 정당을 넘어 많은 정치인들과 폭넓은 교류 관계를 맺었다. 정계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지위나 학력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정치의 요체를 한마디로 하면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거나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는데 그래서는 결코 내 편을 늘릴 수 없다.”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포용해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바로 정치력임을 말하고 있다.
정치력 핵심은 반대자 포용
민주당은 현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틈만 나면 김건희 여사 ‘스토킹’에 나선다. 민노총을 비롯한 좌파 단체들은 연일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여기에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가세하고 있다. 대학과 언론계에도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모두 윤 대통령이 싫어하거나 윤 대통령을 싫어할 만한 사람들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 자체가 껄끄럽고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만나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력를 발휘해야 한다. 최고 정치 지도자인 대통령에게는 정치력이 더욱더 요구된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윤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개혁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혁으로 손해를 볼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개혁에 저항하는데 반해 개혁으로 이익을 얻을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당장의 손해는 눈에 보이지만 먼 미래의 이익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미온적 지지자를 적극적 지지자로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말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지지 세력을 넓혀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충고와 지지 세력을 넓히려면 반대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김상현 전 의원의 충고를 윤 대통령이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