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 대선 후보 '헐리우드 액션'에 속지 않기

2022-01-0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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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가 연기자라면 국민은?

유권자, VAR 정밀판독으로 거짓 연기 가려내야


헐리우드 액션(Hollywood action)
 
“대선 후보가 연기를 잘 해야 선거에 이긴다”는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말을 듣고 이 단어가 떠올랐다.
 
먼저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공개 의원총회에서 한 김 위원장 발언을 있는 그대로 옮겨본다.
 
제가 후보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선거운동 과정을 겪어보면서 도저히 이렇게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비서실장 노릇을 선거 때까지 하겠다.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의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만 좀 해 달라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과거에 여러 번 대통령 선거를 경험을 해봤는데 후보가 선대위에서 해주는 대로 연기만 잘 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늘 얘기합니다.
 
영어로 액션. 연기는 '진짜의 나'가 아닌 작품 속 가상 인물을 연구해 최대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배우다. 배우에게 연기를 지도 혹은 지시하는 건 디렉션, 그 사람은 연출가 또는 감독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이에게 배우의 연기를 주문한다는 것 자체가 해괴망측(駭怪罔測)하다.

허나 일단 그렇다 치면 배우인 윤석열 후보에게 연기를 지도, 지시하는 연출가(영화는 감독, 드라마는 프로듀서 및 작가)는 김종인 위원장일 터. 그런데 김종인 위원장은 대통령 후보를 만드는 ‘킹 메이커’를 넘어 왕을 좌지우지하는 ‘상왕’(上王·왕위를 현재 왕에게 물려주고 물러난 왕)을 하려는 듯하다. 선대위 해체도 후보에게 알리지 않고 본인이 “저질렀다”고 할 정도니.
 
김 위원장 발언을 노회(老獪)한 정치인의 수사(修辭)라 이해한다 해도, 연기‘만’이라는 조사를 두 번 단 대목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후보는 권력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주인공 노릇 뿐 아니라 제작, 연출까지 총괄 지휘하는 감독 겸 배우여야 한다. 배우가 메가폰을 잡는 주연 및 감독 000 영화가 있지 않나. 스포츠에서는 이른바 '플레잉 코치'라고 부른다.

그런데 연기‘만’하란 건 말 그대로 ‘아바타’, ‘꼭두각시 인형’에 머물라는 거다.
 
내가 시키는 ‘연기 지도’ 대로만 하면 영화, 연극, 드라마가 ‘대박’을 칠거라는 감독, 피디, 작가는 없다. 물론 김종인 위원장의 연기 지도를 충실히 잘 따른 배우가 대통령이 되기도 했지만, 그 말로는 비참했다.
 
김 위원장 본인도 한때 연기자로 데뷔하려고 했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김 위원장 본인이 주연 배우로 나서려고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기에 힘이 부족하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말로는 힘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연기를 지도할 연출자가 배우로서 연기에까지 나설 자신감도, 응원해주는 팬들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권자는 관객이자 심판
백번 양보해 대선을 연기자들의 경연이라고 본다면 이들의 연기를 보는 관객은 누군가. 자신의 시간, 때로는 돈을 내고 배우들의 열연을 지켜보고 평가하는 이들 말이다.
 
만1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의 연기를 보고 3월 9일 최종 평가를 내린다.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관객일 뿐 아니라 심판 역할도 맡는다. 한 표 한 표가 정치인과 정당에 내리는 '칭찬 카드' 혹은 '옐로우(레드) 카드'다.
 
첫 머리에 적은 헐리우드 액션이 떠오른 이유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가 안톤 오노에 금메달을 빼앗긴 장면, 바로 그거다.
 
스포츠에서 파울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당한 것처럼 속이는 비신사적 행위(파울)를 헐리우드 액션이라고 하고, 심판들은 그런 못된 연기를 한 선수를 잡아내 카드를 번쩍 들어 페널티(벌)를 준다.
 
헐리우드 액션은 사실 영미권 국가에서 쓰지 않는 ‘콩글리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축구)에서는 시뮬레이티드 파울(simulated foul), 시뮬레이션(simulation) 혹은 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빗대 다이빙(diving)이라고 부른다. 한국 축구의 자랑, 손흥민(토트넘 홋스퍼FC)도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농구에서는 플랍(flop), 플라핑(flopping)이라고 한다.
 
최근 축구에는 VAR를 도입, 헐리우드 액션에 철퇴를 가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축구 경기에 공정성을 더하기 위해 도입한 비디오 판독 시스템인 VAR는 비디오 보조 심판(Video Assistant Referees)제도다. 축구장 구석구석 카메라로 모든 선수들의 사소한 몸짓, 말짓까지 다각도로 녹화해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으면 심판이 파울을 선언한다. VAR 때문에 헐리우드 액션의 고수, 호날두와 네이마르가 솔직해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은 관객이면서도 헐리우드 액션 파울을 잡아 내는 심판자다. 기술 진보로 인해 선거에서 VAR같은 정밀한 판독시스템이 계속 진화하고 있는 건 유권자 입장에선 다행, 연기자에게 비극이다. 
 

[작년 7월 26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 영결식 조문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관의 부하, 감독의 배우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발언이 생생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거대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겪었을 당시 윤 후보가 한 말이다.
 
김 위원장 ‘연기 발언’ 이후 윤석열 후보는 아직까지 “대선 후보는 총괄선대위원장의 배우가 아니다”라고 반박하지 않고 있다. 대선 후보가 연기자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연출자의 지시와 지도를 잘 따라야 할 터.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VAR을 가동해 그 배우가 진짜 자신의 실력과 인성, 본모습을 보여주는 지, 아니면 오로지 연기에만 능한 헐리우드 액션 배우인지를 가려내야 하겠다. 대선 후보와 그 세력의 발연기에 속는, 상식 없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거다. 
 
지난해 7월 7일 칼럼에서 "바보야, 문제는 00야"라는 구호의 어원을 밝히며 이렇게 썼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리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으로 승리했다. 그 다음 선거에서도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 세력은 “바보야 민생이야, 코로나야!”라고 외쳐야 한다.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실제로 이뤄내야 한다. 그 능력이 제1 선택 기준이다.

 
국민의힘 선대위에 이런 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바보야, 후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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