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앱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플랫폼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 없이는 일상에 큰 불편이 초래될 정도다. 그와 함께 플랫폼업체들의 독점적 지위에 따른 불공정 행위도 만연하다. 그 폐해를 규제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입법을 추진한 계기가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거래 행위와 보복 조치 등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벌칙 등이 주요 골자다.
이 법이 추진되자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의 반발이 거셌다. 혁신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플랫폼 기업 대표들과 간담회하면서 혁신과 공정의 가치를 위해 플랫폼업체들의 자율 규제에 맡기겠다고 하였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혁신과 공정을 저해하므로, 혁신과 공정을 위해 이 법의 입법은 포기하고 독점의 폐해를 업계 자율 규제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혁신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독점을 형성하게 한다. 그 독점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은 어렵다. 독점적 지위를 가진 업체는 그 지위를 위협하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시기부터 이미 독점하고 있는 권력으로 말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는 그야말로 최고의 혁신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운영체제를 독점했다. 이 독점적 지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를 가능하게 했다. 결국 유력한 경쟁자였던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지위에 무릎을 꿇고 사라졌다.
느린 속도 등 많은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익스플로러는 윈도의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브라우저 독점을 한동안 유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스스로 독점을 포기하지 않았다. 끼워 팔기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스스로 이를 멈추지는 않았다. 구글 크롬 등 새로운 혁신에 의해 익스플로러가 도태된 것은 경쟁당국의 제재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했다.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끼워 팔기를 계속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독점의 폐해는 자율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쟁법에 의해 비로소 사라졌고, 익스플로러를 넘어서는 새로운 혁신이 가능해졌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율에 계속 맡겨 두었다면 지금도 불편한 익스플로러가 지배하고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마이크로소프트 스스로 ‘에지’라는 새로운 혁신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온라인 플랫폼법과 유사한 취지의 법안이 미국과 EU에서 추진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에 기업결합 신고 의무, 차별 취급 금지, 자사 우대 금지, 이해충돌 금지 등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독점 행위를 직접 규제하는 법안 4건이 이미 하원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미국·EU와는 달리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은 포기하고, 업계의 자율 규제에 맡기겠다고 하였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이나 EU와 달리 선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책 포럼’과 ‘디지털 플랫폼 정책협의체’에서 논의하여 자율규제기구를 만들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EU와 달리 우리 기업은 자율 규제로 충분히 독점적 지위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021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형 플랫폼업체에서 불공정 피해를 입었다는 중소기업 비중이 47.1%였다. 이미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대형 플랫폼업체의 독점 폐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가 자율 규제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도 그 폐해와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한 셈이다.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의 독점에서 오는 횡포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있는 셈이다.
그럼 규제의 방법이 문제인데, 자율 규제가 더 바람직한 방안인지 의문이다. 자율 규제와 법에 의한 규제의 차이는 결국 강제력 여부다. 이미 있는 법도 위반하는 사례가 많은 데 아예 그런 법 없이도 알아서 독점적 횡포를 스스로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익스플로러 사례에서 보듯 자율에 의한 독점의 포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에게 자율적으로 배고픔을 견디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사활이 걸린 절박한 문제를 독점업체들의 자율에 맡겨둘 수는 없다.
규제가 혁신을 막는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도 만능열쇠는 아니다. 혁신은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데 기여해야 의미가 있다. 고문(拷問) 기술의 혁신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고 기만적인 행위를 하는 혁신은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혁신이라 하더라도 이를 막지 않으면서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그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이 바로 정치가 할 일이고, 국가가 할 일이다. 이미 그 폐해가 드러났고, 규제의 필요성은 드러났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정치와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형 플랫폼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더 커진 이후에는 규제하기 더 어려워진다. 그사이 우리 사회 새로운 혁신의 싹은 이미 사라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