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한국인을 하나로 묶을 성스러운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2022-10-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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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정체성의 근원이듯, 한국인에게 '민족'은 성스러운 연결 고리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많은 영국인이 그랬듯 필자도 눈물을 흘렸다. 내성적인 성격의 전형적인 남부 영국 사람으로서(물론 내가 절반은 스코틀랜드 사람이긴 하지만) 감정적으로 굴지 않으려 하긴 했지만 실패했다. 소식을 들은 당일에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내 모습은 놀랍다. 필자는 나 자신을 민주주의자(democrat)라고 여기고 있다. 특정한 사람들이 단지 우월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국민(people)'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전문가들(이들 중 일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들이 포함된다)로 채워진 기관(institutions)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 자신을 공화주의자(republican)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왕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민주주의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음과 동시에 이와는 모순되는 감정적 정서도 항상 가슴속에 박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나는 한국에 함께 살고 있는 내 가족들은 나의 이러한 반응을 공유하지 않았음을 일러둔다. 내 아내는 법적으로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한국인으로 정의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영국인이라서 슬퍼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그녀는 “그는 영국인이기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덧붙였어야 했다. 왜냐하면 필자는 내 내면에 자리 잡은  머리와 가슴의 모순이 영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해할 수 있는 한 예기치 못한 감정들은 두 곳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일종의 향수와 개인적 상실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인들을 제2차 세계대전 세대와 연결해주는 마지막 공인이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오늘날 선진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던, 가난하게 태어나서 희생과 노고를 감내했던 세대인 셈이다. 우리는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유행에 뒤떨어진 자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낡은 습관과 생각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며 단련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들이 우리보다 낫다고 본다.
 
여왕은 이런 식으로 나에게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을 떠오르게 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녀가 가진 가치관과 태도 때문이었다. 그녀의 세대는 우리에게 공정성, 정직함, 그리고 예절을 중시해야 하고, 열심히 일하며, 불평하지 않고,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왕실은 이러한 메시지를 설교하기보다는 구체화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예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도우러 오기 전에 영국은 홀로 나치와 싸우고 있었다. 침략이 임박해 도시들이 매일 밤 폭격을 당했을 때 왕실은 탈출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동안 폭탄 두 개가 그들 관저에 떨어졌다. 위험한 시기에 국민 곁을 지키기로 한 그 결정은 결코 잊힐 수 없는 것이었다.
 
여왕의 죽음에 관한 두 번째 감정의 원천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꽤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무언가다. 설명하자면, 그것은 한국인들도 가지고 있지만 영국인들과는 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인들에게 군주라는 것은 그들 이야기를 담는 용기(receptacle)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사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피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며 매우 신성하다.
 
필자는 이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우선, 많은 사람을 잘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한계는 150명 정도라 말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공동체'라 여길 수 있는 친구들이나 친척들 모임의 크기다. 우리는 노력을 통해 그것을 더 크게 만들려 할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이름만으로 더 많은 사람을 알 수 있지만 그들을 잘 아는 것은 어렵다. 이런 제약이 끊임없는 싸움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공통적인 유대감을 공유하고 낯선 사람들을 친구로 볼 수 있기 위한 '상상적 공동체(imaginary community)'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창의력을 사용한다. 상상 속 공동체가 바로 우리의 국가다. 우리는 공유된 기억, 상징, 언어, 법 등을 통해 그것을 창조해 낸다.
 
우리가 정체성(identity)의 근원으로 믿는 깊고 의미 있는 곳에는 신성시되는 무언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내가 영국 사람들과 군주의 관계가 성스럽다고 말할 때 당연히 나는 모두가 그렇다고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왕실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차라리 왕실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보통 그런 사람들에게 국가와의 신성한 관계는 다른 특징(feature)이나 상상의 미래에 정착하여 구현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들 국가에 관해 특정한 감정을 품는 경향이 있지만 외부인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다른 나라 국기가 우리에게는 감흥이 없고, 심지어 그들의 국가(國歌)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특히 민주주의 체제의 자유시민들이 군주에 대한 사랑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관심을 가지긴 힘들 것이다. 
 
물론 한국에는 더 이상 왕실이 없고, 따라서 그에 관한 향수도 없다. 사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단 한 사람조차도 한국이 입헌군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에게 국가와의 관계에서 성스러운 부분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 정착됐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지위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자면 대한민국에서 국민과 대통령의 관계는 신성하지 않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반대자들이 다음 선거 전에라도 그를 탄핵하고 쫓아내기 위해 대거 거리로 나설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점이 시사하듯이 한국인들은 대통령 집무실, 국회, 선거 등과 같은 기관이나 제도를 중시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미국인들에게처럼 성스러운 것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또한 태극기나 애국가와 같은 국가적 상징들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들이 한국인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담는 용기(receptacle of our stories)'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자 관점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깊고 성스럽게 여겨지는 연결 지점은 민족(people)'이다. 한민족과 그에 기반한 국가에 관한 생각은 그들에게 엄청난 정서적 반응을 끌어낸다. 한국인들은 심한 공격을 받고 멍들어버린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기적에 가까운 회복력과 거의 신의 도움을 통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그 정체성은 전시 상태로 인해 찢어져 있지만 그것이 성스러움을 감소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러한 특징이 그저 통일을 자명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외부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남북 분단을 영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분별력 있는 것이고 평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제안할 수도 있지만 남북 모든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이 해결책을 거부한다. 그들은 단지 동의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제안 자체가 신성한 것을 위배한다고 느낀다. 그러한 의견을 제시하는 외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신성한 곳을 밟는 셈이 된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도 한 그룹의 한국인들-남한 사람들(South Koreans)-이 산산조각 난 삶을 재건하고 세계 무대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신의 가호로 좋은 시기에 다시 통일할 수 있는 때가 오면 한국인의 정체성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통일된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으로 충성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또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번역=김양희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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