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이 격돌하면서, 세계 경제가 양분되는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의 개인전이 아니라, 미국 우방국들과 중국 우방국들의 단체전으로 불거지고 있다.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해지는 세계는 새로운 수식어를 찾아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바로 블록경제(bloc economy)다.
IPEF 출범과 거대 경제블록의 형성
2022년 5월 23일 미국은 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를 출범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 간의 블록을 형성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협력체라는 면에서 그리고 중국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향후 중국을 배제한 더 많은 국가가 IPEF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비롯한 IPEF 참여국들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2022년 하반기 대외거래 및 외교·안보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어떤 선택이든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한국이 IPEF에 참여함에 따라 갖게 될 기회와 위협을 명확히 판단하고, 블록경제 하의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하겠다.
IPEF는 그동안의 다자간 경제협력체제와는 차이가 있다.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것도 다자간의 무역협정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해석하는 근거가 된다. FTA(자유무역협정)는 상대국간 관세를 낮추어 자유로운 무역을 하자는 데 초점이 있었으나, IPEF는 관세에 관한 논의가 없다. 따라서 메가 FTA와는 성격에 차이가 있다. IPEF는 바로 ‘공급망 확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즉, 국가 간 혹은 권역 내 FTA를 넘어서 코로나19 이후 부상한 핵심이슈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공급망 문제, 디지털 교역, 그린 에너지 등과 같은 2020년대 부상한 새로운 통상의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IPEF가 줄 기회와 위협
선택은 곧 포기를 뜻하기도 한다. 가능한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대안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일반적인 선택은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려진 결정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포기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IPEF 참여라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IPEF 참여는 교역과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 군사적으로 고려할 것이 많은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져다줄 기회와 위협 요소들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 수출의 25%에 달하는 중국 시장과 멀어지는 일일지 몰라도, 40%를 초과하는 IPEF 참여국과 가까워지는 일일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보복이 두렵지만, IPEF에 참여하지 않을 때 한국-미국-일본-대만에 이르는 반도체 동맹을 포기하는 것은 더 두렵다.
IPEF가 줄 기회는 상당하다. 첫째, 국가 간 혹은 권역 내 디지털·그린 통상규범을 설정하는 데 이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세와 탄소국경조정제도 등과 같은 논의가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등 글로벌 통상 환경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이 IPEF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통상규범을 설정하는 데 룰메이커(rule maker)로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국내 기업들이 IPEF 권역 내 신시장을 확보하고,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데도 이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 같은 신흥국 인프라 사업 참여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IPEF 참가국들이 세계 GDP의 40%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만큼, 거대 시장과 한층 가까워진다는 의미가 있다. 넷째, 기술교류 및 기업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AI나 청정에너지 분야의 공동연구나 기술표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IPEF의 의미는 공급망 안정화에 있다. 에너지나 광물 원자재뿐만 아니라 식료품 원자재 수급이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역내 공급망 협력이 크게 증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IPEF가 주는 위협요인도 적다고 할 수 없다. 중국으로부터의 경제보복이 우려된다. 2017년에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했던 사례가 있다. 제2의 사드 보복 조치 우려가 상당하다. 최근 호주도 중국으로부터 석탄 수입을 차단당한 전례가 있듯이, 중국이 반한 감정을 경제보복으로 확대할 명분을 제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 K-콘텐츠뿐만 아니라 한국 제품 수요를 차단할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공급망 충격이다. 중국 및 중국 우방국들에 의존하는 광물 원자재 공급을 차단할 경우,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즉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올 수 있다. 요소, 마그네슘, 니켈 등과 같은 중국에 집중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원자재나 부품 공급을 불시에 중단할 때 오는 산업계 충격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블록경제를 준비하라
글로벌 경제가 가고, 블록경제가 온다. 미·중 패권전쟁이 군사적인 충돌로 확전될 우려가 있고,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만과 홍콩과 같은 주요 지역을 격전지로 할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블록화된 경제를 가능한 시나리오로 가정하고, 사전에 대응태세를 갖춰야만 한다. 더는 특정 국가의 경제보복에 나라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IPEF가 주는 잠재적 위협들을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특정 국가에 집중적으로 의존하는 경제구조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중국경제가 고성장할 때는 강력한 이점으로 작용했지만, 블록경제 하에서는 극히 치명적이다. 원자재 수급과 밸류체인 및 수출에 이르기까지 IPEF 내 주요국들로 다변화해야 한다. 단기간 안에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금부터 개선해 나감으로써 중국의 경제제재로부터 영향을 최소화해야 하겠다.
IPEF가 줄 기회를 최대한 포착해야 한다. IPEF 권역 내 신흥국 진출과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참여 등의 시장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거대한 땅인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각각 국내 수출의 2.4%, 1.5%, 1.3% 수준에 불과하다(2021년 기준). 특히 에너지, 광물, 식료품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공급 안정화 방안을 마련할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래산업이다. IPEF에 가입한다고, 가만히 있는데 모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배터리, 디스플레이, 청정에너지 등과 같은 주력산업의 기술 및 인적교류를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을 선점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만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