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120년전 서울역사박물관에 비친 서울

2022-08-22 10:05
  • 글자크기 설정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사진=서울시]

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 3층은 상설전시실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보고, 대한제국 시기 한성으로 가려면 건물과 건물을 잇는 다리를 지나게 된다.
나는 이 다리의 널찍한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풍광이 너무나 좋다. 왼쪽으로는 경희궁의 짙푸른 녹음이 있다. 큰 나무 사이로 옛 궁궐의 기와가 보인다. 시야에는 인왕산도 지척이다.
오른쪽으로는 박물관 정원이다. 하얀색 파라솔 아래에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는 동료 시민들이 있다. 아이들은 어정(임금의 우물) 뜰에서 뛰놀기도 한다. 같이 온 할머니는 쉼터에 앉아 손주를 바라본다.
매력 도시 서울에는 박물관보다 더 멋진 곳이 아주 많다. 다만 광화문사거리 인근 신문로 큰길에서 50여 m 들어오면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로 봤을 때 역사박물관의 매력은 명품급이라 자부한다.
다리를 건너면 ‘임인진연도병’을 볼 수 있다. 꽤 이름난 그림이다. 국립국악원 ‘500년 조선의 마지막 잔치’ 공연은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악사 등에서 귀중한 자료로 전시될 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받는다.
모든 나라의 역사에는 굴곡이 있다. 역사박물관 내 소장품을 보는 심정도 그렇다. 찬탄과 분노, 환희와 슬픔이 수시로 교차한다.
서울역사박물관 내 전시물 중 작품 자체에는 찬탄을, 그러나 그 배경에는 분노를 느끼는 가장 대표적 유물 중 하나로 나는 임인진연도병을 들고 싶다. 이 기록화의 주인공과 만든 시기 때문에 그렇다.
이 병풍은 올해와 같은 임인년으로 120년 전인 1902년, 고종의 51세와 군주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벌인 큰 잔치를 그린 것이다. 1902년이라면 한반도에서 일본과 러시아가 세력 균형을 이룬 시기다. 무너져 가는 조선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부국강병의 반전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고종과 그의 신하들은 나라의 중흥보다 잔치와 보여주기식 행사에 더 신경을 썼다. 먹고 마시고 기념물 세우느라 당시 국가 예산 중 10분의 1 이상을 지출했다. 군함 살 돈을 전용해 호화 별장인 이화원을 짓고 환갑이라며 흥청망청하다 거대 제국 청을 망친 서태후 행태를 그대로 따랐다.
이 병풍에는 잔치 벌이려고 ‘진연청’이란 임시기구까지 만들고 거기에 누가 임명됐는지가 생생히 나온다. 이 빛나는 행사 후 불과 3년 뒤 조선은 을사늑약의 수모를 겪고 사실상 망했다.
백성 수백만 명이 살길 찾아 만주 등 낯선 곳으로 떠나야 했다. 수십만 명이 독립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에서 목숨을 잃었다. 무능과 부패, 사치의 임금이 고종이다. 고종은 입헌 대신 황제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한 퇴행적 군주였다.
이런 고종을 기리겠다고, 과거의 서울시는 덕수궁 주변에 2018년 ‘고종의 길’을 만들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맞장구치며 찬사를 보냈다. 우리 사회에는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 중 고종 추앙(?)론자가 의외로 많다.
박물관 뒤쪽 야외에 ‘흥친왕 신도비’가 있다. 한반도 왕조들은 거의 황제를 칭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친왕’은 몇 명 없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 피붙이들이 친왕의 예우를 받았다.
흥친왕은 고종의 친형 이재면이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 행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조선은 당상관 이상 고관에게만 신도비를 허락했다.
대한제국 친왕은 나라가 망했을 때 어떻게 했을까. 이재면은 황실 대표로 한·일 병합을 축하했다. 일제 측에서 거액의 사례금과 작위를 받았다. 독립군과 함께 싸운 황족은 없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김상옥이란 이름을 시민들께 전하고 있다. 그는 영화 ‘암살’처럼 경성 도심에서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했다. 끝까지 싸웠고 자결했다. 김상옥은 자그마한 비석 하나도 세상에 못 남겼다.
이재면의 신도비는 아주 크다. 글씨는 당대를 풍미한 서예가가 썼다. 그의 묘 옆에 있다가 오래전 박물관으로 왔다.
김상옥 이름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그 이름, 또렷이 기억하려고 시민들은 전시물을 본다. 흥친왕 신도비, 그 존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재면 이름 석 자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공화국 대한민국 시민들은 그 사전에 오른 이름들을 부끄럽게 기억한다.
국가와 국가 간에는 불행한 과거가 왕왕 있다. 잊어서는 안 된다. 망각하면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게 해서도 안 된다. 적이 친구가 되는 경우가 역사에서는 흔한 일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우리 역사의 찬탄과 분노, 환희와 슬픔이 있다. 생전의 영예와 후대의 평가가 아주 다를 수 있음을 박물관은 생생히 보여준다. 박물관의 힘이다.
그리고 박물관은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적 대도시가 된 서울의 자랑스러운 성취와 함께한다. 아울러 박물관에는 매력적인 글로벌 문화 중심지가 되고자 하는 서울의 꿈이 있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1개의 댓글
0 / 300
  • 임인진연도병을 보러 역사박물관에 가야겠네요.
    글이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비공감
    공감:2
    비공감: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