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재무·전략통 전진 배치···위기 돌파·안정성에 방점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위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재무·전략통을 전진 배치하는 연말 인사 흐름을 보이고 있다.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으면서 사실상 경기 침체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이에 위기 대응에 강점이 있는 인재를 배치해 안정성에 방점을 둔 경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사장단 인사를 마무리한 4대 그룹이 재무·전략 부문 전문가를 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SK그룹은 지난 1일 임원 인사를 통해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전략통에 힘을 실었다. SK㈜는 재무통인 장동현 부회장이 유임된 가운데 이성형 CFO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CFO 역할을 강화해 재무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관리 기능을 총괄하도록 했다.

윤풍영 SK C&C 대표 역시 CFO 출신이다. 윤 대표는 SK텔레콤에서 CFO를 역임했으며 SK하이닉스와 SK쉴더스 인수합병(M&A)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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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하 SK스퀘어 대표는 전략통으로 분류된다. 그는 SK스퀘어 주요 자회사 지분 매각을 포함해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투자를 물색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철중 SKIET 대표와 이호정 SK네트웍스 대표 역시 재무 전문가이자 전략통이다.

이는 최태원 회장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경영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데이터 기반 경영전략 실행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CFO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통상 4대 그룹 중 가장 마지막인 12월 중순에 인사를 하던 현대차그룹은 올해는 2주가량 앞당긴 지난달 30일 대표이사·사장단 인사를 먼저 단행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선제적으로 전략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주요 계열사 중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1명만 교체했다. 이규복 신임 현대글로비스 대표는 재무와 전략기획 전문가로 꼽힌다. 이 대표는 현대차 미주지역 생산법인 CFO를 거쳤으며, 수익성 중심의 해외 권역 책임경영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프로세스혁신사업부에서 현대차그룹의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을 위해 프로세스 전반의 혁신을 담당해왔다.

LG그룹도 최근 인사에서 재무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했다. 차동석 LG화학 CFO 겸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는 부사장, 이남준 ㈜LG 재경팀장과 박지환 LG CNS CFO는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LG전자와 LG화학 CFO를 거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는 유임됐다.

이날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 삼성전자는 다른 그룹보다는 기술 분야 인재를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삼성전자도 양걸 중국전략협력실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전략 부문을 홀대하지 않았다. 양 사장은 다양한 해외 판매법인을 경험한 반도체 영업·마케팅 전문가로 삼성전자의 중국 내 사업 전략 수립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재무·전략 우선 인사 흐름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글로벌 경기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과 연관이 깊다. 실제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에 따르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을 1.7%로 전망해 종전 예상치(2.1%) 대비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2%대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수준이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하강 국면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성장률이 2% 이하로 추락한 시기는 2차 오일쇼크 파동을 겪은 1980년(-1.6%),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0.7%) 등이다. 모두 경제위기가 발생한 때다.

내년에 위기 수준에 필적하는 경기 위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 기존 리스크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재무 전문가와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적 성장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 전문가가 국내 주요 대기업 방향키를 잡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경영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재무 안정성과 동시에 위기 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해 재무·전략 출신 CEO들을 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4대 그룹 총수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각 그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