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태원의 비극적 참사에 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 국회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왜 아직 아무도 해고하지 않았는지를 따졌다. 그들은 왜 대통령이 어떤 장관도 물러나게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경찰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지도부가 자신들을 스스로 조사하도록 둘 수는 없을 텐데, 왜 그들을 해고하지 않았는가? 라며 말이다.
나아가, 의원들은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 아니냐고 밀어붙였다. 그래, (대통령이) 사과는 했는데, 그가 책임진다는 말은 안 했단 말이지? 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 아닌가? 대통령이 안전 문제에 대해 지적을 했다면 장관들 역시 그랬을 것이고, 경찰도 안전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에겐 안됐지만, 카메라가 그 순간을 포착했고 곧 모든 사람이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국회의원들은 무례함을 느꼈고 격분했다. 당사자였던 청와대 참모들은 결국 사과했다. “우리는 의원들의 질문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적인 대화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뒤늦은 대처는 이미 논란의 파장이 일은 뒤였다.
그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태원 참사를 퇴진 정국으로 가져가,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는 “이런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국정감사가 우습게 보이는가?”라고 따지며 “총리 사퇴를 시작으로,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런 비꼬는 투의(sarcastic) 메모와 분노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대중에게 대수롭지 않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핼러윈의 공포와 충격에서 분노로 바뀌는 대중의 미가공된 감정(raw public emotion)을 고려할 때, 청와대 참모진은 이러한 발언을 자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맞다, 그랬어야 했다. 이것에 관해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을 다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필자에겐 국회 내의 질의가 조금 웃겼다. 재미있다는 의미에서 웃긴 것이 아니었고, 비생산적이고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조금 웃겼다. 심지어 조금 이상하다(a little bit weird)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이 집권하든 간에 한국의 야당은 전통적으로 집권한 대통령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하나의 주요 전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이 임명한 관리들이 해고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경쟁력 있는 논리가 있다. 지도자는 그가 임명한 사람들만큼 훌륭하다. 그래서 대통령과 관련된 인사들이 해고된다면, 대통령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이) 선호하는 인사들의 임명을 막는 것은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모티브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가장한다면, 국민 여론이 자신들의 지지자들과도 잘 부합되는 방향으로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큰 결함이 있다. 이 부분은 왜 국회의원들이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대상의 하나인가를 궁금해하는 정치인들에게 꽤 유용할 것이다. 그 핵심은 바로, 많은, 심지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이 경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자. 야당은 상대방을 비판하는 적극적인 역할 외에도 발의, 토론, 법제화, 정권교체 준비와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다. 만약에 여당이 실각할 경우, 이들은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이 집권 정당보다 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낸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좋은 비평가들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깎아내려야 한다는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다. 대통령의 부정적인 면이 상대편에게는 이익이다. 하지만, 지도자를 실패하게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인가? 이 질문에 관해서, 나는 맞으면서도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우선, 야당은 자신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현 지도자가 충분히 실패하기를 바란다. 이 점에서는 ‘맞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통령 자체가 완전한 실패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면 국가가 고통받기 때문이다.
그 둘 사이에는 마치 가는 선과 같은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이것을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다.
이번 국감에서 의원들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추궁할 때 ‘사퇴’에 집중함으로써 정치권은 다소 얄팍하고 불쾌한 동기(something rather shallow and unpleasant in their motives)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모습은 이미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잊어 버린 모습이었고, 기회를 점프해 자신들의 목표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이러한 행동 대신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소 오래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광주 민주화운동 시위대 학살과 관련된 1980년대 후반 첫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노무현 의원의 예시를 들고 싶다. 다른 국회의원들이 증인석에 앉아 겁에 질린 장군들을 향해 횡설수설하고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곤 했지만, 당시 의원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침착함을 유지했고 증인들에게 날카롭고도 명료한 심문을 진행했다. 그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는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중은 노 전 대통령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고,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노 전 대통령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는 목격자들이 보고, 듣고, 한 일을 토대로 무엇이 새롭게 드러나야 하고, 우리 군대가 어떻게 같은 민족의 젊은이들을 살해했는지 국민들이 알게 하는 데 집중했다. 필자가 알 수는 없지만, 생방송으로 중계된 청문회에서 다른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만 신경을 쓴 모습과 대비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단지 국민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지도자로 생각했다고 본다.
이태원의 비극에서, 대중은 당연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경찰들이 태만하다고 판단되면 해고해야 한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일부의 정부 관계자들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자는 사람들이 공정성을 원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사의 역할은 대중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내려져야 하는 처벌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치안 유지 활동을 강화하고,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가 국회의원들에게 전문성을 바라는 이유는 또 있다. 누구도 대통령, 국무총리, 경찰, 소방서장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의 죽음을 초래하기까지 고의로 행동했다고 믿지 않는다. 물론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은 심지어 과실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전 분야의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사회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예기치 못한 비극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참사를 막을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예전의 핼러윈 행사의 빽빽한 군중 속에서 아무도 경찰에게 위험하다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 군중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아무도 그 위험성에 관해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지역 정치인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우려를 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의 새로운 가이드라인과 법령 그리고 아마도 국민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종합적인 리뷰가 지금 필요한 시점이 확실하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참여해 할 일이다. 그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싶은 바이다. (번역=김양희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