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눈물·꽃다발·근조문 남은 아비규환 현장..."못다한 꿈 이루길"

이태원 4번 출구 현장 상황 본부 앞 소방당국, 경찰관, 시민들이 모여있다.[사진=김서현 수습기자]

"예비신랑인 아들이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새벽 2시에 뉴스를 보고 사건을 접한 후 잠이 오지 않아 첫차를 타고 왔습니다."

이태원 4번 출구 앞에 설치된 현장상황 본부에서는 둘째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동대문구에서 첫차를 타고 이태원역으로 허겁지겁 달려온 엄마, 손모씨(60)를 만날 수 있었다. 손씨는 부랴부랴 집에서 나온 듯 얇은 하얀색 털옷 하나를 껴입고 빨갛게 달아오른 손으로 손수건을 손에 꼭 쥔 채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손씨의 둘째 아들 이모씨(31)는 내년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다. 이태원역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도시락 픽업 일을 하는 이씨는 대규모 압사 사고가 벌어진 골목길을 수시로 통행한다. 손씨는 "이태원에 집이 있는 것만 알고 구체적인 주소나 같이 살고 있는 친구의 연락처도 모르는 상황이라 연락만 기다리고 있다"며 울먹이며 전했다.

30일 오전 7시 이태원 4번 출구 앞에 설치된 현장상황 본부에는 손씨를 비롯해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이 닿지 않는 시민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경찰들은 본부 주변으로 폴리스라인을 치고 차량은 물론 시민들의 이동까지 통제했다. 시민들은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명동에서 온 오모씨(32)는 "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며 "솔직히 좁은 골목에서 150여명이 죽은 게 믿기지 않는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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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목격자들도 애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본부 근처에서 만난 정모씨(48)는 경남 통영에서 결혼식 참석차 이태원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고 있다 참변을 경험했다. 무섭고 애통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정씨의 말이다. 그는 "뉴스 보고 현장에 나왔는데 영상으로 볼 때 보다 골목이 더 좁은지 몰랐다"며 "어제 저녁 9시쯤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복귀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 앰뷸런스 소리가 나서 놀랐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직접 있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사고 당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이 밀려 나왔다고 상황을 묘사했다. 조모씨(23·경기 수원)는 "수십명이 동시에 움직이니까 통제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같이 온 친구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손을 놓쳐 외롭고 암담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주변에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했다"며 "농담으로 던진 말이 실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건 발생 30분 전인 금요일 밤 10시께 조씨와 함께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했던 김모씨(23·경기 여주)는 "지옥을 본다면 딱 이럴 것 같았다. 서로 비명을 지르고 완전 아비규환이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좁은 골목에 들어가려는 줄과 나가려는 줄이 줄다리기하는 것처럼 서로 밀었다. 성인 남성이라도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고(압사)가 날 것 같다고 느꼈지만, 사망자가 150명 넘게 발생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긴박한 도움 요청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는 것이 목격자의 말이다. 김모씨(27·양천구 목동)는 "2층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나가길래 밖으로 나왔다"며 "현장에서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고 주변에서 도와 달라는 소리가 들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도와줬다"고 경황없는 상황을 대변해 줬다. 

 

사고 현장 주변 모든 상가의 불이 꺼져 있다.[사진=김서현 수습기자]

핼러윈 파티로 전날 밤 떠들썩했던 ​주변 상가들은 이날 불을 끄거나 문을 닫는 등 침묵을 지켰다. 골목 바닥에는 음식물은 물론 고양이 머리띠 등 분장 도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거리에는 밤중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이 다수 있었다. 당시 사고 상황을 취재 하기 온 언론사 기자들과 몇몇 남은 현장 목격자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사고 현장 폴리스 라인 앞에 꽃다발이 놓여있다.[사진=김서현 수습기자]

오후가 되자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한 시민은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는 사고 현장 앞으로 다가와 꽃 한 송이를 바닥에 두고 고개를 숙인 뒤 고인을 향해 묵념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A씨는 "원래 오늘 이태원에 약속이 있었는데 그냥 가려다 안타까워서 꽃을 두고 가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A씨는 말을 잇지 못하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유족들이 상처받지 않는 보도를 부탁드린다"고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고 현장 옆 신발 가게 벽에 꽃다발과 근조문이 붙어있다.[사진=임종현 수습기자]

A씨가 자리를 떠난 뒤 약 5분 뒤 한 시민이 꽃다발과 근조문을 두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사고 현장 옆 신발 가게 벽에 꽃다발과 근조문을 붙였다. 근조문에는 "근조(謹弔) 좋은 세상 가셔서 못다 한 꿈 이룩하시길 바랍니다"고 적혀있었다.

강모씨(65)는 "원래 이태원 부근에 사는데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여행하는 도중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에 오기 위해 5~6시간 걸리는 거리를 새벽부터 달려왔다. 그는 "여행 일정이 하루 남았지만 이태원을 찾기 위해 아침 새벽에 열차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그의 상황을 설명해주듯 옆에는 케리어가 놓여있었다.

그는 "어제 저녁에 봤을 때는 가벼운 사고인 줄 알았다"며 "두 자리 수도 아니고 세 자리 수 라는 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서 "사고 현장 골목도 자주 다녔던 길인데,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인 채 현재 심정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