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공행진 중이던 유가는 6일(이하 현지시간) 장 시작과 함께 뛰어올랐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130.50달러까지,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139.13달러까지 오르며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유로는 미국의 러시아 에너지 수출 제한과 이란 핵 합의 협상 지연 등이 꼽히고 있다. 투자자문업체 어게인캐피탈의 존 킬더프 파트너는 "러시아 원유 및 정유제품에 대한 전면적인 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CNBC에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세가 이어지며 더욱 강력한 제재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미국 측은 6일 러시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로 꼽히는 원유 수출 제한 조처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날 CNN에 "바이든 대통령과 다른 각료들과 함께 정확히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밝히고, "유럽 동맹국들 및 파트너 국가들과도 러시아산 원유 수출 금지 방안을 두고 적극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세계 시장에 적절한 양의 원유가 공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우려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거래업체 중 하나인 비톨그룹은 러시아의 원유 공급이 제한되고, 리비아와 같은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량이 정치적 위기로 인해 감소하며 원유 시장은 더욱 타이트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평가했다.
이과 같은 상황에서 시장에 이란산 원유를 공급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 계획) 복원 협상에도 빨간불이 들어오며 유가는 치솟았다. 투자자들은 이번 복원 협상에 성공하면 이란의 원유 수출 제재 역시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타이트한 시장에 이란산 원유가 유입될 수 있다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5일 서방의 대러 제재가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미국의 서면 보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핵합의가 빠르게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워졌다. 이미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핵합의 복원에 신경쓰기보다는 자국의 이익만을 찾으려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애널리스트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출이 제한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로이터에 전망했다. 설사 이란과의 핵합의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원유 수급 환경이 균형을 찾기까지는 몇 달이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웨스트백자산운용 역시 서한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출 제한으로 유가가 배럴당 150~175달러 수준으로 상승할 것이며, 배럴당 200달러 이상으로 오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블룸버그는 언급했다.
여타 자산운용사 및 투자은행들 역시 유가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JP모건은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경우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그러나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안정을 찾아 2분기에는 배럴당 평균 110달러, 3분기 100달러, 4분기 9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에너지 관련 싱크탱크인 에너지애스펙츠의 암리타 센 공동 창립자는 브렌트유가 지난 2008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147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로이터에 전망했다. 그는 "이란 핵합의가 유일하게 유가를 낮출 수 있는 요인이었지만 현재 합의는 지연되고 있다"며 "러시아산 원유가 시장에서 배제된다면 원유 재고는 빠르게 고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