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지정학적 공급망 재편…공동전선 펼치자

2022-12-19 17:03
  • 글자크기 설정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인년 호랑이 해가 저물어간다. 작년 이맘때 국제통상에서 최대 화두는 양자 대결에서 동맹 간 대결로 진화하고 있는 미·중 경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출범하였다. IPEF은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하위 정책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6개국, 피지, 인도까지 총 14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식 협상이 개시되었으며 무역과 공급망, 청정경제, 공정경제 등 주제를 놓고 새로운 무역규범 정립과 상호 협력 방안 도출을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다. IPEF 회원국을 연결하면 중국의 태평양·인도양 진출을 포위하면서 중국의 대세계 전략인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의 한 축인 해양 실크로드를 인도양과 말레이시아해에서 끊어내는 모양새다.

중국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연초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를 통해 아세안과 무역 및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는 러시아와도 관계를 강화하였다. 러시아와는 12월 중 정상회담도 개최할 예정이다. 상하이협력기구(SCO·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확대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SCO는 당초 중국과 옛 소련 간 국경관리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중국 주도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이 가입하면서 8개국으로 확대되었으며 점차 미국을 견제하는 친중 동맹화되고 있다. 지난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SCO 제20차 정상회의에서는 튀르키예(터키)가 가입 의사를 밝혔다. 옵서버 국가(벨라루스, 이란, 몽골)와 초청국(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투르크메니스탄)을 포함하면 모두 16개국이 되어 SCO 확장세가 만만치 않다.
 
미·중 경쟁은 내년에도 국제통상 분야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다만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미·중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올해처럼 포괄적·전방위적 대결보다 특정 핵심 품목과 기술 위주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계속 집권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중국의 핵심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이상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미국과의 대결 확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2024년 대선을 생각하면 대선 직전 해인 내년의 경제가 중요하다. 지난 25년 이상 미국 대선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선 직전 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예외 없이 현역 대통령이 교체되었다. 물론 대선 결과는 경제 이외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집권당인 민주당 입장에서 2023년 경기 침체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도 중국과의 전방위 대결로 인해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보다 꼭 필요한 분야에 한해 효과적인 대중 견제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중국과 기술 대결에서 핵심인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 이와 관계되는 첨단 반도체 등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대중 통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내년 전망은 중국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번 주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수출통제에 함께하기로 했다는 보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반도체장비 공급은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와 램리서치, KLA, 네덜란드의 ASML과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등 상위 5개 기업이 세계 공급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생산은 첨단 반도체장비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들 3개국이 함께한다는 것은 사실상 중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핵심은 첨단 반도체의 기준에 있다. 미국 내 물가 상승 억제와 경기 침체 방지를 이유로 첨단의 기준을 높여 우리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미국 내 싱크탱크를 적극 활용함은 물론 공화당 다수인 하원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가끔은 중국을 이용해 우리 몸값을 올리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민주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서 미국과 함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때론 한·중 관계를 레버리지로 이용하면 미국 측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기업들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먼저 일본과 네덜란드의 장비 기업과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과 네덜란드 기업 모두 중국 내 매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장비 수출이 축소되면 그만큼 타격도 크다. 따라서 그들도 첨단의 기준을 높여 대중 매출 축소를 줄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와 이해가 일치한다. 중국 내 매출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 기업의 장비 구매가 갖는 힘이 커지는 점도 함께 감안해야 한다. 네덜란드와 일본 장비 기업들과의 공동전선에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시설투자는 불가피하게 늦추거나 다른 대안을 찾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미·중 경쟁이 장기화하면 결국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대중국 생산 의존도를 줄이는 지정학적 공급망(geopolitical supply chain)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새롭게 나타날 지정학적 공급망에서 어떤 위치에 있게 될 것인지 생각해 두어야 한다. 계묘년 새해도 정부와 기업 모두 숨 가쁜 한 해가 될 것이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