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제도 개편을 비롯해 국가 중장기 교육정책을 주도할 국가교육위원회가 오는 7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새 정부 교육 정책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정원 감축을 비롯해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한 고등교육재정지원특별법 제정, 사립대에 퇴로를 열어주는 정책 등 굵직한 교육 난제가 어떻게 추진될지 주목된다.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과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은 국내 대학 교육 여건에 대해 "인적자원은 국제 경쟁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환경이 아쉽다"며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새 정부와 함께 오는 7월 처음 가동되는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정파에 쏠리지 않게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차 원장은 "위원회 구성 인원 21명은 많은 감이 있다”며 "지방자치단체·교육청 등과 역할 분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 총장·차 원장과 진행한 대담 내용이다.
"대학 규제 풀고 재정적 뒷받침 따라야"
-최근 우리나라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이 지적받고 있다.
윤 총장=영국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에 따르면 한국 최고 대학으로 평가받는 서울대는 36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은 41위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 지역 대학 중 싱가포르국립대가 전 세계 11위로 가장 높다. 이어 난양공대(싱가포르), 칭화대·베이징대(중국), 홍콩대(홍콩), 도쿄대(일본) 등이다.
차 원장=교육 문제는 넓게 산업과 사회문제까지 연결돼 있다. 우리 목표는 이를 넘어 더 글로벌하게 갈 필요가 있다. 한국 내부 조건과 외부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리스크를 생각하면 우리가 믿을 건 인적자원밖에 없다. 글로벌 관점에서 미·중 패권 전쟁이나 미국과 러시아 간 싸움에서 한국을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인적자원과 산업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교육이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고등교육에 투자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윤 총장=서울대가 다른 대학보다 순위가 아래인 이유는 훌륭한 교수진과 학생 등을 흡입할 수 있는 재정 때문이다. 서울대 재정 수준은 이런 대학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 사회가) 인적자원이나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가령 서울대 주변에는 고시촌이 있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주변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다. 미국 우수 인적자원들이 벤처와 새로운 먹거리, 창업, 정보통신(IT) 등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거나 의과대학에 집중하고 있다.
차 원장=안타까운 점은 인적자원 면에서 우리가 절대 뒤처지지 않지만 지원하는 규모나 자유도만 놓고 보면 기초 수준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능력이 일정 수준으로 올라온 만큼 정부도 자율성을 줘야 한다. 법 등 우리가 물려받은 시스템 중에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방법이 있나.
차 원장=지금은 대학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줄 때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사업이 잘못돼 더 나빠지면 그 학교가 책임을 지고, 잘해보겠다고 열심히 해서 성공한 학교는 더 좋아질 것이다. 자율성을 줘야 한다. 그리고 재정적 뒷받침도 따라야 한다. 현재 대학에 지원되는 재정 규모로는 사업 진행이 어렵다. 경비성 지원과 대학이 자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금이 마련돼야 한다. 대학이 원하는 곳에 재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독립성이 보장되는 지배구조와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윤 총장=지금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고 말해도 자살률 등 다른 지표는 여전히 형편없다. 이런 지표를 한번에 깨뜨릴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교육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 지금 우리 재원은 한정돼 있다. 대학은 인구 '데드크로스(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은 현상)' 이후 정원을 다 못 채우고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회에서 본인 몫을 할 수 있다는 문화가 확립되면 많은 학생이 대학에 몰려갈 필요도 없다. 대학들도 자발적 또는 여러 유인책에 의한 구조조정을 시도한다면 투입된 재정들도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사교육이 도움 안 되는 입시제도 필요"
-지난해 수능은 출제 오류·문과 침공 등 논란이 이어졌다. 이런 수능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나.
차 원장=교육부가 대학 입시에 관한 가이드라인(지침)을 만드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국가적으로 교육이 하나의 틀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문·이과 문제도 자율성을 주면 해결된다. 문·이과 구분이 없어도 좋은 학과가 있는 반면 과학을 더 강조해서 뽑는 과도 있으면 된다. 전공 선택에 자율성을 줌으로써 학생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학교도 발전된 모습이다.
-수능을 비롯한 입시 경쟁 여파로 사교육 시장도 커지는데.
윤 총장=대학이 요구하는 허들을 넘기 위해 (학생은)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맡겨진다. 사교육 비중은 가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영화관에서 앞에 앉은 사람이 일어나기 시작해 모두 서서 영화를 보는 꼴이다. 전부 앉으면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사교육을 안 하면 되지만 '누가 할까 봐' '누가 하니까'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사교육을 해도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가 필요하다.
-입시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개편해야 하나.
차 원장=지금 하나의 틀에 맞춰서 교육하라는 것은 예전 개발도상국, 산업화 시대 사람들이 벽돌처럼 찍어내는 사고와 같다. 지금은 자율적·창의적으로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금융에는 '하나의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나쁜 투자를 하고 있다. 모든 인적자원을 하나의 틀에 담지 말아야 한다. 대학 간 특성화를 통해 자체 전략을 세우고 잘 시행하는 대학을 더 지원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흡수돼야 한다.
윤 총장=독일 입시제도에는 입학시험이 없다. 그렇다고 지금 독일 기초과학이나 기술이 굉장히 낙후돼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 진학률이 낮은 북유럽처럼 소득 누진제 등 사회적 대타협으로 합의하면 된다. 한국도 인적자원 배분이 잘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교육 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한 번쯤 거쳐야 한다.
-대학도 특별한 미래 전략이 필요한가.
차 원장=지금 우리는 다변화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 다양한 방향으로 인재들을 키워야 하고 대학도 그것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는 것은 각 대학 책임이다. 대학이 맞춰서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교위, 정파에 쏠리지 않게 구성해야"
-오는 7월 국가 중장기 교육정책을 맡을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한다.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야 하나.
차 원장=새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갖느냐에 (결과가) 달렸다. (구성원) 21명은 많은 것 같다. 교육에 관해 지방자치단체 등과 역할을 분담해 초·중·고교 교육은 지자체가 교육청과 끌고 나갈 수도 있다. 고등교육은 지자체만으로 한계가 있다.
윤 총장=국교위 구성 논의 당시 대통령 임기 말 구성은 말도 안 된다는 논란이 불거져 올해 7월에 공식적으로 발족하게 됐다. 법률 도입 취지에 맞게 정권과 관계없이 잘 활용된다면 여러 순기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파에 쏠리지 않게 제대로 구성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국가 인적자원 효율적 배분, 공교육 등 재원 투자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