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한데 어우러져 세계적인 산업구조 개편이 가속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전 세계 코로나19 누계 감염자 수가 지난 7일 3억명을 돌파했다. 누계 1억명까지는 1년 넘게(2021년 1월 하순), 2억명까지는 약 반년이 걸렸지만(델타형이 퍼진 2021년 8월 상순) 그 후 약 5개월 만에 3억명에 달한 것이다. 감염력이 강한 변이형 오미크론의 확대가 감염자 수 증가를 가속화하고 있다. 사망자 수는 누계로 547만명을 넘었다.
3년 차에 들어선 코로나19 재해는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의 최우선 과제가 코로나19 방역과 퇴치로 자리 잡은 지도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들은 개인 소비자와 산업에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변방에 있던 기후변화 이슈가 기후위기라는 위협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소니그룹은 지난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 IT 전시회 CES에서 EV시장에 참전한다고 선언했다. 소니는 2년 전 CES에서 독자적인 EV ‘비전-S’ 시제품을 발표한 뒤 소비자들에게 시판을 요구하는 소리를 들어 왔지만 일관해서 ‘현시점에서 시판화의 예정은 없다’고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 그런 소니가 EV 사업화에 발을 디딘 배경에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참여함으로써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EV화’ 흐름이 있다. 소니는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화상 센서 등 자율주행에 빠뜨릴 수 없는 부품 사업의 강화와 차내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음악을 포함한 콘텐츠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공개했다. 소니그룹이 이번에 공개한 EV 시제품인 SUV(다목적스포츠차량)형 ‘비전-S 02’는 시판을 포함한 EV 사업화의 본격화를 의미한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그룹 회장은 “소니가 가진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의 능력을 활용해 다양하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은 미래를 향한 큰 발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리서치회사인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전 세계 연료전지차를 포함한 EV시장은 2030년까지 누계로 7조 달러( 약 8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8월 중국 다음의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EV 도입을 촉진하는 행정명령을 내려 EV시장 확대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런 환경 아래 테슬라를 비롯한 벤처·스타트업, 기존 자동차 대기업에 이은 ‘제3극’으로서 성장시장 선점을 노리는 것이 소니그룹 등 이(異)업종 기업들이다. 미국 애플은 이미 자동차 관련 인재 획득에 나섰다. 1년 정도 전에는 현대자동차 등과 제휴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밝혀졌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의 통신기기 대기업 화웨이가 EV 관련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기기 수탁제조서비스(EMS) 1위 업체로 애플·소니그룹 등과 제휴하고 있는 대만 훙하이정밀공업도 EV 제조 참여를 목표로 미국에서 GM의 폐쇄공장을 인수했다. 애플과 화웨이는 자랑으로 여기는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을 응용할 것으로 보이며, 훙하이는 부품 조달력 등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신규 진입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동력원이 엔진에서 모터로 바뀌어 IT 기업이 진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소니그룹은 EV사업에 불가결한 센서와 클라우드 컴퓨팅, 5G 등 기술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자산도 활용할 수 있다. 소니는 주주들에게 복합경영을 비판받아 온 전례가 있어 EV를 자사만이 가능한 ‘종합력’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유망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소니의 EV 사업화에서 몇 가지 과제가 지적된다. 하나는 양산의 벽이다. 시제품을 만드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대규모 제조는 매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제조 시스템의 설계는 자동차 그 자체의 설계보다 100배 곤란하다고 한다. EV에서 앞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몇 번이나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채산성에도 과제가 있다. 중국의 신흥 기업들이 가격 경쟁에 나서고 있는 데다 대기업, 신흥기업, 이(異)업종 등 3파전 속에서 이익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다. 소니그룹과 같은 가전사업을 하는 영국의 다이슨은 2019년 준비를 해온 EV사업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2021년 12월 14일 EV, HV(하이브리드차), FCV(연료전지차) 등 전동차 관련 사업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2030년까지 8조엔(약 8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도요타자동차는 EV 관련 투자에 4조엔을 배분하고 이 중 배터리 분야에 대한 투자액은 2조엔으로 잡았다. 도요타는 이날 EV의 세계 판매 목표(2030년 시점)를 종래 목표보다 약 80% 늘려 연 350만대로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앞서 5월에 책정한 종래 계획(FCV 포함)은 200만대였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규제 대응이나 수요 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도요타는 EV를 2030년까지 30개 차종으로 늘리고, 2035년에 세계 시장에서 EV 비율을 100%로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도요타 차 1대당 라이프사이클 배출량(LCA)의 목표 설정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탄소중립(CN) 실현을 위한 기준은 EV의 대수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에 걸친 LCA로 하는 것이 세계적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LCA를 기준으로 해 고용 유지를 목적으로 배출량 거래나 국경 탄소세를 도입하는 방향이어서 전원(電源) 구성에서 불리한 일본에서 생산하는 도요타자동차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고, 고용 상실 리스크가 높아진다.
글로벌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EV화를 목표를 내걸고 있는 것은 조달난에 빠진 반도체와 배터리의 확보 능력을 키우려는 데 있지만 이 경쟁의 막판은 LCA로 이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LCA 삭감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의 EV 전략의 성패는 일본의 무역 전체의 행방을 좌우한다. 예컨대 작년 10월까지 12개월간 수송용 기기는 12조8515억엔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기·전자기기의 무역흑자는 1조6239억엔에 그쳤다. 하나의 자동차 업종이 일본의 무역(전체 1조1055억엔 흑자)을 지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광물성 연료는 13조6946억엔의 무역적자를 나타냈다. 바꾸어 말하면 자동차 수출의 흑자분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의 적자분을 메우고 있는 셈이다. 도요타가 세계 EV시장 경쟁에서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일본이 대규모 무역적자에 빠지지 않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도요타가 국내에서 EV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도요타자동차가 90년 만에 미국 본토 판매에서 GM을 능가했다는 쇼킹한 뉴스가 나온 날 또 다른 충격을 애플이 전했다. 애플은 지난 3일 세계 상장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주식 시가총액이 장중 한때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성장성과 수익성을 높게 지키고 있는 이 회사는 21세기 기업 경영의 한 모델이 될 것이다. 애플의 특징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 영역에서 강한 발판을 마련하고 다른 회사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경쟁 우위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 역사를 되돌아보면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에 의한 혁신을 지렛대로 휴대 음악 플레이어와 스마트폰 시장을 창출했다. 후계자인 팀 쿡 최고경영자는 세계적인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정돈해 제조기업으로서 기반을 굳혔다. 소프트웨어 중시에 의한 이노베이션 능력과 제조능력을 함께 높이는 양면 작전에 의해서 스마트폰 시장의 세계적인 확대를 견인했던 것이 애플의 월등한 성장과 수익력, 주가 상승의 버팀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애플의 양면 작전은 테슬라 등에도 공통되는 전략으로, 다른 제조기업도 배워야 할 점이다.
도요타자동차가 '소프트웨어 퍼스트'를 내세우는 변화를 꾀하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아직 제대로 생산도 안 하고 있는 신흥 EV 유니콘 리비안이 작년 11월 10일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할 때 시가총액이 859억 달러(약 97조8000억원) 에 달해 GM에 육박했다는 점도 상기할 만하다.
바야흐로 세계 전기자동차(EV) 시장은 전국(戰國) 시대에 돌입한 형국이다.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처럼 한국도 자동차, 반도체, 전자의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주력 업종이 무너지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첫 시험대에 올라선 형국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자동차산업을 포함한 주력 산업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