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부동산입법포럼'은 정부의 '제로에너지건축(ZEB)' 제도가 이미 기초 정책 단계를 지났다는 진단에 공감대를 모은 한편 향후 ZEB의 성숙한 정착을 위한 제도 고도화 방안에 대한 다양한 제언도 이어졌다.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진행된 포럼은 강현수 국토연구원 원장을 좌장으로 한 패널 토론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토론자에는 △김예성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이명훈 한양대 도시대학원장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총 4명이 나섰다.
◇ 제로에너지건축에서 제로에너지도시로 패러다임 확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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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 토론에서 이목을 끌었던 대목은 개별 건축물에 접근했던 기존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주장이었다. 도시 개발 전문가로서 이날 토론에 참가한 이명훈 교수와 최민성 회장은 '제로에너지 건축물' 개념을 '제로에너지 도시'로 확장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 교수는 최근 부르키나파소 출신 건축가 프란시스 케레가 '에너지 절약형 공공 건축물' 설계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우리나라 환경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로에너지 제도를 공공시설 건축물에 적용하던 것을 공동주택과 같은 주민 공동체 시설로 확대하자는 제언이었다.
그는 "우리 국민 중 3분의 2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면서 "개별 건축물에 한정됐던 관련 인증 제도를 (아파트) 단지나 도시 단위, (전력) 그리드 단위로 확대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제로에너지빌딩' 인증이 2025년부터 공동주택에도 적용되고 현행법에도 관련 규정들이 세세하고 다양하게 포함돼 있지만 대체로 모두 권장사항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주택 공급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반영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침이 재개발·재건축을 확대하는 추세임에도 공동주택 단지 차원에서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 설계를 유의미하게 도입할 계기가 부족하다는 시각인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점에서 케레가 설계한 에너지 절약형 공공 건축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동체 차원에서 에너지를 관리한다면 에너지 비용 절감을 통한 주거지 부담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명훈 교수는 공동주택에 대한 제로에너지 제도 적용을 위해 관련 법규 강화가 아닌 소비자 수요 확대를 유도하는 방식을 도입하자고 강조했다.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제로에너지 단지에 '청약 가점'을 부여해 해당 제도를 따르는 공동주택에 대한 소비자 관심을 높이자는 방안이다. 규제 강화로 인한 부작용을 피하면서도 건축 사업자들과 수요자들을 자연스럽게 제로에너지건축으로 유인하자는 발상인 것이다.
최민성 회장은 제로에너지건축을 도시 개발 전체 과정에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공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다양한 '비교우위' 도시 모델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민간이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제로에너지 건축에 대한 국제사회 관심을 짚어가며 그중에서도 인류 문명이 탄소 배출을 폭발적으로 늘린 시기가 1980년대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세계 각국에서 '마이카(자가용)' 열풍이 자리 잡은 시기다.
자가용 문화가 정착하면서 도시 전체가 탄소 배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도시 개발 범위 역시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최 회장은 일차적으로 1980년대 이후 탄소 배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던 도시 개발 계획을 자가용 문화 정착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도시의 주차 공간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도시가스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개별 건축물 전체를 태양광 발전시설로 조성하고 전력 그리드를 지역별·건물별로 세분화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 회장은 이러한 방식을 공공이 민간에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공공이 법적 규제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로에너지 도시 모델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현재 미국 뉴욕시가 미술관과 박물관, 식물원 등 각종 공공시설을 다양한 방식의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시범적으로 조성해 민간에 홍보하고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일상의 수많은 공공시설을 '제로에너지 모델하우스'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러한 방안이 단순히 모델링 전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설 전 단계에 대한 제로에너지 모델링'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즉, 공공이 '제로에너지건축 패키지 모델'을 설계해 기존 개별 건축물에 제공했던 용적률과 세금 혜택뿐 아니라 보험을 비롯한 금융과 각종 경제적 문제에 대한 사업자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운영 플랫폼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용적률과 세금 인센티브 같은 기존 '혜택' 정도의 개념으로는 부족하다"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공공이 '잘되는 샘플링'을 만들어 민간에 보급하려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보다 큰 시각에서 보다 실용적으로
김예성 입법조사관과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각각 건축 입법과 건설 산업 측면에서 제로에너지건축 제도의 정책적인 성공 방향을 제시했다.
김예성 조사관은 입법적 측면에서 △통합적 인증제도 도입으로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이런 정책을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현재 1000여 건 수준인 제로에너지빌딩 인증 건수가 2025년에는 제도 의무화에 따라 7000건 규모로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고 지적하며 "이들 대상자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현 행정절차와 행정력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조사관은 기존 인증제도별로 담당 기관이 나뉘어 있기에 건축비 증가에 대한 인센티브 실효성도 떨어지게 된다는 점을 우려하며 이를 한데 묶어 보다 큰 시각에서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구심점인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봤다.
이은형 연구원은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 제로에너지건축 정책의 마지막 과제인 민간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조만간 건설업계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제로에너지건축에 대한 가성비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면서 공사비 증가 수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제도 의무화에 따른 공사비 과중이 분양가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최근 국제적인 경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을 심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공론화 과정이 없다면 제로에너지건축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까지고 한정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김태오 국토부 녹색건축과장은 정책에 대한 열띤 관심과 이들 제언에 감사를 표했다. 특히 인증제도에 대한 계단식 정리 작업을 이미 내부에서 진행 중이라면서 이들 제언에 대한 수용 가능성을 검토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맞게 제로에너지건축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