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반도체 제조를 위한 핵심 재료인 네온과 팔라듐의 생산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집중돼 있다고 1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반도체 제조용 희귀 가스인 네온은 전 세계 공급량의 4분의 1에서 절반 정도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급하고 있다. 팔라듐은 전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 정도가 러시아산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기업들이 단기적으로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의 TSMC는 네온 대체 공급원을 확보했고, 독일의 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스 역시 관련 원자재 재고를 늘렸다고 WSJ는 전했다.
지미 굿리치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부사장은 "만약 10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했던 당시 원자재 공급난과 가격 상승에 신음했던 반도체 업계가 과거의 경험을 교훈 삼아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러시아의 공습 개시에 앞서 미국 정부가 반도체 업체들에 경고를 한 점도 이 같은 조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대를 집결시키자, 백악관은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곧바로 수출 통제 등 경제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WSJ는 보도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린스컨설팅의 마크 터스크는 반도체 제조 업체들이 약 6개월 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네온을 비축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6개월 이후에는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했던 2014년에 네온 가격은 600% 올랐다.
CFRA의 애널리스트인 안젤로 지노는 CNBC에 지금의 지정학적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 업계의 생산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네온 공급의 절반 가량을 책임지는 우크라이나의 네온 공급사인 잉가스와 크라이오인이 가동을 중단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로이터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네온의 약 45~54%를 이 두 개 업체가 생산한다.
특히 소규모 업체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테크셋의 리타 숀-로이 최고 경영자는 인텔, 삼성, TSMC 등 주요 기업들이 재고를 쌓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언급하며 "그러나 (주요 기업을 제외한) 다른 많은 반도체 공장들은 이런 종류의 완충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마땅한 대안도 없다. 중국에서도 네온가스가 생산되지만 빠른 속도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네온가스 가격(99.9% 함량)은 지난해 10월 큐빅미터당 400위안 이상에서 2월 말 큐빅미터당 1600위안 이상으로 4배가량 올랐다.
서플라이프레임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인 리처드 바넷은 “다른 기업들이 네온 생산에 뛰어들 수 있지만 생산량이 증가하기까지는 9개월에서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급 부족이 일시적인 것으로 보인다면 기업들은 투자하기를 꺼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