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유럽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무기로 휘두르자, 독일 등 유럽 각국이 몸살을 앓는 모습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물가를 천장까지 끌어 올리며 유럽 전역에 경기침체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 '휘청'
역대급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때문으로, 난방유가 전년 동기 대비 99.8% 오르는 등 에너지 가격이 39.5% 치솟으면서 물가 상승세를 부채질했다.
경제학자들은 유로존 전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6.6%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은 높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로 인해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대러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 “다수 기업이 붕괴할 수 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독일 정부 경제자문기관인 독일 경제전문가협의회(GCEE)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경제 생산 감소는 물론, 인플레이션 급등이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최근 의회 연설에서 러시아 에너지 수입에 대한 즉각적인 금수 조치는 “우리나라(독일)와 유럽 전체를 경기 침체에 빠뜨리는 것을 의미한다”며 “수십만개의 일자리는 물론이고 산업 전반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이 중단되면 독일의 인플레이션율이 7.5~9%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크푸르트대 경제학과 교수인 볼커 빌란트는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독일의 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에 근접할 뿐만 아니라 경기 침체 위험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 민간 경제연구소인 이포인스티튜트는 올해 독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7%에서 2.2~3.1%로 하향 조정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원자재와 중간 제품의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경제가 둔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유럽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2020년에 천연가스의 59%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다. 체코는 86%, 라트비아와 헝가리는 자국내 수요보다 더 많은 100% 이상에 달하는 가스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연설을 통해 “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경제적 비용은 더 높아질 것이고, 우리에게 불리한 시나리오로 끝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유럽 경제가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LNG 결제 대금 방식 두고 러-EU 옥신각신
천연가스 대금 결제 방식을 두고 날을 세웠던 러시아와 EU가 타협점을 보이며 급한 불은 끈 모양새다. 하지만 유럽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숄츠 독일 총리에게 유럽이 러시아 가스대금을 루블화가 아닌 유로화로 계속 결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의 제재를 받지 않는 가스프롬방크에 가스대금을 지급하는 한 유로화로 계속 결제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FT는 전했다.
전날까지 러시아는 EU 등 적대국에는 가스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이에 독일은 가스 비상 공급 계획 조기 경보를 발령하는 등 가스공급 중단 가능성에 대비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TTF)은 공급 차질을 우려해 9% 오른 메가와트시(MWh)당 118유로에 거래됐다. 영국은 가스 수입의 4%만 러시아에서 수입하지만, 영국의 가스 도매 가격 역시 섬(therm)당 6% 오른 280펜스에 거래되는 등 유럽 전역이 영향을 받고 있다.
EU는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할 새로운 공급원을 찾기 위해 카타르, 앙골라, 알제리, 리비아, 미국 등 가스 생산 업체들과 논의하는 등 비상대책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단기간에 판도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카타르는 당장 LNG의 약 10~15%만을 유럽으로 보낼 수 있으며 수송비용도 러시아 가스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