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하는 한국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전개 방향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앞에 펼쳐진 국제 환경은 언제나처럼 녹록하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장기전 태세로 접어든 모양새다. 미국은 서방세계를 규합해 대러시아 제재에 열중이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공조로 미국에 대항하려 하지만 러시아의 무모한 침공으로 외교적 운신의 폭이 크게 제약받는 상황이다. 미·중 갈등도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제재를 둘러싼 이견까지 더해지면서 갈등의 폭이 넓어지는 양상이다. 여기에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과 미사일 문제도 악화일로다. 북한은 현 정부가 지난 5년간의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한반도 평화’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초부터 온갖 미사일 실험을 하더니 결국 유엔 안보리 2375 제재 결의안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화성 17호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한반도가 다시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당선 확정 후 첫 기자회견에서 당당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외교 분야는 현 정부의 기조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문이다. 경선 과정에서의 공약대로 새 정부의 대외 정책 방향은 비핵·번영의 한반도 실현과 한·미 동맹 재건과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 경제안보 외교의 적극적 추진 및 인공지능(AI) 과학기술 강군 육성, 실질적인 북핵·미사일 대응체계 구축이 핵심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 시도를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기존 대북 정책 수정은 물론 그동안 소외되었다고 판단하는 한·미 관계의 복원 및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을 받아온 대중 외교의 ‘상호주의 강화’를 강조한다. 대일 외교정책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제시하면서 역사와 현실을 분리하는 노선 수정을 예고하는 등 차별성이 뚜렷하다.
둘째, 한·미동맹의 복원을 새 좌표로 제시했다. 당선자는 미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문장에서 한·미는 특정 군사적 위협에만 대처했던 과거의 형태를 넘어 포괄적 경제·안보 전략동맹 강화를 통해 아태지역과 글로벌 질서의 미래 비전을 함께 설계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혈맹을 넘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포괄적 가치동맹을 구축해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나 민주주의·인권 등 보편적 가치 수호 전선에서도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반도체, 6G, 우주항공 등 첨단 산업까지 한·미 동맹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4개국 협의체인 쿼드와 5개국 정보공유 동맹인 파이브아이스(Five Eyes) 참여 및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의 철학과 부합한다면서 환영의 뜻을 밝혀 다양한 한·미 공조가 예상된다.
셋째, 중국에 대해선 '당당한 외교'와 상호존중에 기반한 한·중 관계를 구현하겠다며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 정부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품었고, 대중 경제 교류 손상에 고심하면서 중국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를 위주로 국제관계를 재단하고 북한에 대한 직접 영향력 구사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과대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선자는 중국이 소위 '건설적 역할'만을 강조하면서 실질적 대북 영향력 발휘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이를 보완하는 정상적 관계 설정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 눈치 보기가 진행됐던 것이 문제다. 중국 역시 한국의 대미 경사 저지와 한·미·일 삼각 협력 구도 와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한과의 친선 강조와 함께 한국에게는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국민의 대중 인식이 크게 악화되면서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양국 정부가 미래 한·중 관계의 발전을 위해 각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목이다.
넷째, 미·중 진영화 추세 속에서 경제가 곧 안보인 시대에 맞추어 경제안보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경제 안보’ 역량 확충이 이슈로 대두되었다. 특정 국가에 원부자재 수급을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 시스템은 한국의 산업 경제 전반에 큰 파급력이 있음을 작년의 중국 요소수 사태에서 경험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대중 무역액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액을 합친 것보다 많으며, 한국의 대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80%를 넘는 품목이 1850개가 넘고, 반도체·통신제품 등에 소요되는 주요 원자재의 중국 비중이 70% 이상이다. 물론 중국도 반도체나 배터리 기술 등 분야의 협력을 바라고 있으므로 지나치게 중국 의존도를 강조해 위축될 필요는 없지만, 핵심 전략물자의 수입선 다변화 및 자체 개발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가 경제안보외교센터를 설치한 것은 적절한 조치다.
또, 한·일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민주·인권 가치를 공유한다. 양국 관계의 악화가 어느 일방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 문제가 상호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감정 대립이 계속되면서 깊어진 골을 방치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리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현실적인 협력을 적극 도모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호응이 없으면 또 한번의 수사적 접근에 그칠 수도 있으므로 양국 최고위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또 북핵 위협에 일정한 공동보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한·미·일 삼각 협력 구도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 정부의 외교 전개 방향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한국 외교의 정상화 차원에서 한·미 동맹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을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다. 물론 우리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항의하고 대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은 불문가지지만 미국에 대한 전략적 명료성으로만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도 자국의 핵심 이익만을 강조하면서 한국을 압박해서는 절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한국 역시 미국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친미(親美)·반중(反中) 프레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국내적으로 친중(親中) ·반중(反中)으로 구분하여 중국을 자극하는 등 감정적 언급은 대중 레버리지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세계 질서는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주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미·중 간에도 공존의 여지를 인정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처럼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 문제를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확고한 원칙은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중 경쟁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지 않도록 국제사회에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꾸준히 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미국도 중국도 아니지만 더 이상 고래 싸움의 새우도 아니다. 새 정부 출범이 한국 외교의 역할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