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IT서비스 업계에 자율준수기준 기반의 '일감개방' 시행을 권고하자,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규율하는 소프트웨어(SW) 진흥법의 규제를 따르고 있는 IT서비스 업계에서 '이중규제'에 처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이 자율준수기준의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뜻을 밝혔다'는 공정위의 전언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기업들이 속내를 감춘 결과로, 사실과 거리가 멀다.
공정위는 27일 IT서비스분야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을 공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시스템통합(SI)과 시스템운영관리(SM) 등 IT서비스 사업을 발주하는 기업은 가급적 수의계약보다 경쟁입찰로 IT서비스 수행사를 선정하고, 계약 조건으로 비계열회사를 차별하지 않고, 발주업무 처리 적정성을 검토해야 한다.
이상협 공정위 부당지원감시과장은 "자율준수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법적 근거는 없는 만큼 강제하거나 불이행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면서도 "일감개방을 많이 한 기업에는 평가가 좋으면 직권조사가 면제되는 등의 혜택이 있는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 가산점(최대 5점)을 주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부회장에 따르면 공정위 자율준수기준 권고 내용에 대한 IT서비스 업계의 불신, 거부감, 우려가 크다. 그는 "불이익·제재가 없다는 방침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일감개방은 의무가 아니라고 하지만 기준에 포함된 내용 일부가 공시사항과 기존 제도의 인센티브에 연동되는데, 공시 등이 이미 강력한 의무이자 규제아니냐"고 되물었다.
채 부회장은 또 "단순히 만들어진 물건을 사고 파는 업종이 아니라 IT서비스는 기업의 민감한 기밀과 데이터 등 내부살림을 맡는 일인데, (공정위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용어부터 정리하고 공부를 해 가면서 규제를 만든 자체가 이 산업을 무시한 모습 아닌가 싶다"며 "자율을 강조하려면 어떤 범죄행위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가 관여치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IT서비스업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자율준수기준 시행 권고에 대해 "경영정보시스템같은 핵심 사업을 제외하면 이미 많은 사업이 경쟁입찰로 나오는데, 얼마나 더 개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SW진흥법에 따라) 공공SW사업에 대기업참여가 제한된 데 더해 민간기업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이중규제이자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앞서 물류 자율준수기준 마련도 공정위가 주도했지만 제도 운영·관리는 국토부가 맡았는데, IT서비스 기준에 대해서도 이제 과기정통부가 맡고 공정위는 빠질 것"이라며 "(일감개방 결과로) 중소중견기업이 일을 맡아 핵심 시스템이 망가지거나 기밀 정보가 유출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등의 얘기도 (자율준수기준에) 일절 없다"고 꼬집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진행된 IT서비스 분야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을 위한 사업자 간담회에는 과기정통부, 공정위 담당 공무원들과, 발주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T △LG전자 △롯데쇼핑 △이마트 △CJ ENM △두산중공업 △태광산업 등 9개사와 IT서비스기업인 △삼성SDS △현대오토에버 △SK㈜ C&C △LG CNS △롯데정보통신 △신세계아이앤씨 △CJ올리브네트웍스 △두산 △티시스 등 9개사의 임원들이 참석했다.
앞서 공정위는 간담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다른 대기업 계열사들도 자율준수기준 이행 권고 대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