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기 이궁(離宮)터인 화지산유적 서사면 중턱에 대규모 대지를 조성한 뒤 다수 기와건물을 계획적으로 조성한 흔적이 확인됐다.
부여군이 문화재청과 함께 추진 중인 ‘부여 화지산유적 9차 발굴조사’를 통해서다.
화지산 유적은 백제 사비도성 내부의 중요 국가시설물 유적으로 알려져 왔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어정(御井)이라 불리는 팔각 우물과 기와를 얹은 초석 건물터, 도로 등이 다수 확인되면서다.
이번 조사에선 화지산 서향사면 일원에 배치된 핵심 건물터의 전체 규모와 축조 양상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건물 축조방식을 살펴보면 경사면을 절토해 대지를 조성한 뒤 크게 두 단계에 걸쳐 계획적으로 건물을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1단계에서는 굴립주(掘立柱)와 벽주(壁柱) 건물지가 조성됐다. 굴립주는 기둥 밑동을 땅속에 박에 세우는 방식이고, 벽주는 외곽에 벽을 돌린 형태로 벽사이에 기둥을 세우는 방식을 말한다.
2단계에선 굴립주와 벽주건물지를 폐기한 뒤 흙을 돋워 쌓아 부지를 정비하고 초석 건물지를 조성했다. 초석 건물지 5동에선 원형·장방형 초석을 사용한 점이 확인됐고 일부 건물지에선 와적기단(瓦積基壇)도 파악됐다.
대규모 수혈식 빙고(얼음창고)도 밝혀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백제시대 빙고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기와 건물지를 비롯한 다양한 유구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일 수 있는 인력 동원 수준을 가늠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풀이된다.
사비도성 내 지배 계층의 건물 조성과정과 규모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정연하게 배치된 13동 이상의 기와 건물지는 현재까지 조사된 사비백제 유적 중 유일무이하다.
당시 최고 토목기술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건축 기술까지 녹아든 사비도성 내 중요 시설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설명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화지산유적 발굴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백제 왕실 궁궐과의 관계를 규명하고, 백제 이궁지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군은 지난 7일부터 화지산유적의 발굴조사 성과를 일반인에게 공개해 그 가치를 알리는 기회를 마련했다. 화지산유적 외에도 백제왕도핵심유적 발굴조사 현장공개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조사성과를 군민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정현 부여군수는 “부여 화지산유적에 대한 조사ㆍ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갈 예정”이라며 “지금까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화지산 유적의 정비와 관리 방안을 수립해 역사적 가치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