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투자하는 '노동집약적'인 국내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동남아시아로 진출했어요. 대신 중국 내 한국 로펌은 특정 영역 자문 의뢰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최근 빅테크 기업 투자 자문이 늘었죠." (국내 로펌 중 중국에 처음 진출한 A로펌 소속 변호사)
국내 로펌이 중국 법률 시장에 진출한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 환경이 악화되면서 국내 로펌은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다만 무역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법률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탓에 중국 내 자문 영역을 기존 제조업에서 4차 산업혁명 산업으로 넓혀 '먹거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외 법률시장에 진출한 국내 로펌은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서비스무역세분류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률서비스 수입은 9억6860만 달러(약 1조3769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0년 9억2920만 달러(약 1조3207억원)보다 3940만 달러 증가한 수치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빅테크', '인공지능' 산업으로
국내 로펌이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나라는 중국이다.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과 법률 시장이 발을 맞춘 것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은 △중국에 직접 공장을 지어서 시작 △기존 중국 회사를 인수·합병(M&A) △중국 회사와 합자법인을 만들어 공동 투자하는 사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2015년 사드(THAAD) 사태와 미·중 갈등 장기화를 마주하며 기업의 대중 투자는 주저하게 됐고 법률 시장도 다소 위축됐다. '노동집약적인' 산업 진출이 많았던 중국은 최근 2~3년 새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 자문이 늘었다. 중국에 1997년 가장 먼저 진출한 법무법인 태평양 상해사무소 대표인 김성욱 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는 "인공지능 관련 산업이나 자율주행자동차, 빅데이터를 다루는 회사 자문을 들 수 있다"며 "최근 빅데이터를 이용한 광고 마케팅 회사를 인수한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중국 투자 유형이 다양해진 와중에 소수 지분 투자가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 변호사는 "과거엔 기업을 인수하려면 지분 100%나, 다수 지분을 인수했다"면서 "최근엔 기업의 지분을 한 10~20%만 인수해 경영하는 '소수 지분 투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기업의 소수 지분을 인수해 투자하는 방법은 보다 현지화된 마케팅과 운영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2010년 이후 내수시장 자문 활발"
중국에 직접 투자를 하는 기업이 줄었지만 중국에 진출한 산업 분야가 다양해졌다. 중국은 2010년 이후 소비 중심의 경제 발전을 시작했다. 중국 내수시장 규모를 보여주는 소비재 소매판매액을 보면 2003년 5조2500억 위안에서 2021년은 44조 위안을 기록했다. 박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연수원 25기)는 "과거 기업은 국내에서 제조·가공을 하고 중국에 들어갔다면, 이젠 중국에 법인을 세워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합자법인 투자 방식을 이용한 내수 시장 공략도 특이점이다. 합작투자(합자투자)는 2개국 이상의 개인이나 기업, 정부기관이 특정 기업체 운영에 대해 공동으로 참여하는 해외투자방식이다. 원중재 변호사(법무법인 세종·연수원 44기)는 "중국은 산업적인 트렌드 변화도 빨라졌다"면서 "합자사업의 경우 파트너 선정부터 합자전략 수립 및 협상 그리고 합자법인의 운영까지 철저하게 검증하고 준비하는 한국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로펌은 대외적인 영향에 중국 법률 시장에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해도, 자문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면서 '살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국내 로펌 관계자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 최대 법률 시장인 중국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이것도 서비스업이니, 고객의 니즈(needs)가 바뀌는 대로 서비스를 바꾸면서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