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잡을 수 없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안전한 도시 부산까지 살아가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한 아이의 아버지(영화 '부산행), 결혼·출산을 경험한 평범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영화 '82년생 김지영'), 뇌종양을 앓고 있는 전직 정보국 요원(영화 '서복')에 이르기까지 배우 공유의 필모그래피 속 장르와 캐릭터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을 꿰뚫는 하나의 '취향'은 있다. "강요하고 주입하기보다 제시하고 물어보기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대체로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함께 풀어가려고 분투하는 과정을 겪곤 한다.
"오락적인 작품도 좋아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게 있죠. 그런 '취향'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긴 해요. 저는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보다는 '이런 거 어때?' 하고 물어보는 걸 좋아해요. 저는 영화 한 편, 유익한 글 하나의 가치를 믿거든요. 많은 이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을 담아서 작품 선택을 하는 편이고요."
'고요의 바다'는 2014년 제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최항용 감독의 동명 단편 영화를 시리즈화한 작품이다. 영화 '마더' '미쓰 홍당무'로 필력을 인정받은 박은교 작가가 각본을 맡았고 배우 정우성이 제작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이번 작품에서 공유는 대한민국 우주항공국이 인류 생존의 답을 찾아 계획한 달 탐사에 정예대원으로 선발된 탐사대장 한윤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한윤재는 조금 기시감이 들 수도 있는 평이한 인물이기는 해요. 전 캐릭터를 볼 때 제 성격과 비슷한 점을 찾는 편인데, 굳건하고 책임감 강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슷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저도 좀 정의로운 부분이 있거든요.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 제가 조금은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게 있어요. 저의 약간 냉소적인 부분들을 윤재라는 캐릭터에서 보여주려고 했어요."
한윤재는 8부작 동안 여러 심경의 변화를 거치는 인물이지만, 공유는 이를 담백하고 건조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고요의 바다' 전반적인 톤이 그렇죠. 드라이(건조)해서 좋았어요. 저도 연기할 때 감정 과잉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이런 제 정서를 윤재한테 반영해 건조하게 연기했어요. 윤재를 엘리트 군인이라는 것 말고, 평범한 아버지라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아프고, 아이에게 조금 더 많은 식수를 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했어요. 윤재의 얼굴에 고단함, 냉소적인 면이 묻어났으면 해서 더 건조한 사람의 얼굴로 접근했어요."
흥미로운 점은 전작 '부산행'에 이어 '고요의 바다'에서도 딸을 둔 아버지로 나왔다는 점이다. 취재진의 말에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이상하게 한 번도 아들은 없고, 늘 딸만 둔 아버지네요"라며 답변을 이어갔다.
"제작진 입장에서 제가 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딸과 있을 때가 윤재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윤재에게 필요한 컷이었다고 생각해요."
영화 '서복'에 이어 '고요의 바다'까지 연이어 SF 장르에 출연하게 된 그는 장르의 '세분화'에 관해서 설명하고 싶다고도 털어놓았다.
"'고요의 바다' '서복'도 SF 장르지만 각각 세분화하면 달라요. '고요의 바다'는 정확하게 따지자면 SF 스릴러 장르인데 아시아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장르였던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제작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도전 의식이 생겼고, 해보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늘 안타까웠던 부분이 '한정적인 장르'였거든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데 비슷한 장르가 반복되니까 아쉬운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 한국의 기술력이라면 멋지게 구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물론 그 바탕에는 좋은 시나리오가 필요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고요의 바다'는 공유의 갈증을 채워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그는 "할리우드에 비하면 여전히 저예산 영화에 속하지만, 그 안에서 현명하게 선택하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온라인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고요의 바다'는 넷플릭스 TV쇼 부문 최고 3위까지 올랐고, 6일 기준으로는 9위에 랭크됐다. 언론과 평단 그리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오가 많이 갈리는 편. N차 관람 인증이 쏟아지며 팬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 반면 '아쉬운 성적'을 언급하며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고요의 바다'는 SF 장르지만 정통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제가 느낀 '고요의 바다'는 인문학적인 작품이라고 보거든요. 그 안에서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혹평에 관해서는··· 솔직히 늘 평가는 받아오지만 낯설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요. 이 작품을 선택하며 어느 정도 (호오가 나뉠 것으로) 예상했어요. 다만 다양한 관점으로 봐주시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VFX(시각특수효과) 그래픽 등은 호불호 없이 칭찬 일색이었다. 공유 역시 "완성본을 보고 감탄했다"며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4부에서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하하하. 촬영 때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었거든요. 와이어 10~12개를 몸에 달고,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에서 연기했어요. '고요의 바다'는 후반 작업이 중요했던 작품이었는데, 이 장면이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정말 궁금했거든요. 완성된 장면을 보고 정말 만족스럽더라고요."
그는 배우들에 관한 애정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윤재와 대립하는 인물로 그려졌던 송지안 박사 역의 배두나에 관해서 "순간적인 몰입도가 뛰어난 배우"라며 그 덕분에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면 좋겠지만, 여건상 늘 그럴 수는 없어요. '고요의 바다'도 그랬어요. 비행선 내부와 달로 가는 여정을 찍고 난 뒤 송 박사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었어요. 이미 끈끈해질 대로 끈끈해진 사이에! 하하하. 너무 가까워져서 어쩌지 생각했는데, (배)두나씨는 딱 분위기를 잡더라고요. 그의 표정, 말 한마디에 저도 감정이 잡혔어요. 순간적인 몰입도가 대단한 배우에요. 평소에도 굉장히 아이코닉(iconic)한 배우라고 생각했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여겼는데 이번 작품으로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었고요. 송지안 박사 역으로 중심을 잘 잡아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음에 또 다른 작품, 장르로도 만나보고 싶어요."
공유는 '고요의 바다'로 2021년을 마무리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털어놓으며 2022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새해는 늘 그렇잖아요. 하하하. 규칙적으로 계획도 짜고 싶고···, 다시 예전처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운동을 게을리했던 것 같아서 새해에는 운동 계획을 짜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