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북 경산시는 드디어 그동안 비대면으로 개최한 ‘자인단오’ 축제를 대면축제의 형태로 개최했다. ‘자인단오’ 축제 기간에는 어김없이 경산시의 무형문화재인 ‘한장군놀이’가 재현돼 시민들과 관람객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그러나 정작 실존하는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는 고증과 발굴에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어 지역의 뜻있는 시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꾸는 터닝포인트 역할을 한 전투인 ‘영천성 수복전투’에서 경산 출신 의병장인 ‘최문병 장군’은 영천의 의병장 권응수 장군과 함께 혁혁한 전공을 올려 ‘징비록’을 비롯한 ‘실록’에도 기록되는 등 당시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과 함께 영남 의병을 주도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최문병 장군은 그 당시 영남지방의 크고 작은 왜군과의 전투에 참전해 부산으로부터 올라오는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곽재우 장군과 함께 큰 전과를 올렸으며 그의 두 아들들을 곽재우 장군 휘하에 종군케 하는 등 당시의 사대부로서 ‘노블레스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현재 최문병 장군이 의병을 일으키고 활동한 주 무대인 경산시는 최문병 장군에 관해서는 사료의 발굴, 학문적인 연구 등에는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
곽재우 장군의 고향인 경남 의령군은 군 차원에서 기제사는 물론 사료 발굴에 힘을 기울여 곽재우 장군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각종 행사 및 축제에 빠짐없이 등장시켜 '의령'하면 곽재우 장군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활발하게 연구와 숭모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산시의 인접 지자체인 영천시는 영천의 자랑인 ‘임란의병’과 한말의병인 ‘삼남의진’에 대해 시 차원의 연구와 학술회를 가져 해마다 성대한 의병들의 추모 및 기념식을 거행하고 마침내 정부로부터 ‘의병의 날’ 행사를 유치하는데 성공하고 오는 11일부터 그 성대한 막을 올린다.
반면 경산의 의병장 최문병 장군은 당시 그 비중이 곽재우 장군에 버금가는 인물이었으나 경산시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존재감 자체가 없는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산시가 최문병 장군의 숭모 및 사료 발굴사업에 지원하는 것은 과거 3공화국 시절 故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제사 때 겨우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이러니 최문병 장군의 학술적인 연구나 숭모 사업은 기대할 수가 없다. 하물며 매년 경산시가 거액의 예산으로 개최하는 자인 단오제의 시가행진에조차 ‘최문병 장군’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전해 듣고 실제상황을 목격한 곽재우 장군의 후손 곽모 씨는 “의령군은 경산시에 비해 예산의 규모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곽재우 장군에 대한 예우를 보다가 경산시의 최문병 장군에 대한 예우를 보면 보는 내가 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허술하고 성의 없는 최문병 장군에 대한 경산시의 예우를 꼬집었다.
경산의 향토사학자 J씨는 “우리 역사 특히 임란 의병사에서 최문병 장군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래 각 지자체는 앞을 다퉈 그고장의 의병의 역사와 의병장들의 공적을 발굴해 숭모하는 한편 학술대회 등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개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경산시는 과거 관선 시장 시절 기제사때 초헌관으로 제를 주관했으나 민선시장으로 바뀌면서 이마저도 중단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며 경산시의 성의 없고 안일한 태도를 지적했다.
◆ ‘삼성현 역사공원,’ 경산시의 무사안일 행정속에 단순 놀이 장소로 전락
조성목적과 활용계획에 비추어 현재 ‘삼성현역사공원’은 존립이유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삼성현역사공원에 가족들과 놀러 온 한 시민에게 삼성현에 대해 물었으나 모른다는 답변을 하면서 삼성현 공원은 경산에서 가장 놀기 좋은 장소라고 말하는 등 시민들의 삼성현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낮았다. 하물며 야간에는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까지 전락하는 등 문화공간으로의 존재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한편 경산시의 인근 지자체인 청도군은 ‘화랑세속오계역사공원’을 조성해 매년 관내 학생들의 수련 및 연수에 적극 활용하고 스토리텔링도 발전시켜 인근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하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경산시의 경우와는 사뭇 대조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