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번째 공직선거인 대선에 도전하여 성공을 거두며 대한민국 정치의 새 장을 열었다. 언제나 새 얼굴의 등장은 국민을 설레게 하고 기대와 우려를 동반한다.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그의 출현이 대학에 어떤 미래를 제시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윤 당선자는 고등교육 분야에서 눈에 띄는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고,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다. 교육공약은 후보자에게 자칫 헤어나올 수 없는 늪으로 바뀔지도 모를 우려가 크고, 정권 초기에 섣불리 교육의제를 다루었다가 낭패를 본 사례도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 작금의 대학 문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을 가리지 않고,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라는 설립형태의 차이나,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라는 규모와 수준에 상관없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이고,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첫째, 대학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대학의 효용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말이다. 산업구조가 변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뉴노멀로 자리 잡는 현실에 대학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일자리가 줄며 취업난이 가중되자 미래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혼인과 출산 기피, 주택난, 젠더·세대 갈등으로 초저출산 현상이 일어나지만, 정부와 대학의 대응은 무력하다. 과연 현재의 대학체제로 4차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둘째, 대학 경쟁력에 대한 의구심을 들 수 있다. 인구와 재화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일극화 현상은 국가적 재난 수준으로 비수도권의 황폐화를 초래한다. 기존의 대학 서열화는 심화하고 공정경쟁은 소멸한다. 수도권의 ‘좋은’ 대학과 비수도권의 ‘잡스런’ 대학의 이미지가 대비되고 있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량보다 지리적 위치가 대학 선호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은 부당하다. 수도권 대학은 불로소득으로 안주하고, 비수도권 대학은 속수무책으로 절망에 빠짐으로써, 국내 대학의 총체적인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학 소멸의 악순환이다. 학령인구가 줄고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었다. 해당 대학의 재정은 고갈되고 그 여파는 교육환경 악화, 대학 평판도 하락, 재학생 이탈, 대학 규모의 축소, 신입생 미충원으로 이어진다. 등록금 의존율이 50%가 넘는 국립대학도 악순환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사립대학은 등록금 의존율이 더 높지만, 「사립학교법」 때문에 일반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다. 대학이 소멸하면 특히 중소도시의 침체는 불을 보듯 훤하다.
넷째, 대학 관리의 위기다. 새 정부의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선거 운동 중에 교육부 폐지를 공약으로 던졌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교육부 폐지론이 실제로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왜 대선 때마다 교육부 폐지 공약이 나오는가? 교육부의 기능과 능력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특히 고등교육 분야의 경우에는 폐지만이 답으로 여겨지는 추세다.
교육부의 대학정책은 기본적으로 통제 위주의 관리다. 그런데 통제의 원칙이 희미하고 법적 근거가 박약하다. 헌법과 고등교육법은 대학자치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지만, 정작 교육부는 그에 관한 법률 제정을 미룬 채, 특별법·대통령령으로 대학을 설립 운영한다. 따라서 국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법제상 심각한 혼란 속에 교육부의 폐쇄적 정책, 정보 비공개, 교피아 유착 관계 속에 멍들고 있다.
이제, 새 정부는 위기의 대학을 어떻게 구제하여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전환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대학은 고사 중이다. 만성적인 재정 부족에 시달린다. 교육부는 기획재정부 핑계를 대지만, 기획재정부는 늘 투자 대비 성과를 요구한다. 일면 수긍이 가지만, 교육은 경제와 달라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고,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인재 양성이 힘든 이유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진국 대한민국 정부는 대학교육 투자에 인색하다.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늘 의심받고 OECD 회원국 중 하위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이미 방법은 다 나와 있다. 새 정부의 의지가 중요할 뿐이다. 어차피 현재의 대학체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 자, 이제 재정을 충분히 제공하여 대학의 자체 역량을 기를 시간을 주자. 즉 대학의 자율성과 특수한 여건을 고려하여 자체적으로 발전계획을 세우고, 고유한 교육과정과 교육역량 및 연구역량으로 생존전략을 준비할 시간을 주자. 자력갱생을 하든 이웃 대학과 통폐합을 하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 그리고 일정한 기간이 흐른 뒤에 평가하자. 국·사립을 가리지 말고 냉정하게 평가하여 어느 대학이 미래사회를 이끌 인재를 양성할지 판단하자.
그러나 재정지원사업은 지양되어야 한다. 사업 기반의 재정지원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말한 공대 교수가 있을 정도로 극도의 불신을 초래했다. 지역의 모 대학은 한때 '국책사업 10관왕'을 자랑스럽게 내걸었으나, 최근 신입생 미충원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 재정지원사업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결코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나아가 재정지원사업은 대학의 본원적 기능인 연구와 교육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대학구성원의 상식과 능력을 신뢰하는 차원에서 일반재정지원 방식으로 전환하여 대학의 자율성과 혁신성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학 거버넌스의 선진화와 민주화가 반드시 함께 진행할 것을 기대한다. 대한민국 대학체제의 아킬레스건은 사립대학의 높은 비중이다. 개발도상국 시절 정부 재정이 모자라 민간자본에 의존한 결과이다. 무조건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많은 국민에게 사립대학의 이미지는 ‘부실·비리’와 연상되어 떠오른다. 경제성장 시절에 초중등 학교의 공공성이 꾸준히 향상된 반면, 대학의 경우는 더욱 역행했다. 사립대학의 개성을 살리면서 공공성을 높이지 못하는 한, 대학개혁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매우 크다.
지역대학의 문제는 국가균형발전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물론 국가균형발전은 새 정부가 관심을 쏟는 핵심사안이어서 기대된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으나 실제로 세심하게 접근하는 정책은 드물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2000년에 처음 출현한 ‘연합대학체제’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원의 규모나 확보 방안 혹은 해당 대학이나 지자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안 등 정치한 대안과 정책이 없는 채 여론몰이 형식으로 추진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은 국립대학의 설립과 운영은 경제성장기에 설정한 국가균형발전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설립된 국립대(부산대 등 9개 국립대), 70년대 경제성장기에 중소도시에 설립된 국립대(창원대 등 7개 국립대) 및 89-90년대 고도 성장기에 설립된 산업계 대학과 특수목적대(금오공대, 한국교원대 등)는 전 국민의 교육복지를 실현하는 정부의 정책적 복안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런 흐름은 20세기 중반 이후 엘리트대학에서 대중대학으로 전환하는 세계적인 추세와 맞닿아 있다. 우리 국민이 세계사에 유례없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위업을 이루는 데 대학교육의 확대가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질적 전환의 시기이다. 흔히 말하는 추격형 국가에서 선도형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주도할 인재를 길러낼 여력을 갖추도록 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동시에 전 국민이 고등교육을 기본권으로 누리는 체제를 설계해야 한다. 대학체제 개혁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새 정부가 교육개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기를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