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통일부' 이름을 '교류협력부'로 바꾸자

2022-04-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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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대통령직인수위위원회가 통일부 존치를 확정하면서 그 '고유 기능'을 되찾는 쪽으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한다. 통일부의 고유 기능이 따로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통일부 기능이 사뭇 개편될 것이라는 예감은 든다. 14년 전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도 통일부 존치가 논란을 빚은 적이 있었다. 통일부가 제 기능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통일부 홈페이지에 통일부는 통일 업무를 전담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각계의 통일 논의를 수렴하고,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제도적으로 통일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되어 있다. 구체적인 임무는 남북 대화·교류·협력·인도적 지원에 관한 정책 수립, 북한 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등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것이다. 그런 통일부가 지금까지 자신의 업무를 해태했거나 잘못 수행해왔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중요한 대북 정책과 남북 관계 향방은 청와대에서 결정된다. 대통령제의 특징이다. 통일부는 정부 정책을 개발하고 보좌할 뿐이다. 그럼에도 존치가 문제된다면 남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권고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장관이 대통령을 독대하기도 힘든 점은 차지하더라도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국내외 모든 상황들을 고려하고, 정책이 결정되는 구도에서 통일부가 어떤 주도권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수위가 통일부의 ‘고유 기능’을 문제 삼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북한에 대해 할 말을 하지 않고,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진보 정권의 태도가 못마땅하다면 이는 통일부에 대해 뭐라고 할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공약집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굴종적인 자세로 남북 관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비판의 핵심적 대상이 통일부라면, 그래서 ‘고유 기능’을 찾아야 한다면 화나는데 분풀이를 엉뚱한 데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통일부의 고유 기능과 관련해 인수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통일부는 남북 교류 협력, 인도주의 지원에서 시작되는 가장 기본적 업무가 있었는데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느냐에 대해 인수위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그래서 “남북 교류 협력, 인도주의에 대한 노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차제에 한 가지 건의하고자 한다. 통일부 명칭을 아예 ‘교류협력부’로 바꾸라는 것이다. 통일부의 고유 기능을 청와대의 대북 정책 방향과 관계없이 ‘교류협력’으로 정한다면 통일부라는 명칭보다는 ‘교류협력부’라는 명칭이 훨씬 더 어울리고 선명하다. 인수위 스스로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가 주도하고, 통일부가 시행하는 현 정부의 통일부에 대한 정책에서 벗어나겠다”고.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따로 있다. 청와대의 대북 정책 방향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에 할 말만 하고 대북 ‘굴종적’ 자세를 취하지만 않는 것이 대북 정책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우리 헌법 제4조에는 통일조항이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명시(헌법 제66조)되어 있다. 모든 대북 정책은 여기에 수렴된다. 청와대가 대북 관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는 정부 몫이지만, 향후 발생하는 대북 관계와 정책은 따지고 보면 모두 통일로 수렴된다.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내는 것이냐다. 통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통일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통일은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이다. 달리 말해 북한 체제와 정권은 없어지는 것이다. 북한의 소멸이 전제되어야만 그런 통일이 가능하다. 전쟁은 있을 수 없다. 북한을 붕괴시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가만히 두면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는 허구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다. 남한 주도의 통일, 그러면서도 부작용이 없고, 재정적 부담이 적은 통일. 정부는 이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스스로 원하는 단일 체제의 통일을 추구하면 할수록 북한은 이를 경계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꾸준하게 추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먼저 통일과 같은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름하여 ‘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구든 언제든지 남북을 오갈 수 있고 방문할 수 있으며 사업할 수 있는 상태가 ‘사실상의 통일’ 상태다. 일상의 친구 같은 만남, 북한 학생들이 남한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상황이 사실상의 통일이다. 이를 먼저 이룬다면 체제 통일은 더 쉽다. 언제든 하면 된다. '사실상의 통일'을 위한 추동력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남북 교류 협력이다. 통일을 전면에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교류 협력을 내세워야만 가능하다. 새 정부가 통일부로 하여금 교류 협력 중심의 고유 기능을 수행하게 하겠다면 정부도 교류 협력 중심의 대북 정책적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 통일부만 교류 협력 기능만 수행하게 하고, 청와대는 그런 기능과 관계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새 정부는 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라는 명칭을 바꿔라. 통일부라는 명칭 자체가 북한이 없어지는 통일을 배태하고 있다. 통일보다 먼저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서 북녘을 거쳐 유라시아로 갈 수 있는 길부터 만들어라.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통일에 관심이 없다. 통일이 가져다 줄 편익보다는 비용과 부작용부터 먼저 생각한다. 그렇지만 북한과 교류 협력은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북한이 경계하고 통일에 대해 관심이 적은 우리 국민, 특히 젊은 층을 겨냥해서라도 통일부를 ‘교류협력부’로 개칭하는 것이 어떨까?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빌리 브란트 총리. 1963년 정권을 맡자마자 이전 정부의 '힘의 우위에 의한 대동독 정책'을 일거에 바꾸었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교류 협력을 최우선하는 대동독 정책을 추구했다. 우리의 통일부와 같은 ‘전독성’을 ‘교류협력부’라고 할 수 있는 ‘내독성’으로 부처 명칭을 변경했다. 통일이 아닌 협력에 바탕을 둔 동·서독 관계는 정권의 바뀜에 관계없이 발전했다. 여러 차례 동·서독 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지켜냈다. 그 결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는 개혁·개방 정책에 의한 동유럽 변화에 힘입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다. 동독 주민 거의 모두가 서독 체제에 의한 통일을 원했다. 서독 체제로 쏙 빨려 들어가는 통일. 통일을 하면 서독처럼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은 꾸준한 교류 협력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 평화 통일. 동독 주민 모두가 서독 체제를 원했던 통일,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형태와 내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교류 협력을 해야 한다. 통일부는 자체 명칭부터 개편하고 부디 실질적인 대북 교류 협력 방안을 만들어내기 바란다. 

김영윤 필자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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